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비 Jun 21. 2020

무심함과 예민함 사이, 감정 다루기

심리상담자의 마음책방 #4  손원평의 '아몬드'

감정의 결핍 VS 감정의 과잉


“사람들이 웃고 있는데 저만 무표정 일 때가 있어요. 슬픈 영화를 봐도 다들 우는데 저는 눈물 한 방울 안 나더라구요. 매사에 덤덤한 제가 이상한 걸까요?”



“여자친구는 저 보고 어쩜 그렇게 공감능력이 떨어질 수 있냐며, 저랑 있으면 로봇이랑 이야기하는 것 같데요. 뭐가 문제일까요?”



상담실에 종종 이런 고충을 토로하러 오는 분들이 계세요. 감정의 수도꼭지가 꽉 막힌 것처럼 자연스러운 감정을 느끼기 어렵고, 타인에게서 읽기도 어려운 분들이지요. 그러다 보니 대인관계에서 감정의 주파수가 맞지 않아 늘 삐거덕거리는 경험을 하곤 해요.


반대로 이런 분들도 계세요.


“자꾸 화가 나서 미치겠어요. 제 속에 커다란 불덩이를 안고 사는 것 같아요”


“저는 너무 예민해요. 사소한 거 하나하나가 다 신경쓰이고 짜증나고, 슬프고, 서운하고, 힘들어요. 제가 좀 무심해졌으면, 마음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요.”


이는 감정의 수도꼭지가 콸콸 흘러넘치는 경우인데요. 감정을 느끼는데 어려움은 없지만 감정의 역치가 낮아서 너무 작은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는 거지요. 거기다 내 감정이지만 스스로 잘 조절하는 법도 잘 모르니 괴로운 건 마찬가지일거예요.


감정은 이렇게 너무 메말라도, 너무 흘러넘쳐도 문제인 걸까요?





감정의 스펙트럼은 사람마다 제 각각


오늘은 손원평 작가의 소설 <아몬드>를 통해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이 소설의 주인공인 17살 윤재는 인간에게 자극을 주고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기관인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작은 감정표현불능증(알렉시티미아)를 앓고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 뇌 속에 있는 편도체의 모양이 아몬드를 닮았다고 하네요) 언뜻 생각하기에 감정을 느끼지 못하니 화 날 일도 없고, 슬플 일도 없고 참 편하겠다 싶나요?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공포나 두려움의 감정을 잘 못 느끼다 보니 차가 돌진을 해오는데도 피할 줄을 모르고, 눈앞에서 나비를 바늘로 찔려 죽어가는 데도 눈만 껌뻑껌뻑 할 뿐 어떤 동정심도 느끼지 못하지요. 크리스마스 이브날 번화가에 나갔다가 거리에서 칼을 휘두르는 강도에게 찔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식물인간이 되었음에도 할머니의 안부를 묻는 이웃에 ‘죽었어요’ 라고 담담히 말하는 윤재를 보며, 사람들은 윤재를 이해할 수 없는 괴물쯤으로 취급하는 일이 대다수예요.


그리고 이런 윤재의 대척점에 감정을 공격적이고 폭발적으로 표현하는 법 밖에 모르는 곤이가 있는데요. 곤이는 어릴 적 부모님과 놀이공원에 갔다가 미아가 되어 버린 후, 중국인 부부의 손에 길러지다가 아동보호시설, 소년원 등을 떠도는 파란만장한 청소년기를 보내요. 상처 받느니 차라리 상처 주는 쪽을 택한 곤이는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고 화를 내지요. 그 모습이 강해보이기 보다는 쉽게 깨지는 여리고 섬세한 자기 감정을 어찌할 바 몰라서 철벽을 단단히 세운 것처럼 보여요.


윤재와 곤이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사람들 마다 느끼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다양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이를 우리가 가진 ‘정서적 민감성’ 이라 할 수 있어요. 감정을 느끼는 일종의 센서가 우리 뇌 안에 장착되어 있는데 이 센서에 쉽게 불이 들어오는 사람이 있고, 좀 둔감한 사람이 있는 거지요. 또한, 센서를 조절하고 제어하는 기능을 잘 발달시킨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구요.


정서적 민감성은 윤재처럼 선천적,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면도 있어서 동일한 경험에 대해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영향 받는 폭과 깊이가 달라요. 그래서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누군가는 펑펑 울고 누군가는 덤덤한 거예요. 대체로 민감성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자유롭고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타인의 감정에 잘 공감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곤이처럼 평균 정도 혹은 조금 높은 정서적 민감성을 가지고 있더라도, 후천적으로 조절 기능을 발달시키지 못하면 훨씬 더 괴로울 수도 있어요. 즉 감정은 얼마나 민감한 정도를 타고 났느냐 보다 스스로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나가느냐가 중요하지요.


<다양한 감정을 다룬 영화 '인사이드아웃'>




감정이 성가신 짐이 되지 않으려면


두 아이는 자라면서 여러 관계들 그리고 서로를 통해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워나가는데요. 윤재의 엄마는 남다르게 태어난 윤재에게 처음에는 좌절하지만 곧 열심히 희노애락애오욕 카드를 만들어 윤재를 훈련시켜요. 가령, 누군가가 맛있는 음식을 준다면? 그 때 적절한 감정은 ‘기쁨’과 ‘감사’ 라고 배우는 식이예요. 정서적 민감성이 낮은 사람에게는 ‘키스를 글로 배웠어요’ 같은 이런 방식도 나름 효과가 있답니다.


스스로가 무심하고 둔감한 편이라면 감정도 공부를 하는 게 도움이 돼요. 영어 단어 외우듯이 우선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다양하게 습득하고, 자신과 타인의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어울릴지 짝지어 보기도 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도 하구요. 여자친구가 아프면 “병원 가” 가 아니라 “어디가 아파? 많이 아파?” 라고 걱정을 먼저 하고 상사가 웃으면 내키지 않아도 상사의 표정을 따라하며 맞장구를 치는 게 필요하다는 것도 배우는 거지요.


그렇지만 공식처럼 외우는 공부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더 복잡한 감정들을 잘 읽으려면 대상에 대한 ’관심‘ 이 필요해요. 윤재가 곤이에게, 그리고 도라에게 그랬던 것 처럼요. 윤재는 자신과 다르게 감정을 있는 대로 투명하게 표현하는 곤이를 궁금해 하고 이해해보고 싶어 해요. 그래서 자꾸 질문을 던지고, 윤재의 내면을 파고들지요. 달리기를 좋아하는 소녀 도라에게 생전 처음 가져보는 간질간질하고 어지러운 느낌이 낯설지만 도망치지 않고 그 마음을 더 알기 위해 도라와 가까워지기도 해요. 이렇듯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관계의 경험들이 쌓이며 비로소 꽉 막혀있던 윤재의 감정선에 물꼬를 틔워주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윤재에게는 이런 윤재가 느끼는 모든 감정에 관심 갖고 공감해주는 엄마나 할머니, 심박사님 같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게 곤이와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해요. 십여년 만에 아이를 되찾은 곤이의 아빠는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아이와는 너무 다른 거친 곤이의 모습에 당혹해하고 수치스러워 하느라 곤이에게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한 번도 묻지 않거든요. 단 한 번도요.


아이러니 하게도 곤이의 감정을 가장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사람은 감정이 결핍되어 있는 윤재인데요. 감정을 잘 못 느끼니 자신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이나 두려움 없이 덤덤히 받아주는 윤재라는 거울을 통해 곤이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날이 서있지 않은 채로 누군가와 감정을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그리고 마침내 나쁜 형 철사로부터 자신을 몸바쳐 구한 윤재에게 ‘고마워’ 라는 담백하지만 힘있는 말을 표현 할 정도로 성장합니다. (짝짝짝!!)


<photo by lauren richmond>




감정이라는 축복


윤재와 곤이 이야기 어떠셨나요? 둘은 감정을 느낀다는 건 그 영향력을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버거운 짐이지만 잘 알고 사용할 수 있다면 삶을 살아가는데 더없이 따뜻한 축복임을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또한 두 아이의 감정을 다루는 능력이 커가는 모습을 통해, 감정의 풍요로움은 누군가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에서 출발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얽히고설키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당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물론 윤재에게 주변 좋은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곤이에게 윤재가 그랬던 것처럼, 상대가 내 감정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나누고 담아줄 것이라는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겠지요?


마지막으로, 사람이 혼자 산다면 감정은 필요 없을 거예요. 아마 태초의 인류가 느꼈던 감정은 매우 단순하지 않았을까 해요. 즉 생명에 위협이 되는가, 아닌가. (실제로 감정을 주관하는 뇌 속 편도체는 공포와 두려움 같은 감정에 가장 특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더욱 세분화되고 다채롭게 발달된 데는 그 감정을 통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고 더 좋은 관계를 맺으라는 의미가 있는거 아닐까요?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덧붙여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건 ‘감정’이 있어서, 라고 말하고 싶어요. 여러분도 우리에게 주어진 기쁨, 슬픔, 즐거움, 화, 고마움 같은 감정들을 통해 나 자신을 표현하고 서로 더 가까워지는데 사용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감정이라는 축복을 오롯이 누리며 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



정말 끝으로,


이 소설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남겨요.


- 사랑. 그게 뭔데?

- 예쁨의 발견


우리의 감정이 스스로의,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예쁨을 발견하는데 더 많이 쓰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수동 화가의 '눈이 녹는 이유>






* 글은 

<5명의 상담전문가가 함께 하는 심리학 파도타기>

네이버 블로그 스몰웨이브 에도 함께 업로드됩니다

https://blog.naver.com/smallwave5 

놀러오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심리상담자가 권하는 눈물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