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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철단골 Jan 04. 2020

FIRE족을 꿈꾸며

트렌드 로드 - 뉴욕편

토요일에 눈 뜨자마자 엄마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트렌드로드라는 방송을 봤는데 재미있었으니, 한 번 보라고 했다. 그냥 또 그저 그런 여행 리얼리티인가보지 하고 솔직히 큰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뉴욕이라고 하니 보겠노라고했다. 그러자 몇 분 후에 전화가 온다. 엄마였다.


- 지금 재방송 한다. 지금 봐봐.


알겠노라고 하고 전화를 끊고 티비를 켰다. 그냥 보다가 재미 없으면 곧 채널을 돌리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 방송은 패널부터 좀 남달랐다. 김난도 교수, 조승연 작가, 에릭남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거의 나오지 않고 트렌디한 뉴요커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냥 부자거나 잘 나가는 사람들의 머나먼 얘기만은 아니었다. 틀었을 때는 이미 총 7개의 챕터 중, 챕터 2를 보여주고 있었다. 챕터2의 주인공은 태국에서 온 이방인이었다.


영어를 미국인처럼 하는 태국인을 보고 처음부터 선입견을 가졌다. 자기가 하고 싶은 사업을 해서 성공한 부자 이민자 2세대 얘기인가보다. 하지만 그도 처음에는 불법 체류로 최저 임금의 반만 받고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꿈꾸는 삶은 FIRE이다. FIRE족이란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약자라고 한다. 빨리 벌만큼 벌고 빨리 퇴직해서 산다는 것이다. 그의 목표 금액은 1백만 달러, 한화 약 12억원이었다. 일년에 이자가 약 4천 700백만원 정도만 나와도 그 돈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최소한의 삶을 살 수 있는 돈을 최대한 빨리 모으기 위해 FIRE 족인 뉴요커들은 부업을 뛰어야 한다고 한다. 닥치는대로 우선 돈을 벌고, 소비는 최소화 한다.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는데 지쳤다고 말하는 그들은 집도 작은 집에서 옷도 최소한의 벌수로 생활하며 은퇴 후의 삶을 꿈꾸며 살고 있었다. 기성세대에 속하는 김난도 교수는 말한다.


- 사회 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알겠지만, 올라갈 수록 보는 시야도 달라지고, 새로운 기회도 올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너무 빨리 포기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FIRE족은 비단 그냥 힘들어서 빨리 포기하려는 기성세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한다.


- 회사를 다니는 것은 아주 재미있지도, 아주 별로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목표 금액을 벌고 나면,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제 2의 열정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 말에 큰 공감을 할 수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회사가 100% 체질에 맞고 너무 좋아 죽겠는 마음으로 다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도 그렇다. 내가 몸 담은 업계가, 회사가 별로지도 않지만, 엄청 좋지도 않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너무 싫은 사람들도 많은 걸 본다. 그러면 그냥 '그래, 돈 주는 곳이 이 정도면 됐지 뭐'라는 마음으로 위안을 얻고 그냥 또 스스로 마음을 추스른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의 번뇌는 인간의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하고 싶은 일은 (이상하게도) 대부분 리스크가 더 큰 일들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밀레니얼들은 도전하고 싶고 열정이 있지만 무모하지 않다. 꿈만 좇는 것이 못마땅했던 기성세대들의 비판도 보기 좋게 비켜 나간다.


FIRE 족의 예시로 나온 두 명의 밀레니얼 중 하나는 얼른 퇴직해서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고 했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글쓰기와 남을 가르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퇴직 후에 그냥 쉬고 싶은 것이 아니고, 어려움을 피하고 싶은 나약한 마음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더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서다. 그래서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한 것이, 바짝 벌고, 안정망을 구축한 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새해에는 내가 언제 행복해하는지 스스로를 좀 관찰해보고,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무엇이 행복하게 해주는 지 알면, 행복을 찾기 위한 방법도 더 잘 보이는 날이 올 거라고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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