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의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프로젝트 매니저는 어떻게 일할까
요즘 들어서 제가 일하는 방식, 제가 배운 것들을 최대한 글로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우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하니까요. 흐릿했던 생각이 글로 쓰이는 과정에서 좀 더 명확하게 정리가 되기도 하고요. 과연 몇 편이나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시작해보겠습니다.
콘텐츠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저는 동시에 20개, 많게는 30개 가까이 되는 프로젝트를 담당합니다. 매니저로서 프로젝트를 끌고 나가면서 각각의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저자, 에디터, 마케터 등)과의 협업을 이끌어야 하므로, 20개의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다면 최소 20명과 동시에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주요 업무는 콘텐츠 매니징이지만, 하나하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보다 좀 더 큰 범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서비스가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 위해서 콘텐츠 팀 차원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이번 분기에 제가 맡은 프로젝트는 유저들이 콘텐츠를 매일 읽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진행 단계가 각기 다른 많은 일들을 어떻게 동시에 놓치지 않고 해내느냐, 하는 것이 제 일의 관건입니다. 괜히 직무명이 프로젝트 매니저가 아닌 거죠.
불행히도(?) MBTI의 마지막 알파벳이 P, 탐색형인 저는 꼼꼼한 계획이나 성실한 시간 관리와는 굉장히 거리가 먼 사람인데요. 처음에는 회사 내 시간 관리의 달인인 많은 분들의 노하우를 보고 들으며 배워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1년 간의 시행착오 끝에 타고난 성향은 바꿀 수 없다는 슬픈 결론을 내렸습니다... ㅎ 뽀모도로 시간 관리법, 구글 캘린더 사용하기, 한 번에 하나씩만 하고 멀티태스킹 안 하기… 같은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천성이 산만하고 정신없는 저에게는 모두 무용지물이었어요. (특히 한 번에 일 하나씩 하기는 죽어도 안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그냥 되는 대로 죽어라 일하며 야근한다, 이것 역시 답은 아니더라고요.
결국 제가 살 길은 제가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 그 방법들을 이리저리 섞은 끔찍한 혼종… 아니 저만의 방식이 생기더라고요. 하하.. 대단한 방법은 아니지만, 어쨌든 일이 굴러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저는 어떻게 일이 굴러가게 하는가.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일주일 단위의 루틴으로 설명해 볼게요.
매주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회사에서 공통으로 작성하는 WPR(Weekly Progress Report)을 적습니다.
이 문서는 나의 매니저가(또는 나의 팀원들이) 이번 주에 무슨 일에 집중하는지 체크하고 서로 싱크를 맞추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하는 문서인데요. 저의 경우 이번 주에 어떤 프로젝트(콘텐츠)들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는지, 그중 어떤 것에 가장 시간을 많이 써야 하는지 점검하는 용도로도 작성하고 있어요. 대략 이런 모양입니다.
1) 지난주에 계획한 주요 업무가 무엇이며 진행이 잘 되었는지 체크하고
2) 이번 주에 꼭 해야 할 주요 업무를 정리해보고
3) 진행 중인 콘텐츠 전체 목록을 살피며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주요 실행 아이템에는 주로 이번 분기의 프로젝트성 업무를 적습니다. 콘텐츠 기획 및 제작은 일종의 본업이고 상시로 이루어지는 반면, 프로젝트성 업무는 매주 할 일을 체크하지 않으면 끝없이 미뤄지기가 쉽더라고요. 이번 분기에 꼭 어떤 어떤 결과를 보겠다, 라는 목표를 정하고 시작한 업무이기 때문에 목적과 목표를 상기하며 가장 먼저 할 일을 정리하는 편이에요.
그다음 개별 콘텐츠의 진행 상황을 정리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특정 단계에 일이 너무 몰려 있지 않은지 살피는 거예요. 예를 들어 [초고 피드백]은 제가 섭외한 저자분이 원고의 초안을 작성하면 그걸 읽고 피드백을 드리는 단계인데, 전체 과정 중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한 주에 이 단계의 콘텐츠가 너무 많으면 업무 과부하가 올 수 있어요.
또 전체 개수는 비슷하더라도, 특정 주제의 콘텐츠만 너무 많다면 그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주제별로 목표로 하고 있는 발행량이 있기 때문인데요. 이럴 때는 하고 있는 일이 많더라도 부족한 주제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기획에 들어가야 합니다.
투두 리스트만 적다 보면 전체를 보는 관점이 무뎌지고 관성적으로 ‘눈앞의 할 일만 열심히’ 하기 쉬운데요. 이렇게 매주 전반적인 업무 상황을 점검하고 리소스를 잘 배분하면, 중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바로잡기 쉬운 것 같아요.
저는 노션을 활용하여 개인 업무 일지를 적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에 오고 나서 많은 생산성 툴을 접했는데, 그중 최고는 단연 노션입니다!)
각각의 일의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오늘 또는 이번 주의 할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노션의 ‘캘린더' 기능을 활용하고 있어요.
각 블록은 개별 콘텐츠 진행 단계 또는 그날 해야 하는 일을 나타냅니다. 가령 [초고 전달]은 저자로부터 해당 콘텐츠의 초안이 오는 단계로, 이 날은 해당 초고가 작성이 완료되었는지 체크하고 언제까지 피드백을 드릴지 등을 안내드리는 일을 하게 되겠죠. [디자인 요청]은 해당 콘텐츠에 필요한 이미지 제작을 요청하는 단계로, 이를 위해 디자이너분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작성해야 합니다.
새로운 콘텐츠가 추가되면 이 보드에 블록을 추가하고요. 일정이 변경되면 해당 블록을 옮기거나 삭제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관리하면 좋은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별, 주별로 한눈에 진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음 주 발행되는 콘텐츠가 3개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고, 그러면 그 3개 콘텐츠의 발행을 대비해 이번 주 언제 무슨 일을 해둬야 할지를 미리 생각할 수 있죠.
2) 매일 들어갈 리소스를 파악하고 관리하기 쉽습니다. 하루에 블록이 6개가 넘어가면 그날은 꼭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은 날이므로 조정을 해야겠죠. 돌아가는 일이 많다 보니 생각 없이 일을 추가하다 보면 어느 순간 걷잡을 수가 없어 울면서 일하는... 그런 날도 생기는데요.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아줍니다.
3) 일정 변경이 용이합니다. 프로젝트 매니저에게 계획과 일정은 바뀌려고 있는 거니까요. 종이로 된 스케줄러나 다른 툴에서는 일정이 바뀌었을 때 수정하기가 불편했는데, 노션 캘린더에서는 해당 블록을 그 날짜로 옮겨주기만 하면 돼서 편리해요.
드디어 오늘의 할 일을 적는 단계입니다. 위의 노션 캘린더를 보면 매주 월요일에 ✅ Week 13 같은 블록을 보실 수 있는데요. 이게 바로 일주일 간의 To Do List를 적는 블록입니다. (이번 연도의 13주 차라는 뜻이에요.)
1) 맨 위에는 이번 주의 가장 중요한 업무(Weekly Objective)를 씁니다. 월요일에 작성한 WPR과 동일한 내용으로, 이번 주의 가장 중요한 일이 뭔지 잊지 않기 위해 적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2) 그다음 체크리스트 기능을 활용해서 일별로 할 일을 죽 적습니다.
처음에는 아예 블록을 일별로 나눠서 만들었는데요. 그렇게 하면 전체 업무의 흐름이 보이지 않아서 한 주에 하나의 블록을 만들고 그 안에 일자별로 나눠 작성하는 방식으로 바꾸었어요.
*업무 일지 템플릿은 이 콘텐츠에서 소개하는 양식을 살짝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3) 이제 순서대로 업무를 시작합니다. 물론 순서대로 잘 되지는 않습니다.
4) 일이 완료되면 해당 항목에 ‘체크’를 하고, 다음 일로 넘어갑니다. 이때 각 항목에 완료한 시각(혹은 총 소요 시간)을 적어둡니다.
저는 제가 짠 계획대로, 순서대로 완벽하게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렸어요. 그 대신 그 일에 시간을 얼마나 썼는지는 꼭 기록하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내가 어떤 일에 얼만큼의 시간을 쓰고 있는지 감으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이를 참고하여 더 좋은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위 이미지를 자세히 보면 항목마다 오른쪽 끝에 시간을 적어놓은 게 보일 텐데요. 이 일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잡고 있었는지, 그래서 총시간을 얼마나 썼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너 그 일에 시간을 얼마나 썼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바로 답할 수가 없었어요. 어쨌든 끝냈으면 된 거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걸 모르면 내가 내 시간을 주도적으로 쓸 수 없고, 비슷한 업무를 또 하게 되었을 때도 (분명히 해봤던 일인데도 불구하고) 참고를 할 수가 없더라고요. 결과적으로 매일 주어진 일만 열심히만 할 뿐, 나의 시간 관리 방식 자체를 개선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무작정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집중이 안 된다’, ‘A를 하던 중에 갑자기 B를 했다’ 이런 것도 솔직하게 다 적었고요. 쉬었으면 몇 분을 쉬었는지까지 적었습니다. 저만 보는 거니까...ㅎ 그렇게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어느 시간대가 집중이 잘 되는구나’, ‘이 일에는 시간이 보통 이만큼 걸리니 다음에도 참고해야겠다’, 같은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걸 반영하면서 업무 계획도 조금 더 잘 짤 수 있게 되었죠.
이렇게 저처럼 무작정 기록하는 것도 좋고, 요즘은 좋은 시간 트래킹 툴도 많으니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 구글 캘린더는 활용하지 않나요?
구글 캘린더도 활용합니다. 주로 미팅이나 회의처럼 다른 사람과 연관되어 있는 일, 또는 특정 시간에 꼭 체크해야 하는 업무들 위주로 미리 알림을 받는 용도입니다. 단 캘린더에 픽스해 둔 일정 외 시간은 위의 노션 투두 리스트를 참고해서 비교적 유연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글 캘린더를 통해 시간 기록을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개인 업무도 구글 캘린더에 시간대 별로 미리 넣어 세팅해두고, 그 시간에 집중하여 일을 끝낸 후 완료 여부를 체크하는 거죠. 저도 시도해 봤지만, 저에게 딱 맞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_T 아까 말했듯 천성이 산만한 사람이라... ‘1시간 안에 이 일을 마치겠어!’라고 정해도 그대로 되지 않고, 업무 특성상 치고 들어오는 일들이 너무 많아 변동도 많았고요. 그럼 캘린더를 수정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게 되더라고요. 이 부분도 개인적 성향과 업무 특성에 맞게 활용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매주 일요일마다 주간 회고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2020년) 하반기 빌라선샤인 커뮤니티를 하면서 시작한 것인데, 생각보다 잘 맞아서 그때 이후로 꾸준히 작성하고 있어요.
1) 가장 먼저, 이번 주 내내 쓴 노션 업무 일지를 다시 한번 쭉 살펴봅니다.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을 끄집어내는 용도입니다. 보통 우리는 바로 어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니까요.
2) 이번 주 전반적인 나의 컨디션을 체크합니다. 신나서 열심히 했는지, 에너지가 떨어지진 않았는지, 유난히 집중이 안 되었는지 등. 왜 그랬는지 이유도 적어봅니다.
3) 이번 주의 성취, 성과, 잘한 점을 써보고 스스로 칭찬합니다.
4) 이번 주의 아쉬운 점이나 새로 배운 점을 씁니다.
5) 다음 주의 주요 일정과 기대되는 업무를 적어봅니다.
20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이끌며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그냥 ‘일을 하는 것' 자체에만 매몰될 때가 있습니다. 하는 것만 중요해지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를 잘 볼 수 없게 되는 것인데요. 저는 그게 조금 위험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당장 오늘의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서 내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성장하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니까요.
주간 회고는 이런 것들을 놓치지 않고 잡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메타 인지'인데요. 당장 오늘의 투두 리스트와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내 일을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더라고요. 잘한 점, 아쉬운 점, 새롭게 배운 점, 더 큰 맥락에서의 의미 같은 것들이요. 그렇게 발견한 것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음 주 WPR이나 투두 리스트에 반영이 될 수도 있고, 회의 아젠다로 가져갈 수도 있고, 이렇게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는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이 있어야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매니저와의 1:1 미팅에서 제가 일을 효율적으로 못하는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요. 그때 매니저의 답변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효율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고 싶은 사람만 있는 거지.”
비슷한 건데, 어쩌면 시간 관리나 일정 관리를 완벽하게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걸 잘하고자 하는 마음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어요.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도 겪으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과정 없이 누군가의 방법을 그대로 가져와 나에게 ‘짜잔' 하고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다면, 그건 노하우가 아니라 마법이겠죠…!
오늘도 수많은 일들을 동시에 쳐내면서 흔쾌히 어쩔 수 없이(?) 멀티 태스킹 인재가 되어가는 많은 분들에게 응원과 존경을 보내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