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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Oct 08. 2022

바쁜 마음

바쁠 땐 왜 마음을 다치게 될까


마음이 바빠지면 누군가 탓을 하고 싶어진다. 바빠지면 자꾸만 사고가 생기고, 문제가 터지고 할 일이 많아지는데, 그럴 때 내가 잘못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누군가 잘못해야하잖아? (사실은 아무도 잘못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럴 때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타겟을 찾는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도 하고, 그 순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시달린 부모님이 집에 와서 괜한 일에 예민하게 군다거나, 학교에서 힘든 일을 겪은 아이가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일은 흔한 케이스다. 밖에서 힘든 일을 겪은 뒤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기대는 것이 당연할 것 같지만, 쉽게 그렇게 되진 않는다. 사람이란게 참 그렇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5년이 넘었지만, 할머니는 아직도 병원 욕을 한다. 병원에서 잘 했으면 죽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나는 그 순간에 아버지 옆에 계속 같이 있었다. 할머니의 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할머니가 여전히 그 얘기를 할 수 밖에 없는 마음도 내심 이해가 된다. 할머니에겐 빌런이 필요했다. 


때로는 또 다른 누군가가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 아냐, 잘하고 있어. 그래도 괜찮아. 살다보면 그럴 수 있지. 그런 일을 겪다니 너무 속상하겠다. 간단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런 이야기만으로 상대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나는 공감하는 일이 그저 말만 건네면 되는 그런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누군가의 감정을 느끼고, 그 사람에게 공감해서 이야기를 건네는 건, 큰 힘을 써서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해야하고, 필요하니까 마음의 힘을 쥐어짜서 마주한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잘하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도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일을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잘하기 위해서 쓰는 근육과 그냥 일을 끝내기 위해서 쓰는 근육이 아예 다른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나는 일을 ‘잘’하고 싶다. 그러려면 일이 무엇인지도 알아야겠지만, 잘하는 게 무엇인지도 생각을 해야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저 해내고 있다. 그게 가끔 나를 무력하게 만들거나, 무용하다고 느끼게 하기도 한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끄적이는데 많은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술을 마실 땐 늘 즐거운 게 좋고, 회의 할 땐 목적이 있는게 좋다. 가족과 함께 할 땐 서로 편안하고 즐거운게 좋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땐 그저 대상에 집중하는게 가장 좋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 덜어내고 덜어내도 어딘가 남아있는 작은 얼룩이 있다. 


의외로 멀리 바라보고 큰 미래를 상상하다보면, 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3키로를 뛸 마음으로 나가면 10분만 뛰어도 힘이 들지만, 10키로를 뛰려고 마음 먹고 달리면 삼십분은 거뜬하다. 그리고 한번 끝까지 가보고 나면, 다음은 생각보다 시간이 쉽게 가기도 한다. 노래 가사를 알고 듣는 것과, 모르고 들을 때의 차이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힘들어도 끝까지 가보는 게 중요하다는 건, 그런 의미라고 생각한다.


나는 일한다. 그리고 일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일해야하고, 심지어 이제는 정말 잘해야 한다. 그게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설렌다. 여전히 부족하고 어설프고 미숙하다. 꼭 지나간 뒤에서야 그런 것들이 보인다. 되도록 조금이라도, 반드시 이전보다 나아지기 위해 이를 악물고 힘을 내보지만, 그런 과정에서 늘 폐허가 되는 자리들이 있다. 부디 이런 마음과 태도들이 다른 사람의 발목만은 잡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되도록이면, 손이 닿고 시야에 보이는 이들만큼은 원하는 곳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한 ‘일을 잘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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