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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킥 May 03. 2017

나폴리 할아버지의 2유로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나폴리

움베르토1세갤러리의 예술가(?)

“난 영어가 약하지만 할 말이 있어요”

잘생긴 나폴리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와 위즐렉이 아케이드형 쇼핑몰 움베르토1세 갤러리에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나는 이 지역 예술가인데 내가 찍은 사진 두장을 특별히 싸게 팔게요. 이 사진들 중 이렇게 2장에 2유로에 줄게요.”


이 예술가(?) 할아버지가 건넨 사진은 1898년 움베르토1세갤러리 모습을 찍은 사진과 나폴리 아이들을 담은 흑백사진이었다. 할아버지께 2유로를 건네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위즐릭에게 원하는 고르라고 했더니, 아이들 사진을 골랐다.


“나는 이게 나폴리스럽게 느껴져.”

움베르토1세갤러리 사진은 자연히 내 몫.

“그런데 아까 저 할아버지가 자기가 찍은 사진이라지 않았어?”

“그러게. 네가 가진 사진은 100년도 더 전에 찍은 건데? 할아버지가 그렇게 나이가 많으신가?”

할아버지는 사진에 당당히 ‘by Sergio'라고 이름까지 적어 놓았다. 이런 귀여운 사기(?)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움베르토1세갤러리의 예술가(?) 할아버지와 함께. 어깨 위의 저 손...역시 이탈리아 남자다.

우리가 머문 이 갤러리는 1890년 이탈리아 국왕인 움베르토1세가 만들었다고 한다. 움베르토1세는 오랜기간 도시국가들로 분열돼 있던 이탈리아 반도를 1861년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의 아들이다. ‘마르게리타 피자’의 주인공으로 익히 알려진 마르게리타 왕비가 바로 그의 아내다.


움베르토1세 갤러리가 있는 해안 지역은 이탈리아 3대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산카를로극장, 나폴리왕궁과 플레시비토광장, 누오보성 등 구결할 만한 공간들이 몰려 있다.


침몰 난민을 위한 위령비

움베르토갤러리 앞 식당에서 피자와 파스타로 식사를 한 뒤, 누오보성을 지나 나폴리항으로 향했다. ‘나폴리항’이라고 하면 왠지모르게 낭만적인 느낌인데 실체는 그냥 여객터미널이다.


여객터미널 광장에는 붉은 철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IL TOTEM DELLA PACE, 침몰된 난민들을 위한 위령비였다. 이탈리아나 그리스가 시리아, 나이지리아 등 중동이나 아프리카 지역 난민들이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난민선들이 종종 지중해에서 침몰해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는 소식도 나오고 있다.

  

“난민문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이건 유럽국가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해.”

위즐릭은 위령비를 보며 무척 심각해졌다. 그녀는 대학원에서 국제보건을 전공했는데, 그래서인지 인도주의적 문제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인도에서도 그곳 대학생들과 인도 공중보건 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나폴리여객터미널 앞에 놓인 '평화를 위한 상징물' 철탑.


텅빈 플레비시토 광장과 나폴리왕궁

위령비를 뒤로 한 채 산카를로극장으로 향했다. 산카를로극장과 나폴리왕궁은 하나의 단지로 이어져 있었다. 나폴리왕궁(레알레 궁전) 맞은 편의 산프란체스코디파올라 성당은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 마냥 반원형의 회랑이 플레비시토 광장을 감싸고 있었다. 바티칸 광장과 플레비시토 광장의 가장 큰 차이는 바티칸과 달리 나폴리의 이 광장은 텅텅 비었다는 점. 남부 이탈리아 여행을 가도 아말피해안으로 주로 가는 식이고, 나폴리는 인기 관광지는 아니다보니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나폴리왕궁 내부로 들어갔다. 실내로 들어가기 전 중정(中庭)을 거쳐야 하는데, 이곳에도 우리 둘 뿐이었다. 우리는 2시간가량 함께 궁정을 둘러봤다. 평소 국내에서도 미술관 전시가 있으면 집중해서 보기 위해 혼자 관람하는 편인데, 신기하게도 위즐릭과 함께할 때는 오히려 혼자일 때보다 더 꼼꼼하게 관람을 했다. 재밌었던 건 이탈리아 통일 전 나폴리 왕국이 프랑스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아서, 한동안 나폴레옹 세력 아래에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관람은 폐관시간이 돼서야 끝났다.

산프란체스코디파올라 성당과 그 앞의 플레비시토 광장. 나폴리는 관광객이 적어서인지 어딜가나 한적한 편이다.


카페 감브리누스와 가이드북

“이제 우리 뭐할까?”

이날 하루종일 위즐릭은 이렇게 내게 물었고, 그때마다 나는 대답했다.

“이 근처에 감브리누스라는 카페에 가자. 유명하기도 하고 역사도 오래됐대”

하얀 벽면에 금장 장식이 돼 있는 고풍스러운 카페였다. 꼰빠나를 골랐고, 위즐릭도 같은 걸 시켰다. 한국에서 꼰빠나를 자주 먹진 않지만, 이곳 꼰바나는 커피가 더 적었다. 아주 적은양의 에스프레소 위에 크림이 듬뿍 올려져 있었다.


“이런 카페는 어떻게 알았어?”

위즐릭은 감브리누스가 마음에 들은 눈치였다.

“가이드북이지 뭐. 한국 가이드북은 엄청 친절하거든.”

한때는 겉멋이 들어 호주를 본사를 둔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을 이용했지만, 론리플래닛만 들고 간 여행에서 헤멘 후 부터는 꼭 한국 가이드북을 사용한다. 론리플래닛이 여행지 취재의 윤리나 정확성은 뛰어날지 몰라도, 한국 가이드북만큼 친절하진 않다는 판단이다.

플레비시토 광장 인근의 명물 카페 감브리누스. 고풍적인 내부와 흰색 유니폼의 웨이터가 인상적이다.

위즐릭도 자기가 가져온 가이드북을 보여줬다.

“나폴리만 다룬 책이 이것뿐이라서 이걸로 골랐어.”

‘나폴리는 치안이 불안한 도시’라는 인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나폴리만 다룬 여행책이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네덜란드는 그나마 같은 유럽국가라 나폴리만 다룬 책도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네덜란드 가이드북의 장점은 지역마다 몇가지 추천코스를 지도에 표기해 준다는 것. 자유여행이라지만 이렇게 코스를 정해주면, 이를 토대로 변형할 수 있어 편리할 것 같다.


그 사이 저녁이 됐고 날이 추워졌다.

“이제 우리 뭐할까?”

위즐릭은 또 내게 물었다.

“유명하다는 피자집을 아는데, 일단 숙소로 가서 재킷 좀 입고 나오자”

나나 위즐릭이나 맨투맨티 하나만 입은 상태였다. 우리는 저녁식사에 앞서 숙소로 발길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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