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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Jun 10. 2022

이제 그런 건 없다



왜 갑자기 흑화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다가 갑자기 그냥 그래버렸다. 


남들 다 하는 블로그처럼 하려고 구조도 만들고, 테마도 만들고 그랬지만 결국 그것도 질리고 (지치고) 맞춰서 쓰려는 의지가 없어지니까 또 안찾아오게 되었다. 할 때는 재밌다가 질려서 먼지만 쌓이는 게임기처럼 말이다. 그럼 남들에게 보여지는 글을 쓰는게 나에겐 고작 게임 정도의 의미였나? 아니, 나에겐 게임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가끔 의무적으로 게임을 하기도 한다. 게임을 통해서 해소되는 것과, 몰입하면서 찾아오는 즐거움에 빠져드는 것이 확실하고 의미있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하니까. 그래봤자 한 2-3년에 한 번 정도 한두달 빠지는 것 뿐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애초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영 성미에 맞지 않는다. 내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일을 했고. 차라리 질문을 받는다면 얘기를 해줄 순 있다. 나는 딱히 내 상황이나, 구체적인 정보를 의도적으로 가리거나 말하고 싶지 않다거나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예전부터 그랬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나 스스로도 속일 정도로 지웠다. 얼버무리거나 민망하게 무마하기보다는 정면돌파를 자주 하는 편이었다는 말이다. 그것도 딱히 뭔가 수치스러움이나 그런 게 아니라, 괜히 이것저것 내 얘기를 하는게 유난 떠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그러는게 유난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그런 걸 찾아보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의 대화가 즐겁기도 하고, 그렇게 공감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저 나는 잘 못하겠다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그런 거다. 어떤 일을 얼만큼 했고, 얼만큼 벌었고, 무슨 문제가 있었고. 이게 또 막상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는데, 계속해서 그 얘기를 내가 굳이 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하나 하나 되짚어가는 것도 피곤하고 그런, 여튼 그런 느낌이라는 것이다. 


막상 따지고보면, 지금 별로 나쁜 상황은 없다. 일도 잘 되고 있고, 무지무지 바쁘고 돈도 잘 벌리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종소세 신고를 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작년에 퇴사했을 때 목표는 연봉의 두배를 버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무난히 달성했다. 사실 달성하려는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사를 준비했을 때의 치열함과 이후에 찾아왔던 불안함 등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이렇게 쓰고보니 못한다고 해놓고, 결국 할 말은 다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늘 이렇다.


내 생각은 마치 우로보로스처럼 계속해서 나를 삼키며 뱅글뱅글 돈다. 그렇게 제자리. 하지만 제자리인줄 알았던 이 곳이 가끔은 멀리 이동해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딱히 목적이나 의도, 방향이나 의미같은 건, 크게 없다. (작게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당분간 그런 이야기들을 조금 더 해보려고 한다. 나는 가끔 내 안에 문장이 차올라서 어쩔 수 없이 터질듯이 생각이 나올 때가 있다. 그걸 어떻게든 뭐로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종종한다. 이곳에 찾아오는 건, 결국 어떤 의지보다는 재채기가 나오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욕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혹시, 나는 일도 그렇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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