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연극 <검열관과 털>
검열이라 함은 언론, 출판, 보도, 연극, 영화, 우편물 따위의 내용을 사전에 심사하여 그 발표를 통제하는 일. 사상을 통제하거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각하"가 계시고 "통금시간"이 존재하던 1970년대, 검열관 박 계장은 오늘도 상사인 변 주임에게 깨지고 있다. 그가 검열한 영화가 타 부서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나누는 논리로 그저 음모(陰毛, 털)가 영상에서 보이는지, 영화를 보고 성적 흥분감이 들면 외설이라는 등의 말도 안되고 획일화된 기준을 들이대며 영화를 검열관 마음대로 자른다. 덕분에 영화는 무슨 내용인지 알수가 없게 되고, 내용을 알수 없다는 말에 도리어 변 주임은 이게 예술영화라고 말한다. 알 수 없고 뭔말인지 모르는게 예술 아니냐며...
보건복지과의 조금옥씨는 검열관들에게 미쓰조라고 불리는데, 늘 자신은 금옥이라고 되받아친다. 그러면 마지못해 사전심의위원들은 금옥씨라고 불러주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그녀는 영화의 예술성과 독립성을 이야기하며 검열관들의 행태에 분노한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않고 검열관들은 잔소리많은 그녀가 시집가서 일을 그만두길 바라고, '여자가 말이 많네' 등의 소리를 한다.
오래지 않았던 과거였음에도 여성의 지위는 너무 낮았고, 그렇지만 당당하게 맞서는 금옥씨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여성의 지위에 나는 다시 한숨이 나왔다.
신입 공무원 김영남 씨는 사수인 박 계장의 말에 따라 털(체모)이 나오는 장면은 모두 삭제하고 타 부서에 보냈으나 정보과에서 허가가 나지 않아 영화는 되돌아온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한 기준이 뭔지 궁금해 하는 김영남 씨에게 변 주임은 "행간을 읽으라"고 한다. 단순히 털이나 노출만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 영화에서는 장발 남성들이 경찰의 단속에 걸리자 도망가면서 나오는 BGM "왜불러"가 문제되어 장면이 삭제된다. 그리고 또 다른 영화에서는 육교 위에서 지나가던 여성이 행인에게 수갑을 채우는 경찰을 볼때 눈빛이 이상하다, 경찰을 믿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삭제한다. 이처럼 자신들의 사상과 부합하지 않으면 장면을 삭제하고 결말까지도 바꾸라고 지시한다.
내가 봤을 때 그 장면에서 여성이 ‘경찰을 믿지 못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 이유를 대며 장면을 삭제하는 것에 실소가 났다. 그렇게 본인들 스스로 행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영화감독을 비롯, 국민에 대한 음모(陰謀, 비밀리에 책략을 기도하는 일)라고 생각된다. 영화 제작자는 의도치 않았던 행간의 의미를 검열관이 찾아서 이를 빌미로 삭제하는 일이니 말이다.
매일매일 검열할 영화가 쌓여있기에 검열관들은 빨리감기를 하며 내용도 보지 않고 털 나오는 장면은 무조건 삭제하고 검열한다. 그러던 어느날, 빨리감기 버튼이 고장나 버렸다.
김영남씨는 짝사랑하던 금옥 씨가 좋아하는 말론브란도가 나왔던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비디오를 발견하고, 그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태어나 영화 한 번 본적 없던 그는 이 영화를 보면서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노출이 많다는 이유로 이전의 사전심의 과정에서 통과하지 못했던 영화지만, 김영남 씨가 심의도장을 찍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연극은 끝이 나고, 관객은 그 영화가 검열 통과 도장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예술과 외설을 나누는 것은 늘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이 연극은 이를 판단하는 사전심의위원을 주로 다룬다. 영화에 대해 무지하고 선호도 등과 관련없이 부서를 배정받게 된 김영남 씨를 중심으로 극은 진행되는데, 주어진 상황에서 평범하게 살아오던 그가 실제로 영화를 본 후 감동하고 영화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면서, 그의 생각이 변화한다.
김영남 씨가 그후 어떻게 행동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전의 태도처럼 ‘어차피 잘릴 영화를 왜 계속 만드는 헛수고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1970년대 검열에 대해 코믹하게 다루는 연극이지만, 사실 지금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금도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면 검열한다. 그리고 제재를 가한다.
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일례로 연극계를 들 수 있다. 2015년 창작산실 지원사업에서 박근형 연출가의 연극이 배제되었는데, 그 이유가 그 전에 공연했던 연극 ‘개구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연극 ‘이 아이’에서는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단어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공연을 방해받고 취소된 사례가 발생했다. 이처럼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연극은 지원금을 빌미로 검열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이에 저항하고자 많은 연극인들과 극단이 모여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검열하고 통제하게 되면, 자기검열을 하게 되고, 결국 위축된다. 자기검열을 하고 억압된다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다.
내 경우에도 종종 SNS에 글을 쓸 때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우스갯 소리로 ‘정부 비판 내용을 썼다가 잡혀가는 것 아니냐’며 친구와 대화할 때도 있지만, 단순 농담이 아니다. 검열하고 통제되고 감시되는 순간,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는 억압되고 침해받는 것이다. 지금은 연극계의 일부 문제라고 무관심하게 방관하는 순간, 검열의 범위는 점점 커질 것이다.
* 이 글은 한국인권재단의 뉴스레터 <인사동편지> 중 '인사동칼럼'에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