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하면 느는구나'라는 진리의 한 문장
우리 부부는 30여 년이 넘는 살아온 시간 동안 크게 '요리'라는 것에 흥미도 없었고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한국은 원래 배달문화랑 외식문화가 발달해 있고 가격도 합리적이라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쉽게 사 먹을 수 있어.' 또는 '바쁘니까.'라는 핑계를 대며 요리를 등한시했었다. 그리고 남편은... 남편은 대체 왜? 원래 '유럽 남자'라고 하면 요리 잘하는 거 아니었나? 싶게 요리를 정말 못한다. 문제는 요리뿐만이 아니라 덜 발달한 미뢰에 있다. 나는 전라도 출신이라 그런지 모르게, 아니 그것과는 상관없이 입이 짧단 소리를 듣고 자랐다. 전라도 집밥을 해주는 우리 엄마가 '넌 왜 이렇게 입이 짧냐'는 말을 한 게 여러 번. 아무튼 문제는 우리가 노르웨이에 와서 살기 시작하고 배달이며 외식이 흔치 않은 이 나라에서 적응하면서 시작되었다. 나영석의 '삼시 세 끼' 시리즈 마냥 '삼시 세 끼-노르웨이편'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요리를 해야 하는지도 감이 없었다. 요리라기보다는 어떤 음식을 우리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제로였다. 지금은 너무 부끄럽지만 그래서 그 당시에 심지어 포스트잇 하나를 꺼내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요리의 이름을 써넣기 시작했다. 오믈렛, 베이컨 토마토 리소토, 잼 토스트, 타코. 요리를 할 줄 아는 분들이라면 웃겠고 나와 비슷한 요리실력이라면 '오? 요리 좀 하는 거 아니야?' 할지도 모른다. 오믈렛은 그냥 스크램블 에그다. 말이 좋아 스크램블 에그지 계란 프라이를 제대로 못 뒤집으니 그냥 막 섞는 거다. 베이컨 토마토 리소토? 마트에서 토마토소스 사다가 밥에 버무리고 베이컨 구워 넣은 거다. 잼 토스트. 토스트는 토스트기가 만들고 마트에선 잼을 팔아준다. 맛있다. 타코! 이건 그나마 요리에 들어가는데 그마저도 고기를 볶는 타코의 핵심 소스는 마트에서 사고 나머지는 오이, 파프리카를 깍둑썰기 한 것과 통조림 옥수수와 통조림 콩이다. 그리고 그냥 토르티야에 감싸 먹는 거지.
이런 간단한 것들을 해 먹다 이렇게는 살 수 없다 요리를 시작했다. 이름하야 서바이벌 요리. 정말 먹고 '살려고'요리를 시작한 거다. 아무래도 제일 쉬운 요리는 프라잉 팬에 다 때려 넣고 볶는 볶음밥이다. 근데 어째 그 볶음밥마저도 맛이 없지. 간장, 설탕, 고추장, 고춧가루의 베이스 음식에 길들여진 내게 남편이 만드는 생강가루, 고추냉이 파우더 (대체 왜?!), 핫소스 등등 자기 손에 보이는 소스를 다 때려 넣어 만든 볶음밥은 '시장이 허기다'라는 오래된 한국 속담을 다 깨부술 정도로 '입맛 암살자'였다. 요리에 'ㅇ'도 모르는 나지만 채소니 고기니 그런 것들을 다 때려 넣을 수는 있어도 베이스가 되는 소스 하나는 메인으로 있고 나머지를 적절하게 가감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남편은 소스마저도 다 때려 넣었다. '저게 사람 먹는 건가' 싶은 요리를 남편은 맛있게 먹었다. 자기가 만들어서 애정이 있거나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그냥 맛있게 먹은 거다. 그때 알았다. 아, 이 사람 미뢰가 죽은 사람이구나. 아니 근데 그때 내가 본인 생일날 찜닭을 요리해줬을 때는 왜 그랬지? 한번 맛있게 잘 먹고 다음에 또 데이트할 때 뭘 할까 고민하던 때 "이번에도 내가 찜닭 만들어줄까?" 했더니 남편(그 당시 남자 친구)은 "아니야. 요리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자기 힘들잖아. 그냥 시켜먹자."라고 얘기했다. 나는 처음에 나를 그렇게 신경 써주는구나 했지만 무언가 찝찝 했고, 눈치 빠른 친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그게 "니 요리 맛없어"를 아주 예쁘게 돌려 말한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무튼. 서론이 길었다.
그래서 나는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으려고.
뭘 만들 수 있지도 않고 뭘 만들어야 하는지도 모르니 나는 가지고 있는 아이패드의 '만개의 레시피'라는 레시피 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정말 나의 요리책이고 요리 선생님이자 구원 자시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만개의 레시피 관계자분이나 그곳에 자신의 요리 레시피를 공유해주신 분이 있다면 제 절 받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그 앱에서 '쉬운 요리'를 검색해서는 재료를 쭉 살펴보고, 여기서도 구할 수 있겠다 싶은 요리부터 도전해보기 시작했다. 계란 프라이만 해서 밥에 먹던 시절을 벗어나 거기에 양파와 소스를 넣어 '계란 양파 덮밥'을 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했지만 꽤 맛이 났다.(레시피 덕입니다.) 어떤 날은 한국에서 그리 흔하디 흔한 '김밥'이 그렇게도 먹고 싶어서 김을 사다가 (그마저도 잘못 사서 1/2로 잘린 김이었다.) 꼬마김밥을 해 먹었다. 그렇게 하나 두 개 하다 보니 남편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좋아해서 데이트 때 자주 먹었던 '찜닭'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만개의 레시피를 보지 않으면 못합니다.) 종갓집의 김치를 사 먹다가 이 돈이면 김치 만들기에 도전해서 망해도 이득이겠다 싶어서 김장에 도전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으니 겉절이부터 시작해서 밀가루풀을 만드는 김치까지 만들게 되었다. 간단히 먹기 좋은 만두가 먹고 싶어 돼지고기를 사다가 둘이 앉아서 만두를 하나하나 빚게 되었다. 만두는 어떻게 빚는 건지 몰라 일단 재료를 넣고 '닫는다'는데 의미를 두고 제 맘대로 모양을 짜내서 만든 만두였다.
그렇게 하나하나 하다 보니 우리가 만들고서는 '몬스터 푸드'라고 부르던 요리 초짜 시절을 벗어나 그래도 레시피를 보면 사람 먹을 음식을 만드는 정도까지는 된 거다. 우리가 만든 김치에서는 '김치 맛'이 났고, 내가 만든 김밥에서는 '김밥'맛이 나서 '이게 왜 김밥 맛이 나지?' 먹으면서도 스스로 신기했다. 만두를 빚고 냉동실에 보관하고 몇 개는 바로 쪄내서 먹으면서 '우와, 우리 이제 만두도 할 줄 알아.' 하며 둘이 작게나마 기뻐하고 뿌듯해했다. 아직도 갈길은 멀고 정말 요리를 하신다는 분들이 보면 '김밥이 김밥 맛이 나지 그럼 무슨 맛이 나나?'라고 반문하겠지만 우리의 실력은 그마저도 신기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니 요리라는 것에도 재미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서바이벌'로 시작해서 차차 재밌는 '취미'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미뢰가 없는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하게 만들었던 남편마저도 이제는 요리가 재밌어졌는지 자기가 나서서 요리를 담당할 테니 나한테는 뒷정리를 해주라고 한다. (아니면 청소가 하기 싫은 거든지.) 무튼 어떤 이유로든 우리 둘 다 요즘은 요리를 즐겨하게 되었다. '계란 양파 덮밥'은 요리하기 귀찮은 날 후딱 해버리는 우리의 간단 요리로 자리를 잡았고, 인터넷 선생님을 참고해 새로운 요리 만들기에 도전하기도 한다.
남편이 일요일 저녁, 자신이 서프라이즈 요리를 하겠다며 메뉴를 정해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장을 보러 가서는 이게 대체 뭘까 싶은 것들을 사 왔다. 헤드셋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주방에서 요리하는 남편을 살짝 보니 무스 고기로 미트볼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다 써가는 시점 남편이 저녁을 먹자고 부른다.
와! 이케아에 가서 먹어본 크림소스와 미트볼, 그리고 월귤 잼 요리다! 냉동 채소 기는 하지만 채소도 곁들였네! 살려고 하기 시작했던 서바이벌 요리가 이제 어느 식당의 요리를 (이케아 식사 코너를 식당이라고 하기는 좀 뭐한가?) 따라 만드는 정도가 되었다. 우와. 신기하고, 뿌듯하고, 대견한 순간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정말. 무엇이든지. 하면 느는구나. 그게 한 번도 재미를 못 느껴 본적일지라도. 무엇이든지. 하면 느는 거였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나에게는 타국이고, 남편에게는 모국인 노르웨이에서. 하루하루 이렇게 같이 성장해가고 있다. 아주 간단한 삶의 진리도 가끔 깨달으면서 말이다. 무엇이든지. 계속하면 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