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할 권리에 대하여

_ 연극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를 보고

by 혜윰

항상 곁에 있던 가족의 상실로 인한 슬픔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다.

연극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 My Eyes Went Dark>는 사고로 가족을 잃은 한 남자의 실제 이야기를 다뤘다. 항공관제사의 실수로 비행기 두대가 충돌한 사고로, 남자는 아내와 두 아이를 잃는다.


그러나 관제사는 실수라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관제탑으로 돌아간다. (추후에 과실치사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담당 기업에서도 금전적 보상만 이야기할 뿐, 전혀 사과하지 않는다.


법적 구제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남자는 관제사를 찾아갔는데 관제사가 남자를 피하려는 신경질적 반응에 남자의 가족사진이 손에서 떨어지고 이에 격분한 남자가 관제사를 살해했다. 그 후 그는 복역 후 석방되어 고국에서 암암리에 영웅 취급을 받으며 건축가였던 건설부 차관에까지 오른다.


사과 한마디와 제대로된 책임을 지고 처벌이 있었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을까...?

국가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고 생각할때 과연 개인의 사적인 구제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능가?

유명한 이론 중 하나인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개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위임하여 사회를 형성하였다. 즉, 안전하게 살기 위해 사회계약을 맺은 것이다. 국민의 “안전”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이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제4조(안전을 위한 시민의 권리와 정부의 책임)에 보면 “모든 사람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가지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위험을 알고, 줄이고, 피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보장할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한다.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돋보기>를 보면 시민의 안전에 대한 권리와 국가의 보호책임에 대해 언급되어있다. (40쪽)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고, 이것은 헌법상의 책무입니다. 헌법 제34조 6항에서도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제3조는 다음의 내용을 담고 있지요.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다.” 즉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은 시민의 권리이며 국가의 의무라는 뜻입니다.

‘안전’이 시민의 권리라는 의미는 그가 돈이 있든 없든 나이가 적든 아니든, 어떤 권력을 갖고 있든 동일하게 안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안전’이란, 우리가 안전장구를 다 갖추고 주의를 해서야 간신히 안전한 상태가 아니라, 설사 실수로 안전장구를 갖추지 못했고 주의를 하지 못 했을 때에도 안전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시민들이 안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정부와 기업의 의무입니다. 기업은 자칫 돈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여길 수 있기 때문에 강한 제도와 통제를 통해서 기업이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도록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원래 두 명의 관제사가 있었지만, 한 명의 관제사는 휴식을 취하러 간 상태라, 남은 관제사가 두 개의 스크린을 보며 두 구역을 관리하게 되었다. 혼자서 여러 개의 관제를 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두 관제사 모두 자리를 이탈해선 안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관행적으로 트래픽이 적은 심야에는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이는 교대 인력을 배치하지 않은 회사의 잘못이었고, 회사 내의 시스템 자체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그 전에도 관제사의 지시 혼선으로 인한 몇 번의 충돌위기 상황들이 있었다고 한다.)

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해 관제사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국가는 제대로 된 규율을 만들고 이행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 위에서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돋보기>에서 언급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인 것이다.


국민은 국가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구의역 사고, 세월호 참사 등 인재가 너무나 많이 발생하고 있다. 국민은 안전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슬퍼할 권리도 부정당한다.

유가족의 슬픔을 다른 이들은 ‘이제 그만하라, 지겹다’ 등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러나 연극에서 가족을 잃은 그 남자가 말하는대로 우리는 직접 당하지 않았기에 그의 감정을 100%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에게 그만하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게다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더욱 불가능한 말 아닐까...?


* 이 글은 한국인권재단의 뉴스레터 <인사동편지> 중 '인사동칼럼'에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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