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월 첫째와 7개월 둘째와 함께 한 가족 여행
희끄먼 하늘로 어두 컴컴한 날이었다. 둘째가 생기고 처음 여행에 나섰다. 첫째 나이 27개월, 둘째 나이 7개월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나가는 여행은 쉽지 않지만 나가기로 결심했다. 여행지는 경주였다. 죽은 자들의 무덤이 줄비한 곳이지만, 그곳은 살아있는 자들의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난 경주를 좋아했다. 그 좋아하는 곳에 가족과 여행을 간 것이다. 작은 박스카에 네식구가 옹기종기 앉아 출발했다. 이 차가 견딜 수 있는 최대치이지 않을까 싶다. 경주로 가는 길은 수월했다. 첫째는 흥얼거렸고, 둘째는 잠에 들었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내 마음도 설레었다.
경주국립박물관에 도착했다. 현장학습인지, 수학여행인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많았다. 희끄먼 하늘도 어느새 파란 얼굴을 보여주며 쨍했다. 첫째는 휴대용 유모차에, 둘째는 아기띠에 매고 주변을 산책했다. 날이 좋았고, 바람도 선선했다. 다만 첫째, 둘째 둘 다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도 컸지만 이 시간을 그냥 보내기도 아까웠다. 경죽국립박물관에 간 이유는 아내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경주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준희씨는 경주로 놀로온 우리 가족을 위해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큰 키에 소니 카메라 2대를 목에 건 남자가 걸어왔다. 반갑게 웃으며 손 흔들며 오는 그의 첫인상은 정감이 가는 모습이었다. 서로 소개를 한 뒤, 가볍게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여러 사진 스팟을 알고 있는 준희씨를 이리저리 옮기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진 촬영 후 준희씨와 아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와 준희씨가 처음 만난 것은 대학교 신우회였다고 한다. 이과에서 심리학으로 전과를 한 준희씨, 경찰행정에서 심리학을 복수 전공한 아내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그 뒤 서로 비슷한 가치관과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졸업 후에는 인사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둘은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어 만났고 지난 시간을 되새김질해보는 듯했다. 내가 모르는 그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질투스러운 감정도 일어날만했지만 난 즐겁게 옆에서 듣고 있었다.
준희씨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유럽풍의 키즈풀빌라로 출발했다. 우리에겐 조금은 거금을 들여 예약한 숙소였다. 원래는 아이들과 물놀이까지 하려 수영장까지 예약을 했지만, 두 아이의 컨디션으로 인해 아쉽게 취소를 했어야 했다. 도착한 숙소는 외관부터 마음에 들었다.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더 분위기가 좋았고, 3채의 독채 중 우리만 예약해서 그런지 마당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첫째가 좋아하는 모래놀이터가 있어서 까끌까끌 모래를 손으로 쥐어보고, 삽으로 떠서 덤프트럭에도 올리는 모습을 보니, 이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빌라 안에는 수영장이 있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키즈룸이 따로 있었다. 부엌놀이도 하고, 미끄럼틀도 탈 수 있으니 첫째가 좋아했다. 둘째는 아직 기어 다니기 때문에 방안을 휘저으며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허기짐이 느껴진다 생각하고 시계를 보니, 이미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가까운 마트가 10분 거리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간단히 장을 보고 저녁을 해 먹기로 했다. 목살과 버섯들을 다 구워 먹었다. 저녁을 먹은 뒤,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기로 했다.
아이들이 잘 동안 마당에 캠핑용 장작에 불을 붙였다. 주변은 조용했고, 창작 타는 ‘타탁 타탁‘소리만이 내 귓가에 들렸다. 그날 밤은 달이 커 보였는 데 나중에 뉴스에 보니 슈퍼문이 뜨는 날이었다고 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조용히 장작 타는 걸 보고 있으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것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불기둥이 다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고, 밤바람이 얼굴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얼마 만에 가져보는 나만의 시간인지 이번 여행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우리 가정이 이렇게 추억을 하나씩 만들어나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것을.
다음 날은 숙소를 정리 한 뒤 황리단길 국숫집에 방문해 가볍게 소면을 먹은 뒤 경주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 ‘커피플레이스’에 방문하였다. 커피를 좋아하는 편인데, 경주에 많은 카페가 있지만 내 기호에 가장 맞는 카페는 그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커피맛도 맛이지만, 가게 글들이 마음에 들어서이지 싶다. 타 커피집과 다르게 커피마다 이야기를 적어 놓았고, 글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서였다. 처음 방문했을 때 카운터 위에 비치된 책을 읽었는 데 아마 20분 정도 그 책을 보았을 것이다. 대구에서 커피를 하다 경주에 내려온 이야기, 커피에 대한 생각, 몇 가지 에피소드들 커피플레이스라는 곳의 이야기가 책으로 기록돼 있었기에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커피 두 잔을 연거푸 마신 뒤 대구로 돌아갔다.
여행은 결국 돌아오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이제 다시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