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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행고래 May 11. 2016

이것 또한 감사한 일,

그녀의 말 한마디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 날

춥다!


 어제 하루종일 봄비가 내린 탓인지 오늘 아침 출근길은 꽤나 축축하고 서늘했다. 어젯 밤 꾸었던 꿈을 계속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저 멀리 검은 물체가 어슬렁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동동아!!!!"

 "냐~옹"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두 팔을 벌려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애교섞인 하지만 앙칼진 울음을 내며 나에게 머리를 내밀었다. '동동이'는 우리 동네 길고양이들 중 하나인데 붙임성이 좋아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듬뿍받는 아이다.


"동동아~ 잘 지냈어? 밥은 먹은거야? 나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 아! 이러다 늦겠다!! 회사 갔다올게~"

하며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돌아서는데 그녀가 연신 냐옹 울음소리를 내며 집 근처 초등학교 정문까지 날 따라왔다. 마치 괜찮다고, 걱정하지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감사하며 살아요,

 나의 일터는 준종합병원이라 하루에도 몇 백명의 사람들이 오고 간다. 그 많은 사람들의 수만큼 생김새는 물론 성격들도 다르며, 그리고 개개인의 사연들도 제각각이다. 찌개 뚝배기에 화상을 입은 요리사지망생, 압착기계에 손이 절단된 예비신랑 등.. 다들 열심히 살아간 댓가 치고는 참으로 아픈 사연을 가지고 병원을 방문한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한 70대로 보이는 노부부가 방문을 하였는데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는 할아버지 환자의 머리에 피가 가득했다. 편마비 환자인데 혼자서 걸으려다 넘어져 이마가 찢어진 것이었다.

 봉합수술 준비를 마치고 과장님(직원들은 담당의들을 '과장님'이라고 부른다.)이 환자 이마에 마취주사를 놓자 옆에 서있던 부인이 남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솔직히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터라 빨리 마치고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더군다나 수술이 늦게 끝나 퇴근시간을 넘겨 불만이 가득차 있었더랬다.


"마비 오신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과장님이 봉합을 하며 물었다.

"한 20년 되었어요."

"아이고~ 그럼 그동안 경제활동을 누가하셨대? 어머님이 하셨어요?"

"네~ 정부에서 지원받는 것도 있고, 여기저기 일하며 살았죠."

"자식들은요?"

"자식들 도움받기가 어디 쉽나요? 며느리들이 좋아나 할까"

"정말 힘들게 살아오셨겠어요"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부인이 남편의 손을 더욱 꽉 지으며 말했다.


"남편이랑 이렇게 사는 것 조차 복받은거죠. 복도 이런 복이 없어요~하루하루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순간, 과장님과 나의 모든 동작들이 몇 초동안 멈추어졌다. 그리고 과장님은 무언가 생각이 많으신지 아무말씀도 안하시고 고개만 연신 끄덕이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감동이라는 감정보단 무언가 내 속에서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다행히 마스크를 쓰고 있어 아무도 내 눈물을 보지 못했다. 난 얼른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내가 반창고를 붙이고 환자를 침대에서 부축해 일으켜 세울 때가지 연신 "정말 감사해요..어쩜 반창고도 이렇게 정성스럽게 붙여주셨어요..정말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무엇이 그렇게 감사한 걸까, 그리고 난 왜 그녀의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을까.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고 있는 그녀가 부러워서 일까 아니면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가 바보같아서일까.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조차 감사할 일인데..왜 난 오늘 아침 옷 따뜻하게 입고가라는 엄마의 말에 퉁명스럽게 이야기했을까, 왜 난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 온 친구의 전화에 바쁘다며 빨리 끊어버렸을까,



그냥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그냥 그렇게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면 되는 것을.


저녁이 되니 아침의 그 축축한 기운이 많이 사라져있었다.

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헤어샵에 들러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내 모든 감사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길 고양이 '동동이'를 또 만났다. 이름을 부르자 또 냐~옹하는 울음소리를 내며 자기 몸을 내 옷깃에 비벼댔다. 난 그녀에게 속삭였다.


"동동아 고마워, 나 좋아해줘서. 또 고마워 오늘 아침 학교앞까지 같이 가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세상은 감사한 것 투성인 것 같습니다. 잠을 자는 일, 하늘을 바라보는 일, 자전거를 타는 일, 사람들과 수다를 떠는 일 등 감사한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감사한 것들을 보지 못하고 늘 불평, 불만을 가지고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 물 한 컵을 놓고도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 마음의 꽃밭에 핀 감사의 꽃향기가 사랑하는 당신의 가슴을 어루만지게 하소서.        -정호승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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