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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철단골 Oct 05. 2019

상견례_1

지영을 만나다

외국인 상사였던 올리비에는 결혼식 날이 되어서야 양가의 부모님이 처음 뵈었다고 했다. 되려 준호에게 물어봤다. 양가 부모님이 만나야 하는 한국 문화는 왜 그런 것이냐고. 준호는 뒷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외국인들 마인드가 이런거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대답할 말이 없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두 사람이 결혼하는데 왜 부모님들이 서로 인사를 해야 되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봤지만,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푸른 눈의 프랑스 상사에게 나는 ‘동양의 방식이야’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준호도 상견례라는 자리가 조금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남들 하는 건 또 다 하라고 배웠다. 어떤 틀이 싫으면서도, 사회적 통념이 주는 무거운 의무감에 거부반응을 느끼면서도, 잔다르크처럼 싸워 나가야 하는 사람이 되긴 싫은 마음이었다. 오히려 우리 나라에서는 상견례를 안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유난스러운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남들 다 하는 것을, 니가 안 하려고 하는 건 마치 뭔가 켕기는 사연이 있는 거라고 오해를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보는 눈이 있는데, 애초에 개인이 이겨나갈 수 없는 게임이다. 눈 하나 있는 마을에 가면 눈 두 개 있는 사람이 비정상이이라던데, 그런 마을에서 눈 하나가 되는 편한 길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대학을 졸업하고 홀로 서울 생활을 하는 회사원 5년차가 되었을 때, 지영이와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준호와 지영도 상견례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지영은 동아리 선배의 소개로 만났다. 화려한 조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성실한 직장을 가진 준호에게 소개팅은 자주 들어 왔다. 준호도 결혼은 하고 싶어서 소개팅을 여러 번 했지만, 나이들고 회사 다니면서부터는 이상하게 학생시절보다 소개팅으로 매력을 느끼는 것이 쉽지 않았다. 차라리 한 가지 매력을 과하게 기대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는 돈만 봐’라고 해서 100억대 이상 부자를 만나겠다고 하면 차라리 쉽단다. 이런 저런 조건들이 다 보통 이상이어서, 빠지는 것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힘들다고들 한다.


인 서울이라고 표현하는 서울 소재의 4년제 대학을 나와서, 너무 바쁘지도, 너무 한가하지도 않은 직업을 가졌으며, 얼굴은 압구정이나 이태원에서 보는 신원확인도 어렵게 느껴지는 뻔한 성형인보다는 차분한 인상, 거기에 너무 커리어적인 목표가 없지도 과하지도 않은 정도의 적당한 욕심, 부모님이 큰 도움을 주실 필요도 없지만 적어도 자식에게 손 벌릴 일은 없어야 하며, 너무 과한 취미는 싫지만 삶을 즐기려고 하는 적당한 센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마디로 100억대 이상 부자보다 어려운 조건을 나열하고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런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성, 외모, 직업, 집안도 나에게 적당히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을 계속해서 만나서 서로 주말에는 무엇을 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묻는 어색한 자리가 이어졌다.


지영은 그런 의미에서 준호가 생각했던 이상형에 가까웠다. 이미 여러 번의 소개팅을 통해 처음부터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기대한적이 없었던 준호는, 공기업에 다니는 그녀의 직업이 우선 마음에 들었다. 계속 만나서 결혼을 하더라도 보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은 안정감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작고 아담한 체구도 마음에 들었다. 미녀라고 할 순 없었지만, 보면 볼수록 참한 느낌을 주는, 질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사치가 심한 편도 아니었지만, 그런 방면의 센스가 없는 편도 아니었다. 힙한 레스토랑에서 먹어보는 것도 좋아했고, 잡지에 나오는 트렌디한 명품 아이템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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