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다이어리 15
오랜만에 글을 쓴다. 그 이유는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뭔가 마음이 무거워지는 부정적인 사건이 있었다는 건 아니다. 지난 한달 정도의 시간을 되돌려 생각해보면 이상하게 어제나 그제나 그게 그거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이런 기분이 내일과 모레가 되지 않기 위해 혼신을 다해 애를 쓴다. 하지만 그렇게 애를 쓰면서 하는 일은 고작 잠을 푹 자는 일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벅차다. 해야할 일들을 늘어놓고 보면 하나하나 카운터펀치가 날아오는 것처럼 묵직해 보인다. 이 몸 무거운 것만으로도 벅찬 인생인데 왜 이리 무거운 것들이 많은 건지.
기대하고 걱정하다보면 무거워진다. \<고독한 미식가\> 일본 드라마 주인공인 ‘고로’가 어떤 편에서인가 문득 말한 적 있다.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어디에도 얽히지 않고 가볍게 살아야 한다고. 그건 마치 속박을 멀리하는 자유로운 남자의 삶, 혹은 고독한 늑대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연 재해라던가 전쟁 등을 통해 언제 삶이 무너질지 모르는 경계를 살아가는 일본인의 삶을 반영한 말일지도 모른다. 하루키가 옴 진리교 사건을 파헤쳤던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을 걱정하는 것은 하루하루의 일상을 무겁게 만든다. 너무 가볍게만 지내는게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도 그것 나름 대로의 문제가 있고 비판의 지점이 있다. 타인을 신중하게 다루지 않는다거나 매사에 진지하지 않는 태도도 결국은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늘 문제는 극단적인 어딘가에 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중간을 지키는 것도 문제가 된다. 그럼 약간.. 6.5나 7.5면 괜찮은 건가? 미지근함과 어중간함, 혹은 우리가 ‘평범’이라고 부르는 그 어딘가 말이다. 우리는 그곳을 가끔 지나치긴 하지만 머무르진 않는다. 사실 가장 머무르고 싶은 곳은 그곳이 아닐까. 사인 코사인 그래프를 생각해보면 하강하거나 상승할 때 지나치는 0점 주변의 그 어딘가.
일상을 무겁게 만드는 문제들을 흐린 눈으로 가만히 마주보기 시작하면 사실 그렇게 무겁기만 한 일이 아니라는 걸 쉽게 깨닫기도 한다. 지레 겁을 먹거나 미리 걱정하면서 더욱 문제를 무겁게 만든 건 사실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사실 블로그를 적는 일도 나에겐 그랬다. 뭔가 주제가 있고 메시지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 그게 점점 글을 쓰는 일을 무거운 숙제로 만들고 결국 아무거나 쓰기가 어려워지다보니 오히려 초반의 마음에서 벗어나 움직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더라도 몸은 가벼워야 한다. 손가락은 가볍게 움직여야 문장은 생기를 가지고 펼쳐진다.
예전에 ‘알쓸신잡’의 어떤 시즌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방송이었는지 모르지만 유시민 작가가 모든 세대는 각자만의 십자가를 지고 산다고 했던 적 있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모두가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고난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면, 일면 어떤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타인의 십자가를 비난하거나 나의 십자가를 향한 비난을 견디지 못했을 때, 밑바닥을 드러낸 얄궂은 싸움이 시작된다. 그 싸움은 논리와 사실 같은 건 필요없다.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힐난을 통해 기분을 헐뜯으며 체력적 소모를 동반하고 결국 원초적인 경쟁으로 나아간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나 자신과의 싸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면 내 안에 자꾸먼 커져가는 언성과 대립하며 시끄러운 내면을 견뎌내야한다. 시끄럽고 무거운 생각들이 일상을 괴롭게 만드는 법이다. 시끄럽고 무거운 생각이 아예 없어지길 바라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매순간 생겨날 때마다 그때그때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삶은 애드립의 향연으로 펼쳐지는 즉흥극 무대와 같다. 준비하면 배반당하고, 배반과 대응이 쌓여 축적된 이야기가 나의 삶이 된다.
몸이 무겁다. 그래도 오늘은 떡볶이를 먹을까 한다. 이번주는 운동을 하루 쉬었다. 일주일에 2번, 회당 1시간씩 하는 피티로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경험하긴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움직인다. 그 생각은 움직이기 전에 해야한다. 움직여야 할 때 이유를 고민하면 타이밍을 놓치게 되니까.
자, 움직이자. 내 생에 가장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