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400자 글쓰기 모임
Q. 대화 중에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던 순간이 최근에 있었나요? 언제였나요? 대화를 하는 게 힘들었나요? 아니면 그냥 머릿속이 하얘졌나요?
A. 저는 콘텐츠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어요. 주로 텍스트 콘텐츠를 기획하고, 그 콘텐츠가 최종 발행되기까지 전체 과정을 책임지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지난주 어느 날 회사 동료가 저에게 묻더라고요.
"Dani님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중단'을 고민하는 기준이 뭔가요? 그냥 이런 거 있으면 좋겠지, 라는 생각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은 없나요?"
저 질문을 듣는 순간 약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살짝 나빴어요. 그냥 있으면 좋겠지, 라는 생각이라니! 저는 PM이고, (거친 우려, 반대, 항상 미뤄지는 마감을 넘어) 일을 '되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당연히 맡은 프로젝트에 애정도 생기고요. 정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일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어떤 것에서도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과 항상 성실하게 임하는 것은 저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동료와 대화를 하면서 깨달았어요. 모든 일을 성실하게 다 하는 것이, 항상 장점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요. 처음에는 반짝반짝했던 기획도 진행되면서 그 빛을 잃을 때가 있고, 때로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진행할 때가 있어요. 나도 모르게 어느새 관성적으로 일하게 되는 거죠. 동료의 질문에 느꼈던 '기분 나쁨'은 스스로 그런 관성에 빠져있음을 인정하기 싫었던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해요. 한 번씩 내 스스로를 기민하게 돌아보고, 충분한 가치가 없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