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다이어리 21
그런 날이 있다. 모든 일이 조금씩 어긋나면서 자꾸 안맞은 옷을 입은 것처럼, 혹은 결이 따가운 스웨터를 입은 것처럼 몸을 불편하게 하는 날. 완전히 큰 사고가 난 것은 아니지만 작은 사건들이 모두 비틀려서 하나하나 나를 괴롭게 하는 날. 답답하게 옥죄어오는 기분이 들지만 사실 돌아보면 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날. 어제가 나에겐 딱 그런 날이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유 따위 알 수도 없거니와 아는 것은 하등 의미가 없다. 그저 기억하고 싶어서 기록한다.
시작은 전날 밤부터 였던 것 같다. 그 전날, 그러니까 금요일 저녁에 같이 일 하는 브랜드 멤버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무척 평화롭고 오랜만에 수다가 긴 밤이었다. 가벼운 술도 마셨다. 맥주 두캔에 소주 반병 정도. 평소 내가 마시는 주량에 비하면 무척 적은 양이다. 그동안의 나였다면 술이 부족했을 때, 혼자서라도 더 채우거나 밥을 먹거나 했을테지만 일부러 정신을 차려서 집에 들어와 씻고 일찍 잠에 들려고 노력했다. 문제는 거기서 부터 시작되었는데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던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거의 세시가 넘도록 자지 못했다. 그냥 눈을 감은 채 여러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한가지 생각을 여러가지로 펼치고 고민했다. 그건 지난 밤에 같이 일하는 다른 회사 사람과의 일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못마땅한 상황으로 정리된 일이 있었는데, 회식 중이다보니 그냥 고민해보겠다고 말하고 넘어가려고 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 생각과 감정이 깊어져서 자꾸만 화가 나고 분했던 것이다. 당장이라도 뭐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아침이 되면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이리 저리 생각하다보니 머리와 감정이 모두 뜨거워져서 잠이 오지 않았다. 논리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상황에 맞는 논리이기보다는 내 감정 해소에 적합한 논리였다. 말하자면, 나의 상한 감정을 정당화 하기 위해 상대를 공격하고 상처주기 위한 논리였던 것이다. 밤 내내 그 생각을 하면서도 이게 맞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내일 맑은 정신이 되어서도 똑같은 생각이 들면 그때 말하자고 계속해서 다짐했다. 하지만 잠이 오질 않아서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나는 꽤 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졸린 것이 너무 싫고 졸리면 평소 잘 되던 것도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랬는데 결국 한 세네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하고 여섯시 조금 넘어서 잠이 깨고 말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밤에 계속해서 매몰되었던 나의 못마땅한 감정과 생각들이 그대로 전해졌다는 것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 말은 결국 하지 않았다. 월요일에 업무가 시작하면 어떻게든 전하긴 해야겠지만 지난 밤과 아침에 일어나 생각한 말들의 정도까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정말 회초리나 체벌에 가까운 말이었다. 다만 그런 말들이 어쩌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있다. 사실 이런 상황을 만든 상대에 대한 원망도 여전하다. 힘들고 귀찮은 상황, 그리고 답답한 일을 겪은 것은 맞다. 다만 대응에 있어서 평소답지 않은 감정을 소모했다는 것을 밝히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 확 달아나버린 잠을 어떻게 되돌리지 못하고 소파에 누워 쇼츠만 계속 보면서 아침을 맞이했다. 그러다 한두시간 정도는 책을 본 것 같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 미팅 때, 가방에서 명함 지갑을 찾다가 못찾은게 생각났다. 어딘가에 있겠지, 대수롭지 안게 생각했지만 뭔가 불안했다. 보통 그렇게 아예 자취를 감춘 채 사라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내가 평소에 익숙하게 다루는 물건과 익숙한 영역 안에 있으면 거의 잃어버리지 않고 갑자기 낯선 옷이나 새로운 가방을 썼을 때 자주 잃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어딘가 있겠지, 하고 시작했던 명함지갑 찾는 일이 삼십분을 넘어도 해결되지 않았다. 아마 한 십오분 정도에 충분히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해도 되었을텐데, 내가 인정하지 못하고 시간을 더 보낸 것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가방을 다 뒤지고 최근에 입었던 옷 주머니를 다 뒤지고 지난 주에 여행 다녀올 때 가져갔던 가방들도 구석구석 뒤져보았지만 없었다. 결론은 하나다. 없어진 것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다. 나에게 없는 것이다. 그 안에는 나의 명함뿐만 아니라, 대학원 학생증도 들어있다. 누군가 찾아줄까? 글쎄, 그럴만한 물건까지는 아니고 사실 없다고 그렇게 불편한건 아니다. 명함이야 더 있으니 따로 들고다니면 되고, 학생증은 요즘에 그렇게까지 중요한 물건도 아니다. (결제 기능있거나 은행 연결이 되어있지도 않다.) 그 외에 또 뭐가 있나? 아마 다른 사람들의 명함도 들어있을지도 모르고…… 그 외엔 잘 모르겠다. 문제는 그거다. 잘 모르겠다는 것. 나는 그 안에 정확하게 뭐가 들어있는지,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게 괜히 찝찝하다. 그렇게 잘 모르겠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물건을 잃어버린 것조차 잘 모르겠는 감정과 생각에 휩싸인 채 하루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생각보다 늦게 산책을 나갔다. 평소라면 산책을 하고 밥을 먹는데, 그냥 밥을 먹고 산책을 가고 싶어서 칼국수를 시켜 먹고 산책을 나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시간 계산이 잘못되었던 것 같다. 평소라면 어떤 약속이 있을 때, 굳이 굳이 일찍 움직이는 편인데 어제는 뭔가 이상했다. 이런 날을 마가 꼈다고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나가서 걷다가 동네에서 교수님을 만났다. 나에게 늘 글 이야기도 해주시고 좋아하는 카피라이터 윤준호 교수님.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신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길에서 마주친 건 오랜만이었다. 저 멀리서 교수님을 발견하고, 교수님이 먼저 이게 누구야, 라고 해주셨는데 나는 좀 어색한 반응을 했다. 물론 인사도 하고 반갑다고 악수도 하고 어디 가시냐고 묻고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도 했다. 하지만 나만 아는 어색함과 낯선 반응이 있다. 왜 그렇게 말했지, 왜 그렇게 행동했지, 조금 더 손이라도 흔들어서 반응할걸, 조금 더 밝게 웃어보일 걸. 갑자기 어려운 분을 만나서 당황했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나만 아는 그런 바보 같은 분위기가 있다. 찝찝하게 뭔가 평소답지 않음을 내보인 것 같은 부끄러움.
결국 산책을 다녀와서 다시 일을 보러 나갈 때, 택시를 잡아서 한참 가다가 지갑을 안가져온 것을 깨달았다. 심리적인 일을 겪고, 다시 물리적인 상실을 겪는 패턴이 하루에 두번이나 반복된 것이다. 지갑을 안가져온 일이 뭐가? 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꼭 어딜 나갈 때 핸드폰과 지갑을 챙기는 것을 버릇처럼 하기 떄문에, 지갑을 안가지고 나오는 일은 사실 나로선 굉장히 패턴을 벗어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 지갑을 안가져왔네? 정도가 아니라 뭐라고? 지갑이 없다고? 하면서 깜짝 놀라게 되는 거 랄까. 하지만 이것도 겉으로 전혀 티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은 애플페이도 있고 모바일로 충분히 입금하거나 돈을 보낼 수 있으니까. 그냥 그런 상황이 하루에 다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우울해졌을 뿐이다. 음, 우울이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짜증일 수도 있고 분노일 수도 있다.
거짓을 쓰면서 진실에 가까워지고 싶고, 진실을 말하다보면 거짓에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이건 내가 이발을 한 후, 바버샵 사장님이 스티커 업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아는 정보들을 말하고 나서 느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싸고 많이 하는 S 업체를 이용했더니 퀄리티가 너무 낮더라는 이야기를 하길래, 그곳은 원래 그렇다. 대신 싸고 빨리 해주는 곳이다. 만약 잘 하려면, 인터넷으로 다른 업체를 찾아서 전화로 물어보거나 직접 찾아가서 만나거나 하는 식으로 요청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아니면 파일 자체에 그런 표시를 잘 해야한다. 꼼꼼하게 해주는 곳은 많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적은 것을 봐도, 그 발언을 하던 당시로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그렇게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와서, 이상하게 거짓말을 한 기분이 들었다. 뭘까? 나는 내가 아는대로 말한 것인데, 왜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걸까.
그리고 아내에게 지갑을 안가져와서 대중교통을 못타니까 택시를 타고 집을 가겠다고 말했다. 카카오 택시를 불러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지갑이 집에도 없는거 같다고. 나는 놀라서 가방을 뒤졌는데, 버젓이 가방 안쪽에 지갑이 있는 것 아닌가. 나는 보통 지갑은 가방에 넣지 않는다. 보통이라고 말하면, 열에 아홉은 그렇다. 바지 주머니나 외투 주머니에 넣는 편인데 왜 가방에 있을까? 명함 지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충격으로 그냥 가방 깊은 곳에 우겨 넣은 걸까?
사실 아침에 일어나 교수님을 만나기 전, 잠시 컴퓨터로 간단히 볼일을 보고 있다가 겪은 일이 또 있다. 사실 위의 모든 일을 관통하는 마음, 우울인지 짜증인지 알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 나는 진실을 말하는 것인가 거짓을 만드는 것인가, 고민과 고난에 대한 모든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지도 모른다. 이미 지난 주에 제출했던 과제 작품을 문득 열어봤던 것이다. 단편 소설인데, 꽤 오랜만에 새로 쓰고 분량을 채운 작품이었다. 늘 마감에 쫓겨서 쓰기 때문에 마감 가까이 분량을 채우고 몇 번의 퇴고를 거쳐서 정리하고 제출을 한 것이었는데, 한 일주일 쯤 보지 않고 있다가 다시 열어봤다가 깜짝 놀랐다. 너무 문장이 거칠고 어색하고 이상하고 별로라서. 나는 왜 이런 걸 썼을까? 어떻게 이런게 나왔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며칠 전부터 읽고 있던 조지프 캠벨의 신화에 대한 책을 오늘 아침에 다 읽었다. 조지프 캠벨이 책에서 말한 것을 내 식으로 해석하자면, 결국 지금 시대의 신화는 ‘나’라는 세계를 중심으로 파고들어야 하며 그 감각이 외부로 향하는 것도 사실 결국 나를 향한 것이 될 것이라는 것. 그건 ‘우리’라는 인간의 존재는 결국 지구가 낳은 것이나 다름 없어서 지구와 같고, 지구는 우주와 같기 때문에. 나를 이해하는 것은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고, 그것이 신을 이해하고 신화를 만드는 일과 같을 것이라는 것.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결국 나에 대해 생각하는 건 나를 둘러싼 세상과 밖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일인 것이다.
어제 나의 세상은 낯설게 진동했다. 그건 사고일까, 사건일까. 두고 볼 일이지만, 중요한 건 나는 겪었고 느꼈고 결국 지나갔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있을 수 있다. 가능성만 보자면 모든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는 법이니까. 나는 어쩌면 어제, 내 세상의 경계선에서 오갔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불편하거나 어색하거나 힘들었던 순간들을 기록하고, 오늘이 어제보다 나음을 함께 기억한다. 그리고 내일의 내가 또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는 것을 겪고 새롭게 쓰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