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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안 Dec 31. 2023

빨간불로 바뀌기 10초 전, 신호등 앞에서

2023년 연말 회고 일지

2023년은 '신호등'같은 해였다. 빨간불로 바뀌기 10초 전, 아슬아슬하게 켜져 있는 파란불의 보행자 신호등.

조금만 더 애쓰면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아직 저 멀리에 있어 횡단보도로 가는 길마저 아득했다. 가는 내내 숨이 턱턱 막혀 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밑을 보면 두 다리는 걷거나 절고 있었다. 늘 몸보다 마음이 앞섰던 거겠지. 목표를 목전에 두고도 나아가질 못하는 발을 붙잡고 텁텁한 입맛만 다시는 날들이 많았다.  

깜빡이는 신호등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은 긍정과 부정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아직 10초가 남아있다는 근사한 희망과 차라리 미련조차 없을 1초였으면 하는 간사한 바람. 어느 쪽도 줄어들지 않는 마음의 무게로 두발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렇게 12번의 고비 끝에 한 해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지금은 횡단보도 앞일까. 아니면 건너는 중일까, 끝내 넘어갔을까. 정확한 결말은 아무래도 내년에 맡겨야 할 것 같다. 그게 무엇이든, 부디 미래의 나는 뜻하던 바를 찾길, 그리하여 가벼운 발걸음으로 힘 있게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12월 31일이 적힌 달력을 만지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되내어본다.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 가는 것이다.' 만족스러운 러닝 결과를 얻지 못할 때,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였다. '적어도 끝까지 걷진 않았다'라고.

'적어도 끝까지 멈추진 않았다.'
어디쯤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어딘가에서 다시 뛸 준비를 하는 나에게 애틋한 응원을 보내며. 고생했다. 새해 복 많이 받자. 무엇보다 건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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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더 정확히는 제 자신에게 소홀했던 한 해였습니다. 내년에는 좀 더 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이리저리 세심하게 살펴보며, 다시 한번 글 쓸 용기도 내보려고요. 부족한 글을 봐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쉬웠던 것들은 2023년에 고이 묻어두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24년을 맞이하시길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Illustration by @nuroin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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