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연극 <12인의 성난사람들>을 보고
친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법정에 서게된 피고인은 16살 소년, 살해도구인 칼을 산 정황도, 목격자도 두 명이나 존재하며 모든 정황과 증거는 그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법정 최고형인 사형의 판결까지 남은 것은 배심원 12명의 만장일치 결정뿐. 배심원들은 내심 유죄라고 판단하고 빨리 결정한 후에 지저분하고 더러운 배심원실에서 나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두가 유죄라고 판단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11명의 배심원이 유죄라고 주장했지만, 1명의 배심원은 소년의 죄형을 무죄라고 주장한다. 유죄라고 확신할 수 없기에 유죄라고 결정할 수 없다는 8번 배심원. 그는 소년이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며 하나하나 증거와 정황에 대한 반박을 하며, ‘의심의 여지’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 연극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합리적 의심의 필요성’이다. 모든 정황과 증거가 소년을 범인이라고 가리키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쉽사리 유죄라고 말할 수 없는 8번 배심원. 배심원들은 처음엔 모두 법정에서의 증언과 재판내용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여 소년이 유죄라고 주장하지만, 8번 배심원의 주장을 들으며 어느새 ‘의심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해 유죄에서 무죄로 주장을 변경한다.
배심원의 만장일치 결정이 소년의 생명을 좌지우지한다는 상황을 처음 배심원 11인은 그다지 의미있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토론을 하면서 11인 중 일부는 인간의 생명이 존엄하고 그것은 우리가 함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자신이 똑똑히 봤다고 믿는 상황을 정말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건당일 소년이 아버지를 죽이는 걸 봤다고 증언한 증인 2명은 각자 자신이 본 상황을 증언하지만, 사실은 진실이 아니었을 수 있다.
소년의 집 건너편에 사는 여성은 자려고 뒤척이다 살해현장을 봤다고 했지만, 법정에 선 그녀의 콧잔등에는 안경자국이 나있었다. 자려고 누워있던 상황에서 안경없이 건너편 집을 보는 건 무리였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자신이 진실을 봤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것이 진실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점과, 각자의 편견과 선입견은 진실을 간과하게 만든다. 배심원 역시 각자의 개인적 편견으로 인해 사건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었다. 이 극을 보면서 개인적 편견과 왜곡된 기억이 얼마나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무서움이 들었다.
연극에서는 합리적이고 객관적 시선으로 봤을 때 의심할 여지가 충분한 상황들이 계속 발생한다. 결국 소년에 대해 배심원 12인은 무죄라고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8번 배심원의 표정은 밝지 않다. 배심원의 선택이 정말로 합리적인지, 혹 범죄자를 사회로 내보내게 되는 건 아닐지 끝까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8번 배심원의 대사 중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우리는 결국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르고, 무죄라는 주장도 여전히 불확실성에 근거하고 있다. 죄인을 사회 안으로 돌려보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피고의 유죄를 증명하는 데에 있어서 의심할만한 점이 있어 그렇게 한 것이고, 그런 장치가 기능해야만 우리 사회의 소중한 가치가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배심원도 스스로 완전한 확신이 들기 전까지 유죄를 평하여선 안된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알고 있던,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이 정말 진실일까...?
* 이 글은 한국인권재단의 뉴스레터 <인사동편지> 중 '인사동칼럼'에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