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갠 후 앵두따기
부처님 오신날 연휴 내내 비가 오다, 마지막 날 오후에 그쳤다. 딸이랑 마당에 나가 앵두를 땄다. 낮은 곳은 딸이, 높은 곳은 내가 맡기로 했다.
올해 유난히 앵두가 잘 열렸다. 아내가 초봄부터 거름을 많이 주고 가지치기를 부지런히 해 준 덕분이겠지. 높은 가지에 있는 앵두를 따다보니 물방울들이 얼굴에 떨어졌다. 딸 머리에도 떨어졌나보다. 차갑다고 하면서도 까르르 웃는다. 바람이 불어 습기 머금은 공기를 날려보내니 싱그러웠다.
딸도 한 바구니, 나도 한 바구니. 양이 상당했다. 사람 기척이 났는지, 고양이들이 나와 지켜본다(우리집에 고양이 식구들이 많다. 집 안에 두 마리, 마당에 두 마리, 식객들도 많고). 생명은 다 똑같은가 보다. 함께 있고 싶은 거겠지. 이 녀석들아! 그럼 앉아만 있지 말고 같이 앵두 따야 될 거 아냐!
일하는 중간중간 새빨갛게 잘 익은 앵두를 따먹었다. 살짝 깨무니 새콤하고 달콤한 과즙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너무 맛있는데! 처음엔 한 두 개 오물거리다가 나중엔 한움큼씩 따서 먹었다. 며칠간 계속된 비로 늘어졌던 몸과 마음이 순간적으로 상쾌해졌다.
아내는 수확한 앵두를 깨끗이 씻어 채반에 담아 말렸다. 잼을 만들 예정이란다. 벌써부터 기대된다. 한동안 주말 아침엔 잘 구운 빵에 앵두잼 발라 먹어야겠군. 생각만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그래, 결심했어! 피곤하다고 쉬기만 하려니 더 늘어지는구나. 집에 있을 때는 몸을 좀 더 움직여야겠다. 담주에는 계단에 난 풀들을 좀 정리해야지! 그리고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앵두 좀 따먹어야겠다. 마당 한켠에 장하게 자란 수국에서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곧 더워지려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