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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Jun 25. 2020

아내가 세수할 때 남편이 뉴스 읽어주는 이유

예상하는 그런 이유다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 너무 피곤해 세수만 하고 자겠다고 외친 후 화장실로 향한다. 세수를 하려던 아내는 문득 내가 곁에 없음을 알아챈다. “오빠! 오빠가 해야 할 역할을 해야지!” 소파에 앉아 격투기 방송을 보던 난 역할을 다하고자 화장실 문가로 향한다.


스마트폰을 켜고 잠시 뉴스를 검색한다. “자, 오늘 주요 뉴스는 뭐가 있을까. 중국과 인도 국경에서 군인들간 싸움박질이 났다고 하네요. 인도 친구들이 많이 다쳤다는데?” 주요 뉴스부터 유머 게시글까지 세수를 하는 아내에게 주절주절 이야기한다. 그렇다. 난 우리집에서 ‘피곤한 아내에게 자기 전 이것저것 말해주기 ASMR’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느낌이다


액션 영화를 찍을 때 동작을 계획하는 것을 흔히 합을 맞춘다고 표현한다. “너가 여기서 주먹을 날리면, 내가 여기서 쓰러지고.” 잘못 뻗은 주먹에 상대가 진짜로 맞으면 안 되기에,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짜두는 것이다. 주먹이 왔다갔다하는 액션영화의 합처럼 부부 사이에도 왔다갔다 대화의 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쪽 농담을 던지면, 다른 쪽이 상대 이야기를 받아주고. 예능 방송처럼 대화 분량이 적절히 채워지면서도 자연스레 이어지는 대화가 중요하다. 우리 부부 사이에선 대화 분량이 나에게 확 몰려 있다. 아내는 주로 듣는 역할, 난 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굳이 따지면 아내 2 : 나 8 정도의 분량이다.

오해는 금물, 원해서 말하는 역할을 맡은 게 아니다. 원래 난 대화를 주도하는 성격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또래 무리에선 늘 듣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세상사에 대해 아는 게 적은데다 혀도 짧아 발음이 새는 편이다. 대화엔 잼병이었다. 하.지.만… 20대 때 취업 스터디에서 너무 마음에 드는 여성, 즉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그녀가 무려 “전 아는 게 많고, 저에게 이것저것 말해주는 사람이 좋아요”라고 하는 바람에 잘 보이려던 온갖 주제를 예습(?)해 ‘말해주기’에 열중했다. 이 역할이 여차저차 고정되어 결혼한지 10년이 된 지금까지 와버린 셈이다.

아내는 ‘당연하겠지만’ 이야기를 매순간 듣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원하는 타이밍이 있다. 앞서 말했듯 화장실에서 세수할 때, 그리고 잠 자기 전에 잠이다. 처음엔 하루 일과를 이야기해줬다. 하지만 내가 회사와 집을 쳇바퀴 돌 듯 왔다갔다하는 직장인이다 보니 점점 해줄 말이 없어졌다. “오늘은 출근해서 일을 했고요. 점심으론 돼지국밥을 먹었어요. 그리고 뭐더라. 맞아 퇴근을 했네요!” “오빠. 재미없어.” 궁여지책을 찾아낸 방법이 뉴스 읽어주기였다. 스마트폰으로 네O버 뉴스를 검색하면 끝없는 소재가 쏟아졌다.

대학생 시절 언론학개론을 공부했을 때 배운 뉴스의 가치는 근접성, 시의성, 영향성, 신기성 등이다. 독자에게 가까운 이야기일수록, 최근 사건일수록,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수록 뉴스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 아내가 유일한 독자인 ‘우리집 뉴스 방송’엔 조금 다른 룰이 있다.


신기한 이야기는 좋지만 너무 잔인한 이야기나 짜증나는 뉴스는 안된다. 반쯤 졸면서 세수하는 아내에게 살인 사건 이야기를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는가. 대부분의 정치 뉴스도 ‘짜증’ 기준에서 다 걸린다. 별 중요하진 않아도 재밌는 뉴스, 귀여운 뉴스면 좋다.

예컨대 호주에서 벌어진 코알라끼리의 싸움 뉴스. 코알라 두 마리가 대로변에서 서로의 머리를 콩콩 때리며 다퉜지만 양쪽 다 크게 다치진 않았다. 오히려 다친 건 그 모습을 본 호주인들의 마음으로, ‘우리 귀여운 코알라들이 저런 짓을 흑흑’하며 울었다 던데. 반쯤 졸던 아내는 “오빠, 코알라도 싸워?” “몰라. 안 싸우는 줄 알았는데. 성격이 거친 애들이 있나 봐.” 실없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으면 좋은 뉴스다.


내 이야기를 듣던 아내가 잠에 빠지면, 난 아내의 침실에서 스르륵 나와(우리는 각방을 쓴다) 내 방으로 향한다.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 내 취미 활동을 시작한다. 이런 생활은 몇 년이고 이어졌다.

그런데 최근 생긴 의문이 있다. 아내가 내가 말하는 ‘내용’보단 ‘말이 오가는 따스한 분위기’만 즐기는 것 같다는 의혹이다. 온라인 뉴스가 코로나 19 소식으로 도배돼, 몇몇 뉴스를 거짓말로 짜내서 말해줬다. 말이 안되는 뉴스였지만 아내는 별 의문이 없었다. 크게 신경 써서 듣는 것 같진 않았다. 말을 멈추면 그제야 졸리던 눈을 부릅뜨고 항의를 할 뿐 다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듣는 둥 마는 둥 혼미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간다. 이럴 거면 나 그동안 이야기 소재를 왜 그렇게 고민 했던 것일까. 아무리 봐도 내가 ASMR이 된 것 같 같은데.

P.S.
연인 목소리를 ASMR처럼 느끼는 사람 많으신가요? 아기들 잘 때 책 읽어주는 것과 비슷하게 흔한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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