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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이상 Apr 05. 2023

생각을 바꾸는 생각


가끔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곤 한다. 특히 이렇게 오랜만에 기다렸던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먼저 생각을 하고 문장을 떠올리는게 아니라, 손끝에서 문장이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언어로 생각을 하는가? 하고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오히려 머릿속에 있는 어떤 그림이나 상상, 형태를 알 수 없는 구름 같은 것들을 문장으로 구체화 하는 느낌이 더욱 선명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표현하지 않으면 내 생각은 형태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믿기도 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에.


쳐낸다는 말을 종종 쓴다. 특히 할일이 많을 때, 마구 쌓여있을 때, 잘하기보다는 일을 없애야한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 쳐낸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쳐내진 일들을 보았을 때, 허탈감이 들기도 하고 생각하지 못하고 일을 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 가만히 생각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이게 맞나? 저렇게 해도 되나? 왜 그렇게 할까? 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끄적거려보기도 하고, 걸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할 수록 확장되고 이어지는 생각들이 있다. 그럴 때는 분명 언어를 기반으로 생각한다. 완전한 문장이 아니더라도, 언어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고르고 곱씹고 다시 한 번 상기해보기도 한다. 그게 아마 '사유'라고 한다면, 나는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느낌은 달라지기 어렵다. 나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느낀 감정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 덥다고 느낀 것을 차갑다고 느끼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래서 형용사는 명령문으로 만들 수 없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생각은 다르다. 생각은 부딪치고 논의해서 변화하거나 혹은 새롭게 떠올릴 수 있다. 덥다고 느낀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덥다는 생각은 시선을 달리할 수 있다. 만약 용광로에 가깝게 일하다가 나오면 지금도 시원하다고 느낄지도 몰라. 인형탈을 쓰고 일하다가 벗으면 이 날씨도 갑자기 선선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 생각은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관점을 통해 달라지고, 또 변화하기도 한다.


나는 다르지 않지만 같지도 않은 것들을 갈라내는 것을 많이 고민하다. 생과 삶을 분리하려고 하고 느낌과 생각의 차이를 명확하게 하려고 고민한다. 그것이 내 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때로는 그 사이에서 오가면서 중첩되고 중복되는 것들을 반복하기도 하는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이 힘들다고 말하면, 사실 오늘 단비라 세상에 필요한 비라고 말하면서 떠올리게 되는 인식과 느낌의 차이, 그 틈에 집중한다. 


그거에 집중해서 뭐가 되냐고?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꼭 뭐가 되어야지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삶은 그런 것이다. 생은 그렇지 않을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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