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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Sep 15. 2022

살면서 필요한 단 한 사람, 하나의 관계

심리상담자의 마음책방#8 필립 로스의 울분

여러분은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르시나요?

보통은 작가나 책의 소개글을 확인하기도 하고

목차를 훑거나 추천사를 살피기도 할텐데요


저는 우연히 본 어느 구절에 완전히 반해버려서

그 외 정보는 전혀 모른 채 바로 책을 산 적이 있어요

도대체 이 글이 무슨 책에 담겨 있는 건지

어떤 맥락과 장면에서 나온건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제가 본 구절이 뭐냐면,



"더 얘기해줘, 더 듣고 싶어"


"왜?"


"너를 무척 좋아하니까


  너에 관한 모든 걸 알고 싶어


  무엇이 너를 너로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울분 中, 필립 로스-


<제가 너무 좋다하니, 친구가 캘리그라피로 써줬어요ㅎㅎ>


어떤가요?

잉? 뭐 어쩌라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저처럼 심쿵- 하셨나요?


이 글은 필립 로스의 '울분' 이란 책에 담겨 있는데요

실제로 책을 읽어 보니 한국 전쟁이 발달하던 시대에

격정의 청춘을 보내는 마커스란 청년의 이야기더라구요

저 말은 대학에서 만난 썸녀와 주고 받는 말이구요


흔하디 흔한 연인의 대화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 말이 참 좋았어요


"무엇이 너를 너로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한 사람에 대한 온전한 관심의 표현 같아서요

너를 내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네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경험과 관계, 취향이 켜켜이 쌓여 '네'가 되었는지

순수하게 궁금하고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이뻐보였어요


저는 살면서 우리에게 단 하나 필요한 관계가 있다면

이 책 속 구절처럼, '나'라는 한 존재에 대해서

'무조건적 관심과 호기심'을 보여주는 사람이라 믿어요


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밥은 맛있게 잘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소소한 나의 일상에 늘 관심과 염려를 보내고


현재 내 마음이 어떤지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살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이런 애정 안에서 있을 때 느끼는 충만함과

저 사람에게는 내가 1순위야, 라는 믿음이

만들어주는 심리적인 단단함과 안정감은

어떤 행복에 비할 바 아닐만큼 크지요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 있어! 하고 떠오르신다면

참 축복받은 분이시라고 말해드리고 싶어요

나는 그런 사람이 없는데, 싶으셔도 괜찮아요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끝까지 읽어보세요


언젠가 상담시간에  참 아프게 들었던 분의 말이 있어요


"선생님, 저는 누가 저를 좀 귀여워해주면 좋겠어요"


우리가 적당히 좋을 때는

이쁘네, 잘생겼네, 멋지네, 이런 반응이지만

정말 그 대상이 너무 좋을 때는

아유 귀여워! 소리가 절로 나오잖아요

부모가 갓난 아기와 있을 때 터져나오는 탄성

우리가 반려동물에게 보내는 감탄을 생각해보세요


뭘 해도 마냥 좋고

뭘 안 해도 그저 존재만으로 좋은

귀엽다, 는 어쩌면 사랑의 가장 최상의 표현 같아요


저 분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나를 귀여워해줬으면 좋겠다는 소망에서

지금껏 한 번도 흠뻑 넘치도록 사랑 받아 본 적 없어

텅빈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인데요


상담을 하다 보면 이렇게 

살면서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본 적 없는 분들을 꽤 만나게 됩니다

심지어 나를 낳아 준 부모님에게 조차도 말이예요


오히려 부모가 나에게 제일 상처 준 사람일 때도 많아요

나를 깎아내리고 비난하고, 평가하고 비교하고

내가 뭘 잘해야만 이뻐해주는 조건적 사랑을 주는

요즘 흔히 말하는 자존감 도둑이 부모인 셈이지요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맺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안정적으로 친밀감을 쌓지 못하게 되면

이후에 만나는 관계에서도 불만족을 겪기 쉽습니다


가령, "너를 알고 싶어" 하고 관심을 갖고 다가오면

그게 낯설고 어색해서 벽을 치고 도망가거나

나는 그만큼 괜찮은 사람이 아니야,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부정하고 외면하게 돼요

결국은 나를 외롭게 만들면서도 

편안하게 사랑을 주고 받는 법을 몰라 헤매지요


반대로 조금이라도 나에게 잘 대해주면

그게 너무 좋아서, 다른 건 재고 따지지도 않고

그 사람에게 훅 빠져버리거나

그 사랑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봐

전전긍긍하고 집착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관계는 늘 살얼음 걷듯 불안해요


이렇듯, 좋은 관계 경험의 부재는

참 사람을 공허하게 만들어요

그리고, 그 공허함을 채워 줄 대상을 찾아

평생을 허덕이게 만들기도 하구요



부모님을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런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해서 좀 억울한가요?

지금이라도 당장 누군가가 짠하고 나타나

하트 뿅뿅-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줬으면 하시나요?


처음 말씀드렸듯이

'무조건적 관심과 호기심' 을 보여주는 사람은

정말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해요


있으면 좋고, 없으면 아쉽지, 정도가 아니라

나라는 한 존재가 삶이란 집을 잘 지으려면

토대가 되어주는 양질의 토양 같은 거거든요

튼튼하지 않은 땅에 지어진 집은 쉽게 흔들리지요


그런데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런 사람이 없다면

가장 먼저, 내가 나와 맺고 있는 관계를 검토해보세요


나는 나에게 그런 대상인가요?


종종 상담시간에 이런 말을 하는데요


심리상담은

내가 나와 건강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스스로에게 좋은 양육자가 되어주는 걸 배우는 거라고

내가 받고 싶었던 사랑과 존중, 좌절되었던 욕구들을

이제 내가 나한테 해주는 법을 연습하는 과정이라고.


외부에서 그런 대상을 찾는 것도 좋지만

우선은 내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라고 말이지요.


내가 나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한다는 게

아마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어색하고 불편할 수도 있어요

마치 운동할 때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쓰면

몸이 내 맘처럼 안 되고, 더 당기고 아픈 것처럼요


기존에 내가 나와 관계 맺던 방식이 

스스로에게 좀 더 가혹하거나 비판적이었다면

아끼고 허용하는 방식이 뭔지 감 조차 안 올거예요


그럴 때는 쉬운 거부터 할 수 있는 거부터 하면 돼요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보면서 나한테 한 번 웃어주고

이노무 회사! 확 때려치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나가 일하는 나한테 고생한다 한마디 해주고

하기 싫으면 하지마,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마

내 감정이 이끄는대로 더 따라가보기도 하고

그 때 그 때 내 몸과 마음을 살뜰히 살펴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주려고 애쓰면 돼요


일상에서 계속해서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나 자신을 점점 더 잘 돌보는데 익숙해질거예요

그리고 당연히, 나와의 관계가 견고해지면

타인과 맺는 관계도 훨씬 편안해질 수 있답니다


간혹은 이렇게 묻는 분들도 계세요


"사랑 받아 본 사람이 줄 줄도 안다고 하는데

  저는 받아본 적이 없는데,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나의 결핍이 형성된 과정을 깊이 이해하고 

그 결핍을 위로하며 잘 보듬을 수 있다면

더이상 결핍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어요


내가 부족해봤기에 무엇이 필요한지도 더 잘 알고

내가 받고 싶었던 것들을 기꺼이 남에게 줄 수도 있지요


저는 인간의 훌륭하고 거룩한 점 중 하나가

이렇게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아픔들이

현재의 나를 지속적으로 망가뜨리도록 두지 않고

지난 날을 통해 배우고 성장해서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며 살 수 있다는 점 같아요


사랑 받지 못했다고, 주지도 못하는 게 아니라

받지 못했기에, 줄 수 있는 멋진 선택을 할 수 있어요

우리 안에는 과거와 현재를 새롭게 연결해서

스스로를 더 나은 미래로 데려갈 수 있는 힘이 있거든요

꽤 희망적이지요? ㅎㅎ


오늘은 소설 '울분' 속 한 구절을 통해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요


무조건적인 관심과 호기심

존재에 대한 사랑과 수용은

우리가 관계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 믿어요


그게 나와 내가 맺는 관계에서든

나와 또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에서든


그러니, 나와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주 선물을 나눠줄 수 있으시기를 바라요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내게 주는 선물도

보다 기쁜 맘으로, 편히 받으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오늘 글은 마치겠습니다


모두들, 관계 속에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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