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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철단골 Oct 25. 2019

마녀_14

마녀독대

지수와 황상무는 1층 입구에서 만났다. 지수가 식사후 커피 한잔 할때 즐겨 가는 곳 중 조금 먼 곳으로 갔다. 직원들이 볼까봐서였다. 입구에 들어서자 좀 시끌벅적했다. 황상무는 카페로 가는 길 내내 자신이 그 동안 해왔던 일들을 읊었다. 아멜리에에서 최초로 최연소 마케팅 팀장이 되었던 이야기, 아시아 시장에서는 잘 안 되던 버린 브랜드였는데 그녀의 손을 타서 성공한 브랜드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지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충 대충 듣고 싶었지만 그 와중에 글로벌한 기업의 이야기들이 재미있어서 솔깃하게 들었다. 회사 생활을 해보지 않은 것이 콤플렉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재밌었다. 황상무가 중간 중간 섞는 지나친 자기 자랑은 좀 거슬리긴 했지만 외국인들과 함께 한 사무실에서 일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커피를 시키고 두 사람은 앉았다. 방금 회의를 같이 했음에도 황상무는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는듯해 보였다. 사람들이 기분이 나빴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 보이는 해맑은 표정이었다. 이제는 아시아의 각국에 자기가 어떻게 자신의 마케팅 스토리를 전파했는지에 대해 읊고 있었다. 이미 면접 같은 식사 자리에서 들었던 얘기지만 훨씬 더 길고 자세하게 얘기했다. 지수는 언제 말을 멈춰야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커피의 진동벨이 울리자 황상무가 호들갑스럽게 자기가 다녀오겠다고 했다. 이럴 때 보면 너무 오만하거나 해서가 아니라 그냥 스스럼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커피를 들고 온 황상무가 앉아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려고 했다.


- 아니, 그래서 그 때 APAC 부사장이요..

- 상무님.

- 네네.

- 아까 미팅에서요.


지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미팅이 끝나자마자 나오라고 한 터라 자기도 딱히 할 말을 정리하지는 않았었다. 갑자기 황상무가 말을 이었다.


- 아까 미팅에서.. 그 섀도우요, 그런 포뮬라는 사실 글로벌 기업에서는 절대 컨펌 날 수 없는 거거든요. 이번까지는 스팟성 콜렉션이라니까 제가 그냥 넘어 가지만 다음부터는 대표님께 그런 내용물이 안 가게끔 제가 미리 조절 할게요.

- 상무님 사실 저희 회사에서 상품 기획 조직은 마케팅과 분리되어 있는 조직입니다.

- 어머, 그쵸. 아직 시작하는 단계니까. 근데 사실 그게 말이 안 되는 거긴 해요. 글로벌 회사들은 모두 디벨롭먼트 마케팅과 오퍼레이셔널 마케팅으로 나뉘거든요. 디벨롭먼트 마케팅은 제품 개발하고 오퍼레이셔널 마케팅은 이제 영업이랑 같이 씨름하고 갖다 파는 역할 하는거죠. 둘 다 마케팅이에요.

- 상품 기획도 마케팅이라구요?


지수는 그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또 솔깃했다. 황상무는 갑자기 카페 카운터에 가서 볼펜을 빌려 오더니 티슈에 뭔가 끄적이기 시작했다. 쓰면서 설명했다.


- 마케팅 조직 안에 개발 마케팅과 오퍼레이셔널 마케팅이 있어요. 개발 마케팅은 제품 개발하고 광고도 만드는 역할을 하는 거구요, 오퍼레이셔널 마케팅은 영업이랑 커뮤니케이션도 해야되고, 홍보도 여기 있고, 각종 마케팅 이벤트들도 진행하구요. 그리고 또 다른 큰 축이 영업 조직이 있고 코퍼레이트 조직으로 인사부 재무부 등등이 있구요. 크게 세 축이라고 보시면 돼요. 글로벌 회사들 조직은 원래 더 복잡한데 일단 기본은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우리도 만들어 나가야죠.

- 하지만 마케팅은 제품을 알리고 홍보하고 하는 역할이었는데요.


황상무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아주 밝은 표정의 황상무를 보며 지수는 순간 당황했다.


- 그쵸 그쵸. 아직 준비 안 된 단계시라는 거 저도 잘 알고 왔어요. 걱정 마세요. 그거 대표님이랑 제가 앞으로 만들어 나가야죠. 지금 R&R이 좀 애매한 것 같아요.

- 저희 회사 사람들은 이미 세팅이 잘 되어서 누가 무슨 일 하는지가 명확한데요.

- 지금까지. 지금까지요. 근데 뷰티 사업 하려면 상품 개발, 구매, SCM 얼마나 많이 필요한데요. 패션이랑은 또 달라요.


지수는 패션이랑은 또 다르다는 그 말이 순간 거슬렸다. 사실 패션에 있어서는 황상무보다 자신이 한 수 위라고 생각했다.


- 근데 상무님은 패션보다는 뷰티를 먼저 봐주시는 것이 순서일 것 같구요.

- 어머, 왜요? BRUSH는 한 브랜드 아닌가요?

- 그런데 기존 직원들이 해오던 방식을 하나 하나 발전시키려고 하는거지, 한꺼번에 많은 걸 바꾸면 저희 같은 작은 조직은 힘들 수 있어요. 그리고 상무님은 일단 내년도 뷰티 런칭에 집중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구요.

- 제가 프랑스에서 MBA하고 돌아와서 브러시를 선택한 이유 중 제일 큰 게 뭔지 아세요? 뷰티랑 패션을 둘 다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어요. 아니 대표님 내가 프랑스에서 럭셔리 비즈니스를 배우면서 느낀건데 패션한 사람은 뷰티할 수 없을 수 있어도, 뷰티한 사람은 패션할 수 있겠더라구요.


지수는 황상무의 이야기에 뭐라고 반박해야할지 잘 모르겠는 자신이 답답했다. 이상하게 괜히 말이 되는 것 같이 말하는 것이 황상무의 재주였다. 특히 워낙 빠르게 말하고 동작이 크니 중간 중간 말을 언제 끼어들어야 할지 타이밍 잡기도 어려웠다. 지수는 말이 느린 편도 아니었지만 빠른 편도 아니었다. 차근 차근 말하는 습관의 지수는 황상무와 대화를 하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상무는 남은 커피를 들이키며 한 마디 더 했다.


- 대표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수의 걱정은 황상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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