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다이어리 22
쇼핑은 지옥이다. 1년 동안 참았더니 자꾸 뭐가 사고 싶어서 들썩거리는데, 그렇다고 꼭 필요한 건 없고 그저 돈을 쓰고 뭔가를 갖고 싶은 욕망, 정확히 말하면 ‘사는 것’ 그 자체를 위한 욕망에 휩쓸린다. 사실 1년 동안 참으면서 그닥 어려운 건 없었다. 옷은 충분했고 새옷을 사야 할 이유는 마땅히 없었다. 어떤 옷이 멋있어서? 세일을 해서? 브랜드가 좋아서? 돈이 남아 돌아서? 이유는 필요가 아니라 욕망에 달려있다. 그러니, 지옥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내 일이 바로 그 지옥을 뜨겁게 만드는 일이다.
광고를 만드는 것, 마케팅을 한다는 건 결국 시장의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소비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와 콘텐츠를 만들어서 미디어에 태워 노출하고 반응을 기대한다. 결국 내가 느끼는 욕망은 어쩌면 내 것이 아니라, 마케팅을 하고 광고를 하고, 그 너머에 있는 물건을 만드는 회사들의 욕망에 전이된 것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날이 추워졌다. 아침과 저녁의 온도가 많이 달라서, 오전에 입고 온 옷으로는 추위를 이길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패딩 하나를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들어와 티비를 보면서 핸드폰을 열고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친구들의 스토리를 확인하는데 중간에 패딩 광고가 떴다. 기왕 뜬 김에 이런 저런 브랜드들을 찾아본다. 무신사, 파페치, 다양한 플랫폼에서 세일을 한다. 벌써 윈터시즌 오프 세일을 하는 브랜드도 있다. 사이즈를 찾아보고, 적당한 가격을 본다. 어떤 브랜드가 좋을까? 어느 정도 가격이 좋을까? 그 고민에서 결국 ‘나 정도’ 라는 기준을 생각한다. 나는 자꾸 나를 어딘가에 끼워맞추려고 수준을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 좀 더 위에, 내가 욕망하는 계급의 한단계 위로, 나를 올려치기 하기 위한 제품과 브랜드를 나에게 입히기 위해서. 그러다가 문득 떠올라서 방에 들어가 옷장을 살핀다. 내 옷장엔 이미 코트가 3개, 패딩이 2개나 있다. 겨울옷이 없어서 사려는 건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이게 틀렸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나의 집중력과 신경을 계속해서 어지럽힌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다보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차라리 쓰고 말지?
쓸 수 있으니까, 쓴다. 여기까지 가버리면 답이 없다. 그냥 돈을 쓰는 이유는 돈을 쓰고 싶기 때문이라고 정의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자본주의에서 시장논리의 가장 밑바닥인지도 모른다. 밑바닥이라는 건 천박하다는 뜻이 아니다(아니었으면 좋겠다). 가장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재화를 사용하는 것의 욕망은 대체 어디서 근원한 걸까?
쓰고 싶어서 쓰는 거라면, 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쇼핑은 다른 곳으로 튄다. 아예 필요를 배제한 아이템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시계 브랜드를 찾는다. 롤렉스? 까르띠에? 이름만 들었던 사이트를 들어가서 본다. 요새는 이런 것도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거였어? 놀랍다. 살 생각이 없이 구경만 하러 들어왔는데, 은근히 마음이 쏠린다. 종종 들었던 ‘빽’도 찾아본다. 명품 가방 브랜드들도 요새 사이트에 아주 친절하게 자신들의 제품 라인업과 가격을 보여주고 있다. 보다보니, 어차피 필요해서 사는게 아니라면 차라리 드러낼 수 있을만한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보통 그런 이유로 시계를 산다고 하더라. 그냥, 보여주려고. 증명하려고. 대체 누구에게 증명해야하는 걸까? 나는 나를 알고 있는데, 어라? 거기서부터 문제인가? 나조차 나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증면 받으려 하는 걸까?
차를 사는 것, 집을 사는 것까지 보다가 멈춘다. 갈길을 멈춘 돈은 결국 계좌에 가만히 앉아 나를 노려본다. 대체 어쩌겠다고?
나는 당연히 돈이 많지 않다. (이 말을 하려니 웃음이 터져 나온다.) 돈에 관련해서 기억하고 있는 소설 장면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나오는 장면인데, ‘미도리’는 부잣집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 다니지만 정작 본인은 동네의 낡은 서점집 딸이다. 그녀가 주인공에게 말한다. 부잣집 아이들은 돈이 없다는 말을 쉽게 한다고. 진짜 돈이 없는 자신은 그 얘기를 잘 하지 못하는데, 라고. 강남이나 잠실 아파트 가격을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진다. 그리고 수백 수천세대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보면 이곳에 뭉쳐있는 돈을 상상해보곤 한다. 그리고 내가 봤던 수많은 제품들의 수많은 가격들…… 오히려 내가 묻고 싶다. 대체 어쩌려는건데?
시스템의 무력함과 개인의 한계, 결국 세계는 끊임없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나에게 휩쓸려 들어온다. 마치 블랙홀처럼? 내 안으로 삼켜진 세계는 빛도 시간도 모두 색을 잃는다. 그러니까 나는 끊임없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색을 입히는 것이다. 필요없는 자켓과 반짝이는 시계, 멋진 자동차로. (정작 하나도 가지고 있는 건 없다.)
언젠가는 뭔가 사게 될 것이다. 이건 예언이자 예측이다. 미래의 나는 어떤 여유와 어떤 타이밍을 만나게 되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예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삶을 지옥으로 이끄는 과정이라는 것을 나는 부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나는 이 지옥을 더 뜨겁게 만드는 차사로서 일하고 있고, 심지어 그걸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 이제 연말 쇼핑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