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뮤지컬 <구텐버그> 후기
여기 두 청년이 있다. 더그와 버드.
이 둘은 각각 스타벅스 캡틴바리스타이자 양로원에서 노인을 돌보며 사는 청년들이다. 이들은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고자 대본을 쓰고 노래를 지으며 뮤지컬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오늘밤, 처음이자 마지막 리딩공연을 한다. 이 리딩공연을 보러 온 관객 중 유명한 브로드웨이 프로듀서가 있어서 이들의 공연을 브로드웨이에 올릴수 있기를 꿈꾸며 ...
이들이 제작한 극중극인 뮤지컬 <구텐버그>는 인쇄기를 발명한 독일의 구텐베르크의 이야기다. 많은 민중들이 글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와인을 만들던 구텐베르크가 와인압착기의 원리를 이용해 인쇄기를 발명했다는 내용의 팩션 뮤지컬이다. 뮤지컬은 가상의 마을 ‘슐리머’에서 수도사만이 성경(글)을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를 악용해왔는데, 인쇄기를 발명하려는 구텐버그와 수도사의 갈등을 그린다.
역사적으로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하였고 이는 유럽의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지식이나 정보를 통제해서 권력을 위해 악용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 와닿는 부분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드와 더그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그리고 우리와 같은 이 시대 청년이다. 살아가기 위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또다른 노력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버드와 더그같은 인물을 보기 점점 어렵다고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올해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했고, 구의역 사건 등 많은 청년들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있다. 물론 이는 청년만의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다만,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청년의 문제로 접근하고 싶다.
한국사회에서 취업은 점점 어려워지고, 빚을 내서라도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학력 인플레의 사회, 그리고 아르바이트 급여를 떼이거나 최저시급을 지키지 않는 등 여러가지 사안에서 청년은 무시당하고 착취당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청년은 꿈을 꿀수도, 꿔서도 안된다는 압박에 시달려 왔다. 왜? 대학에 가기 위해 청소년 시절에는 공부만 하고, 진짜 하고 싶은 건 대학가서 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어왔으며,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그 후 졸업하면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또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만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그리고 운좋게(?) 취직을 하더라도 미래가 불투명하거나 혹은 회사에 내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하고 싶은 꿈을 이루는 것은 물론, 꿈을 찾기도 쉽지 않다.
내가 대학생일 때, 꿈에 대해 교수님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교수님은 사회구조를 비판했고, 아래와 같은 내용을 이야기해줬다.
“청년이 꿈꿀수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기 위해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지지대, 그물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사회안전망이다. 내가 대학생일 때는 한번 실패한 것으로 인생이 끝날 정도의 절망적인 상황이 발생하진 않았고, 그때는 경제성장의 시기이기도 했기에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는 한 번 실패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등 전혀 보호받을 수 없는데, 이처럼 사회안전망이 무너진 상황에서 어떻게 창의적이거나 독창적인 재능을 기를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회는 점점 경직되고 개인화 되어가는 게 아닐까?”
이 대화를 했던 게 약 5-6년 전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이나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으면서, 청년에게 “중소기업은 가지 않고 대기업에만 취직하고 싶어한다”, “우리 땐 그렇게 하지 않았어”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청년에게 자기희생과 열정만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충분한 급여는 지급하지 않으면서 열정만을 요구하지 않기를... 그리고 인간을 기계의 부품처럼 보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 이 글은 한국인권재단의 뉴스레터 <인사동편지> 중 '인사동칼럼'에 기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