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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Jun 13. 2019

이보시오 내가 멸종위기종이라니!

스스로 주류라 여겨왔건만...

느그작 느그작

이 표현은 제가 책 쓰는 느리디 느린 과정을 스스로 비하하는 의태어입니다.


그야 말로 아주 천천히 쓰고 있습니다. 이 글로 저를 처음보는 분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직장은 따로 있고 우연히 좋은 기회로 에세이집을 쓰고 있습니다. 출간되는 좋은 에세이들이 많으니 제 책을 따로 기억해두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여하튼, 제의를 받아 2~3주에 한 편씩 생각나면 글 쓰고, 그걸 또 한두 달 묵히고, 다시 보며 글 고치고, 그러고 있습니다. 제 브런치에 있는 것과는 매끄럽기와 디테일이 꽤 많이 다른 글이 나올 텐데요. 어쨌든 그건 그렇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 드디어 모든 글을 완고하고, 책 제목을 결정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출판사 편집장님께서 "작가님은 우리 사회에서 진작에 멸종했어야 할 멸종 위기종이잖아요. 그런 것을 반영해 제목을 정할까해요"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기에, '아니 난 직장도 다니고, 백수도 1년 반밖에 안 했고, 대출 이자가 좀 많지만 집도 있고 무슨 멸종이에요!'란 반발이 속에서 일었으나, 가만 생각하니

1) 가진 기술은 오로지 글 끼적이는 재주 -> 4차산업사회에서 말라죽기 좋음
2) 남 앞에 서면 혼이 나감. -> 자기 홍보 사회에서 호구되기 딱 좋음
3)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에너지가 빨리는 경향 -> 아웃사이더 되기 싶상
4) 말귀가 어둡고 눈치가 없음 -> 왕따 당하기 최적
5) 욕심이나 승부욕도 별로 -> 성공은 커녕 중간치 만큼 살기도 힘들...

멸종위기종이 맞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역시 출판사 편집자의 통찰이란 이런 거구나. 슬퍼졌습니다.

딴 이야기지만 고등학교 때 전 스스로 잘 지낸줄 알았는데, 친구랑 회상하며 따져보니 은따였더군요.

"너랑 아무도 안 놀아줬잖아?" "그래? 안 놀아줬어?(울먹) 우리 밥은 같이 먹었잖아." "그거야 그냥 밥 같이 먹은 거고." "너무해!" 눈치가 없는 것도 행운이나 봅니다. 흑흑

"당신이 은행 창구나 지점장 자리에 앉아 있는 물고기자리를 발견한다면 희귀종을 찾은 셈입니다. 물고기자리 중에는 한곳에 오래 갇혀 있는 것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보다는 망자와의 영혼 교류를 시도하는 모임이나 미술관 , 수도원, 공연장,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물고기자리를 만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린다 굿맨의 별자리성격 책 <당신의 별자리> 중-

별자리 성격 전문가 린다 굿맨 씨에 따르면, 물고기자리는 자기만의 세상 속에서 사는 종족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욕심이 없지도 않고, 감정도 풍부하며, 심지어 많은 면에서 예민하다고 합니다. 다만, 그 욕망, 예민함 등 모든 영역이 남들과 느끼는 층위가 다르기에, 남들 눈에는 자칫 둔감한듯, 무심한듯, 욕심 없는 듯 보이는 것 뿐이라고 합니다.

꼭 물고기자리 뿐이겠습니까. 다른 모든 별자리에도 자기만의 층위를 가진 분들이 있겠지요(아무리 그래도 사자자리는 예외). 아마도 욕망의 층위, 감각의 층위가 달랐는데, 자꾸 비교를 당하며 소위 보편화된 기준(?)으로 맞춰지신 분들이 있을 테고요.

사회생활에 지쳐 긴 티벳 여행을 갔다가 돌아온 후배가 오늘 카톡으로 인사를 전했습니다. 어떻게 지냈느냐기에 매우 잘 지냈다고 했더니 '역시 행복왕의 위엄'이라며 칭찬하더군요(칭찬 맞죠?). 특별히 아주 안 좋은 시기를 제외하고 전 행복한 편인데요. 감정의 층위가 다른 게 꼭 나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주간개복치 #에세이 #제목정하기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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