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 2-3] 보르게세 미술관 (2/2)
10시 55분. 9시에 입장했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표를 확인하고 입장할 수 있었다. 입장하자마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하는 천장화는 그동안 참고 있었던 관광객들의 사진 찍기 본능을 꿈틀거리게 한다. 사람들은 카메라에 이 천장화가 다 담기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열심히 찍고 또 찍는다. 여기선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플래시가 터지면 안 된다. DSLR 카메라의 플래시 설정을 하실 줄 모르는 할머니께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플래시가 나와서 미술관 직원에게 계속해서 주의를 받기도 했다.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모르지만 화려한 천장화를 보고 왼쪽 방으로 가면 드디어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의 작품들이 전시된 방이 나온다. 카라바조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다. 그러나 그가 태어나기 몇십 년 전, 그와 같은 이름의 르네상스의 3대 천재 중 한 명인 미켈란젤로가 명성을 떨쳤기 때문에 미켈란젤로라는 이름보다 부모의 고향이자 유년 시절을 보냈었던 마을의 이름인 카라바조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카라바조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평소 즐겨 보던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방송했던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에 관한 주제를 보고 나서다. 카사노바와 이름이 비슷해서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방송을 보고 나서 카라바조의 인생, 철학, 작품들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공부하게 되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유럽 곳곳에 있는데 이 보르게세 미술관에도 그의 대표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를 비롯하여 <성 제롬 Saint Jerome Writing>,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는 소년 Boy with a Basket of Fruit>, <병든 디오니소스 Young sick Bacchus>가 있다. 작품명과 작품을 일치시킬 순 없더라도 작품을 보면 어떤 작품인지 알 정도로 유명하다. 그의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들었지만, 특히 성 제롬. 이 작품을 책에서 봤을 때는 그저 하나의 작품들 중 하나였는데, 실제로 눈 앞에서 작품을 마주했을 때는 작품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검은 배경에 둘러 쌓여있는 해골의 비어 있는 검은 눈동자 부분을 시작으로 성 제롬을 향하는 시선의 움직임은 죽음이 성 제롬을 기다리는 것 같아 나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역시 카라바조!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제일 처음 볼 그의 작품은 <페르세포네의 납치 The Rape of Proserpina>다. 어린 시절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한 만화책에서 많이 본 주제다. 저승의 신 하데스가 농업의 신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에게 반해 그녀를 납치하고 아내로 삼은 스토리다. 제우스의 중재로 페르세포네가 일 년의 2/3는 지상에서, 1/3은 저승에서 지내도록 하였고, 헤어져 있는 그 기간을 겨울이라는 설도 있다. 여러 방을 지나 넓고 긴 방이 나왔는데 사람들이 한 조각상에 몰려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제 베르니니의 조각상들이 나올 차례다.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 (Giovanni Lorenzo Bernini, 1598~1680) 또한 이탈리아 예술 역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미켈란젤로와 함께 천재라고 불릴만할 정도로 그의 업적은 놀랍다. 나보나 광장에 있는 세 개의 분수 중 가장 유명한 가운데 있는 <4대 강 분수 Fontana dei Quattro Fiumi>와 <성 베드로 광장 Piazza San Pietro>을 베르니니가 설계했다.
이 작품은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그 극적인 순간을 묘사한 작품이다. 조각상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천천히 작품을 감상했다. 하데스의 힘줄, 상대적으로 긴 두 번째 발가락, 엉덩이 근육을 보며 감탄하다가 입꼬리가 올라간 그의 음흉한 미소와 반대로 페르세포네의 눈물을 발견하고 소름 끼쳐서 입에서 짧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다음으로 <아폴론과 다프네 Apollo and Daphne>를 볼 수 있다. 이 작품 또한 그리스 신화에서 유명한 소재다. 에로스의 황금 화살에 맞은 아폴론은 다프네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에로스의 납 화살에 맞은 다프네는 아폴론을 멀리하려고 한다. 그런 아폴론이 다프네를 붙잡으려고 하고, 다프네는 그의 아버지에 의해 월계수 나무로 변하고 있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신화를 이렇게 생명을 불어넣어서 조각을 하고 다프네의 생명을 빼앗으면서 이 스토리에 감정이입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찡그린 미간의 주름과 강렬하게 부릅뜬 눈, 굳게 다문 입술을 잘 묘사한 <다비드 David>를 마지막으로 보고 보르게세 미술관은 끝이 난다. 보르게세 미술관은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내부를 한 바퀴 돌면 전시를 다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아직 시간이 남아서 한 바퀴 더 볼까도 생각했었지만, 작품 하나하나 후회 없이 봤었고 허기가 지기 시작해서 미련 없이 미술관을 나왔다. 이제 눈앞에 보이는 보르게세 공원을 가로질러 스페인 광장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