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간 개복치 May 07. 2019

원기옥 술자리

일주일에 저녁 약속은 딱 1회다

“선배, 완전 ‘인싸’잖아요?”

후배와의 술자리, 내향적인 성격 탓에 힘들다는 내 하소연에 그녀가 건넨 힐난이다. 인싸가 아닌 나는 당연히 반박했다. “그건 너가 내 인스타그램만 봐서 오해하는 거야. 원래 인스타그램엔 멋진 모습만 올리잖아. SNS에 자랑 글을 자주 올리는 사람일수록 내면은 황량한 법이야. 내가 딱 그래. 내면이 황량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들고.” 후배가 잠시 침묵하더니 내 얼굴을 바라 보며 “내향적인진 모르겠고, 선배 설명충이긴 하다”라고 한다. 이런. 

(설명충 : 무언가에 대해 설명해주는 사람을 벌레에 비유에 비하하는 못된 속어)

바로 잡고 시작하자면, 설명충은 맞고, 인싸는 아니다. 혼자 있길 즐기며, 집에 있을 때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타인과 얼굴 마주할 일은 가능한 한 피한다. 심지어 내향적인 이들을 위한 책도 쓰고 있다. 이 정도면 ‘공식 내향인’이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으나, 후배의 오해도 이해는 간다. 겉보기엔 조금 다를 수도 있다.

나 역시 남들처럼 금요일엔 술자리를 갖곤 한다. 직장 동료보단 바깥 친구들과 만나는 일이 잦다. 바깥 친구들이 누구냐 하면, 딱히 규정할 순 없지만 예를 들면 블로그 이웃으로 알게 돼 친해진 미식 블로거,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영상 크리에이터 등. 여차여차 알게 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다. 

그들과 연남, 경리단, 한남, 신사 등지의 힙플레이스를 찾는다. 둘이서 만날 땐 친구 데려오라고도 한다. 술자리는 3명 이상 모여야 주거니 받거니 주제가 확장되며 재밌어진다고 여긴다. 술은 전두엽을 마비시키며 낯가림을 완화한다. 처음 만난 사람들하고도 곧잘 술잔을 부딪힐 수 있으며 그러다가 친해질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술자리에서 친해진 이들을 모아서 독서 모임을 만든 적도 있다. 사실, 위스키 모임도 하나 만들었다. 사실 다른 모임도 있는데...



인싸 [in ssa]

자신이 소속된 무리 내에서 적극적으로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

-나무위키-

“뭐야. 이 사람 인싸였잖아. 소심한 사연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에 공감해줬더니 모두 거짓말이었군!”

“퇘. 모두들 가자고. 인싸 놈의 글 따위 읽어줄 가치가 없지.”

내 글 읽던 독자들 반응이 이럴 수도 있겠는데. 여러분 잠시만요. 저 소심한 아웃사이더 맞습니다. 그저 세상과 어울리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변명하자면,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매순간 혼자 있길 바라는 건 아니다. 인간 관계란 피곤한 동시에 큰 기쁨도 준다. 특히 소심이들의 인생 디폴트 값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상태다. 넋 놓고 있다보면 주위에 아무도 없다. 정말 외로워진다. 그렇기에 소심할수록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격다짐이 아닌 정교한 방식으로. 내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저녁 약속은 일주일에 딱 한 번 갖는다. 6일은 집에 틀어박히고, 딱 하루만 나가서 논다. 약속은 보통 금요일에 잡지만, 사정상 다른 요일에 놀았다면 그 주 금요일은 집돌이다. 고로 “오늘 뭐 해? 한 잔 콜?”처럼 치고 들어오는 약속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설령 술자리에 연예인 수지가 있어 따라라라 따라라라 잔을 흔들고 있으니 나와라 해도 가지 않을 것이다(아이유면 간다).

6일간 누에고치처럼 에너지를 쟁여두고 있다가 단 하루에 빵 터뜨린다 봐도 좋다. 깨알 같은 노력도 있으니, 술자리 전날엔 잠도 빨리 자고, 약속날 퇴근이 빠르면 뜨거운 목욕으로 에너지 충전 후 나간다. 술자리를 위한 자료 조사도 있다. 어떤 술을, 어느 가게에서, 무슨 안주랑 먹고, 2차는 어디로 갈지 등을 준비하기도 한다. 

부끄럽지만, 구글 독스에 저녁 약속을 위한 시트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시트명 ‘미세오사가스’. 그 속엔 지역별 술집 맛집 리스트가 정리돼 있어 차례로 가이드해준다. “어디서 만나면 편하겠어?” “이태원?” “그러면 좋아하는 안주는?” “잘 모르겠다고?” “그러면 내가 A안, B안을 제안할게. A안은 정겨운 일본 스타일 코스야. 마음이 따스해지는 심야식당 느낌이라고 보면 돼. 먼저 OO이자까야에서 먼저 저녁을 먹고...”

이 모든 과정은 상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만남이 즐겁지 않으면 다음 만남도 잡기 싫어진다. 즐거운 순간들이 모여야 소심한 내가 세상과 어울릴 모티브가 생긴다. 술자리는 나 스스로 완전히 즐겨야 한다. 만남의 접점만 보면 자칫 ‘인싸’처럼 보일 수 있지만, 노력하는 거랍니다. 디폴트가 아니고요.

그나저나, 한 주 한 번의 술 약속을 준비하는 도중 만나기로 한 상대에서 “미안, 갑자기 일이 생겼어. 이번 주 약속 미뤄도 돼?”라는 카톡이 오기도 한다. “진짜 너무하네”라며 짐짓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나 속 마음은 ‘아싸! 이번 주는 쉰다! 소셜 에너지를 끌어모을 시간이 2주나 주어졌어.’라고.

P.S. 막간의 아이유 이야기

몇 년 전, 에디터로 일하던 중 아이유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연예인들은 홍보 시즌에 인터뷰 수십 개를 몰아서 한다. 굉장히 지치는 일이라 질문에 기계처럼 답변하는 일이 잦다. 그런데 아이유는 달랐다. 진심을 담아 조근조근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아이유가 스스로 외톨이 성향이 있다고 말했는데, 듣는 순간 동질감을 느꼈다. 아이유님도 그렇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삶은 카페O네 BGM과 같아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