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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Mar 22. 2020

사자자리 아내와 물고기자리 남편의 흥겨운 결혼 생활

"두 별자리에 대해서 말하자면 물과 불. 결코 섞일 수 없죠" "네?"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운명론을 믿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유의지라고 말할 것이다. 살면서 택하는 하나하나의 결정이 우리 삶을 좌우하며, 우연한 사건에 대한 선택 하나하나가 합쳐서 우리 삶을 이룬다는 자유의지론. 독실한 무신론자로서, 난 이 대답만이 유일한 논리적이라 여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론 묘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다.


“내가 H를 만난 게 정말 우연일까?”

H를 처음 만난 건 백수 시절 취업 스터디에서 였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못 해 방바닥이나 긁던 중 뭐 라도 해봐야겠다며 나간 스터디 모임에서 그녀를 만났다. 동그란 단발머리의 H는 자기 주장이 분명한 여성이었다. 막 주장을 해대는 나쁜 분명함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만 기분 나쁘지 않게 주장하는 매력적인 분명함이었다. “이건 좋아요. 그건 별루예요.” 똑 뿌러진 매력의 그녀는 우연히  얼굴도 귀여웠다. 카페에서 만난 스터디원들은 자기소개를 한 후 어떻게 공부해 나갈지 토론했다. 난 선명히 움직이는 H의 손과 입만 훔쳐봤다. 백수 놈이 취준하러 가서 무슨 짓이냐,란 자괴감이 들었고, 무엇보다 난 전 여친에게 무기력한 백수라고 차인 지 두어 달 밖에 안돼 누군가를 좋아할 에너지가 없었다. 


그러니까 H와 따로 만나 밥 먹기로 한 건 순수한 의도였다는 말이다. 요즘 말로 밥터디(밥+스터디) 같은 것이랄까. 밥만 달랑 먹으면 민망해서 커피도 마시러 갔다. 카페에서 H에게 스몰 토크를 시작했다. “생일이 어떻게 되세요?” “7월 OO일인데요.” “그러면 사자자리시구나. 어쩐지.” “사자자리가 왜요?” 별자리 성격에 대해 약간의 지식이 있던 난 사자자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태어난 순간 어두컴컴한 하늘에 놓인 별들의 위치가 우리 인생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 아세요? 별자리 성격론이에요. 당신이 태어났을 때 밤하늘에 사자 한 마리가 떡 하니 버티고 있었어요. 그 사자의 기운이 갓 태어난 당신에게 스며들었죠. 게자리, 물병자리, 전갈자리 수많은 별자리가 있지만 그 별자리들은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이름만 듣고는 성격을 추측하긴 쉽지 않아요. 예컨대 사수자리는 이름만으론 화살을 쏘아대는 킬러가 떠오르지만 실제론 흥겨운 멘탈리티의 소유자들이죠. 그런데 사자자리만큼은 이름 그대로예요.


백수의 왕인 사자처럼 당당하고 자존감이 높지요. 여성이라면 보살핌받는 공주가 아닌 알아서 쟁취하는 여왕 스타일이고요. 자기 길을 제 스스로 찾아갈 때 행복한 경향이 커요. 사회생활도 못 하진 않아요. 직설적인 성격 탓에 가끔 하이에나 같은 것들과 다투지만. 뭐라고요? 아. 하이에나자리는 없습니다. 일반적인 비유에요. 사자자리는 본인 내면이 탄탄하기에 사자자리는 딱히 남들에게 으스대지도 않아요. 내면에 겁쟁이가 있는 사람이나 남들에게 공격적인 법이죠. 


별자리 성격론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린다 굿맨에 따르면, 사자자리 여성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 유형은 비굴한 성격, 즉 무조건 맞춰주려는 남자라고 하네요. 불쌍한 척, 모성을 자극해보려는 남자 역시 씨알도 안 먹힌대요. 사자자리는 신하가 아닌 기사를 원하거든요. 어떤 별자리가 어울리냐고요? 글쎄요. 사자자리 여자에게 어울리는 남자 별자리를 떠올려 보면 물고기자리일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마침 물고리자리입니다. 에헴.


물고기자리는 자신만의 렌즈로 세상을 보는 종족이죠.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목표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하죠. 물고기자리들에겐 고유의 특성도 있는데요. 다른 별자리들이 모두 자기 눈앞에 처한 일에 천착할 때 우리 물고기자리들은 한발 뒤로 물러나 전체를 관망할 줄 압니다. 때론 너무 관망만 해서 문제지만.


앞에 말한 내용 중 거짓말이 있다. 일반론으로 보면, 사자자리 여자에게 가장 안 어울리는 별자리 투톱이 염소자리와 물고기자리다. 묵묵히 참고 인내하는 염소자리와 만나면 속 터지고, 몽상가인 물고기자리와 만나면 맨날 싸운다. 방금 네O버에 검색해봤더니 결혼지수(뭔지는 모르겠지만)가 100점 만점에 40점. ‘두 별자리에 대해서 말하자면 물과 불은 결코 섞일 수 없다는 표현이 적합합니다’라고 한다. 상극임에도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다행히 그녀도 나를 좋게 봤다. 여차저차 사귀게 되었고, 연예 7년 후 결혼까지 하게 됐다. 여차저차는 다음 기회에 적는 걸로 하고. 그래서 겪게 된 시작된 결혼 생활은? 


“우리 이번 생에 끝까지 산 다음에, 다음 생에 또 만나서 또 결혼하자.” “오빠! 싫어!” 좋다는 말이다. 전형적인 사자자리와 물고기자리가 만났는데도 우리 결혼생활은 테트리스 게임처럼 딱딱 맞으며 행복하다. 두 별자리는 크게 다르지만 각자의 개인의 삶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독립성’이란 점에서 똑같았다. 결혼하자마자 각방을 쓰고(각방이라니 무시무시하죠. 그냥 각자의 방이 있는 것일 뿐입니다), 가끔은 여행도 따로 간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부부 대협정을 통해 격년 단위로 한 해는 혼자 여행, 이듬해는 함께 여행 가기로 했다. 각자 즐기고 함께도 즐기고. 우리는  둘만으로 꽉 차게 충분해 아이도 낳지 않기로 했다. 


주변에선 “각방 쓰면 멀어져.” “그래도 자식은 있어야 해.” 등 남들이 만든 정답을 끊임없이 들이밀었지만 우린 모든 걸 원점으로 돌려 진짜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우린 독립적으로 행복할 수 있었고, 독립적이기에 진짜 필요한 순간 지치지 않고 기댈 수 있었다. 결혼한 지 8년이 된 부부가 아직도 “오빠 잘생겼다.” “H 귀엽다” 이러고 있는 판이니… 


그리하여 이제 쓸 글은 자기 존재를 잃지 않고, 결혼생활을 꾸리려는 이들을 위한 제안이다. 결혼했더니 내 생활이 사라져 간다. 결혼하려는데 내 삶이 끝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혹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데 과연 괜찮을까? 이런 고민이 있는 분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혹시 결혼생활을 이런 관점으로 보면 어떨까요?” 정도, 해결책이 아닌 일종의 결혼 생활 건강보조제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첫 질문으로 돌아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게 무엇일까? 자유의지일 수도, 별자리 운명일 수도 있지만. 함께 사는 사람 역시 우리 인생의 좌지우지하는 존재라 생각한다. 그 어떤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도 함께 사는 이와 불화하면서 행복할 수는 없을 터. 결혼이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인생의 한 챕터를 맞이하며 모두 자신을 잃지 마시길. 


<P. S.>

주간 개복치란 필명으로 글을 써온 개복치입니다. 전 기혼자이고요. 행복하고요. 결혼 이야기로 글을 끼적여보겠습니다.


<다음 주말 글 예고>

둘은 좋다. 셋은 선택이다. 아이를 낳아야 하나 마나 고민하던 결혼 초기. 고민을 싹 잊게 해주는 사건이 생겼는데. 그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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