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400자 글쓰기 모임
Q. 정말 갖고 싶었는데, 막상 갖고 나니 잘 쓰지 않는 물건이 있나요? 어떤 물건이고, 왜 갖고 싶었고, 왜 쓰지 않고 있나요?
저에게 '갖고 싶어 미치겠는데 막상 사면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는' 분야의 최고봉은, 옷입니다. 제가 아직도 이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사실 저는 한참 전부터 끊임없이 옷을 사는 일에 질려 있었어요. 계절마다, 특별한 약속이 있을 때마다, 아니 그냥 아무 일도 없지만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로 등등. 작년에는 혼자서 '한 달 동안 옷 하나도 사지 않기' 프로젝트를 해보기도 했고, 그 이후 잠깐 외국에서 사는 몇 개월 동안은 (돈이 없어서 반강제로) 옷이나 화장품을 거의 사지 않았어요. 제가 드디어 이 꾸밈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났나 뿌듯하기도 했었습니다. 네... 아주 잠깐이었고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현란한 광고판과 가게로 가득한 서울 한복판으로 출근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예전과 똑같이 온라인 쇼핑몰을 미친 듯이 뒤지고 있더라고요. 환경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옷을 사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제가 옷을 소비하는 방식이 문제인 것 같아요. 다른 모든 물건들은 사고 나서 쓰지 않아도 그저 한 번의 후회로 끝나는데요. 옷이라는 건 참 특이하게도 사면 살수록 부족해요. 옷장이 넘치도록 뭐가 많아도 오늘 당장 내가 입을 수 있는 게 없고요. (저는 아직도 이 미스테리를 풀지 못했습니다...) 아마 정말 필요해서, 좋아서 산 게 아니라 마음속의 어떤 부족함이나 불만족스러움을 채우려고 사는 거기 때문이겠죠. 이번 글을 계기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보려고 해요. 정말 필요한 옷, 그리고 여러 번 손이 갈 옷만 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