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과 오필리어, 둘의 공통점

_연극 <햄릿-더 플레이>를 보고

by 혜윰

<햄릿>은 단연 가장 유명한 비극작품일 것이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인 올해, 여러 극단에서 <햄릿>을 공연하고 있다. 그의 서거 40주년과 무관하게 늘 여러 레퍼토리가 올라오고 있긴 하다.

<햄릿>에 등장하는 여러 명대사 중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를 내 기준 가장 유명하다고 꼽을 수 있겠다. 그 중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는 당시 시대상황에선 아무렇지 않은 대사였겠지만, 오늘날 여자인 내가 듣기엔 거북한 대사다.


그러나 오늘 말하고자 하는 연극 <햄릿-더 플레이>에서는 다르다. 새롭게 만들고 각색하는 과정에서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인간”으로 대사를 바꿨다. 단어 하나를 수정하는 것이 뭐 큰 의미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소한 단어일지라도, 듣는 사람에겐 무의식 중에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을 여지를 줄 수도 있다. 한국 사회에 팽창한 여성혐오는 그렇게 우리가 당연하다는 듯이, 은연중에 써오던 많은 단어나 문장에서 비롯된 것일거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성폭행,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피해자(여성)가 짧은 옷을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피해자(여성)가 왜 가해자를 집으로 초대했냐’ 등 피해여성을 탓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도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왜 짧은 옷을 입어서.....쯧쯧‘ 등의 생각 말이다. 그러나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고 (물론 아직도 인권에 대해 잘 모르고, 어렵다고 느낀다) 여러 이야기를 주변에서 들으며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여성조차도 같은 여성에 대해 차별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은연중에’, ‘무의식중에’ 라는 말로 우리는 많은 차별을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다고 생각된다. ‘은연중에, 무의식중에’ 해오던 많은 차별들을 없애기 위해, ‘무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문화에 ‘인권’을 접목하여 살펴보고 싶었다.

문화를 통해 인권을 접하게 되면, 재미있는 연극이나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니 인권에 대해 의식적으로 접근하지 않게 되고 무의식으로 가랑비 젖듯 인권 감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첫 번째가, <햄릿-더 플레이>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를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인간”으로 바꾼 이 작품을 꼭 소개하고 싶었다. 단어 하나를 바꿨을 뿐이지만 그로 인해 이 문장은 큰 의미가 변한다. 약한 자를 ‘여자’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약할 수 있다는 의미로...


또 원작 <햄릿>과 다르면서 인권적이라고 생각되는 측면은, ‘햄릿’이 사랑하는 두 여성, 어머니이자 왕비인 ‘거투르드’와 연인 ‘오필리어’를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린 점이다. <햄릿-더 플레이>에서는 ‘거투르드’를 원작보다 더 모성애가 있고 독배임을 알면서도 ‘햄릿’을 위해 그 잔을 대신 드는 인물로 그린다.

그리고 ‘오필리어’는 아버지의 죽음이 ‘햄릿’에 의한 것임을 알고 미치게 되지만, 정신을 놓은 후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야’를 논하며 ‘햄릿’과 같은 고민을 하는 인물로 그려 그녀의 죽음을 더욱 진정성있고 설득력있게 그리고 있다.

두 여성캐릭터가 원작에 비해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햄릿-더 플레이>의 최대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린 햄릿’과 원작에선 해골로만 등장하던 ‘요릭’을 실제로 등장케 해서 ‘햄릿’과 교차하게 하는 것을 통해, ‘햄릿’의 인간적인 면이나 그가 끝이 비극임을 알면서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을 보여주고 있는 점도 매우 만족스러운 연출이었다.


원작 <햄릿>이 정말 유명하다 보니, 제대로 읽지 않았음에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햄릿-더 플레이>를 보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번 기회에 제대로 읽어봤다. 역시 어렵고,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많은 분들이 원작 <햄릿>에 대해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그런 분들에게 추천한다.

<햄릿- 더 플레이>를 보시면, 현대적으로 해석한 ‘햄릿’, 그리고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오필리어’와 ‘거투르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P.S. 필자는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일개 연뮤덕으로, 공연에서 인권적인 내용을 찾고 인사동 편지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어 비루한 글솜씨지만 칼럼을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시간내셔서 추천해드리는 공연을 보러 가시면 좋겠습니다. ^^


P.P.S. 공연에 대한 해석은 지극히 개인적인 제 의견일 뿐입니다.


* 이 글은 한국인권재단의 뉴스레터 <인사동편지> 중 '인사동칼럼'에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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