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환경에 놓인 서로 다른 국적 친구들의 다양한 반응 및 대응법에 대해
11월 24일. 다니던 노르웨이 어학교의 선생님이 바뀌고 새로운 반에 속하게 된 날이었다. 전의 선생님은 다른 도시의 정규직을 얻어서 이사를 가시고 그 선생님에게 배우던 우리 반 친구들은 비슷한 단원을 배우고 있는 다른 반으로 편입되게 되었다. 그전까지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어떤 분일까 다들 궁금해하고 있기만 했었다.
그리고 첫날. 첫인상부터 완전히 잘못 꿰어진 단추처럼 어긋나가기 시작했다.
첫째 날. 새로운 반과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라 평소보다 조금 일찍이 집을 나섰다. 그런데 웬일.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같다. 이미 10여분 정도 지각.
어쨌든 들어갔는데 이미 수업을 하시던 선생님이 있지도 않은 손목시계가 있어야 할 자리를 반대편 손으로 두드리며 늦었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헉. 안 그래도 첫날이라 조심하고 있었는데 늦어버렸고, 늦었다고 바로 꾸중을 받다니 기분이 별로다.
어쨌든 남은 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전의 우리 선생님은 수업 시작 시간이 8시 30분임에도 항상 8시 40분 정도에 수업을 시작했었고 그래서 10분 정도 늦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게 이 선생님의 특성인지 여기 학교의 특성인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그 시간에 맞춰서 학교에 왔었고 그건 나 말고 다른 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나 이후로도 몇몇의 우리 반 친구들이 조금씩 더 늦게 왔고 그때마다 새 선생님은 손목을 가리키며 늦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우리 반 친구들 여러 명이 좋지 않은 첫인상을 주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수업 스타일이 다를 것이라는 건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문제였다. 다들 가르치는 방식이 다르고, 또 다들 배우는 방식 또한 다르다. 근데 이건 뭔가 다르다 라기보다는 틀렸다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지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심장이 쿵쾅대고 좋지 않은 기분이 자꾸만 드는 수업이었다. 왜 그런가 쉬는 시간에 전 반 아이들과 자연스레 모여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건 새 선생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냐'의 문제였다. 새 선생님은 다분히 군대적인 느낌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있었다('권위'와는 반대의 나라인 노르웨이에서?). 노르웨이어로 말을 많이 하게끔 유도를 하는데 그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너 한번 해볼래?'라는 느낌이 아니라 '자, 너네 말 안 하고 있는데 이제 니들이 해봐'의 느낌이랄까.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손을 들고 이야기를 해야 했고, 말을 하다 실수를 하면 바로바로 우리의 말을 끊고 틀린 부분을 바꿨다. 물론 우리가 말하다 실수를 하면 당연히 고쳐주는 게 선생님의 역할이다.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있으니까.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그 방식이 뭐랄까. 내가 이야기하는데 끊고 고치는 것이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지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문법적으로 완벽하고자 가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남에게 전달하려고 하는데에 포인트가 있는 말하기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아닌가.
또한 자꾸만 우리를 전의 반 아이들과 비교했다. 우리는 이제서 새로운 반과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 수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선생님은 어떤 스타일을 가졌는지, 어떤 분위기인지를 살피고 그에 적응하려고 하는데 뭔가 우리가 알아채기도 전에 우리에게 너네는 왜 이렇게 하지 않느냐는 말부터 하고 있었다. 그런 부분이 우리의 신경을 건드렸나 보다. 우리는 모국어를 아직 잘하지 못하는 5살짜리 아이들이 아니었다. 모국어와 영어라는 적어도 두 가지의 언어를 이미 구사하고 있는 30살이 넘은 성인들이었는데 선생님은 마치 우리가 제대로 '생각 자체'를 못하는 아이들을 대하듯 그렇게 대하고 있었다. 다른 점은 어린이집 선생님처럼 친절하게 말하지도 않는다는 거였다. 그런 것들이 말하는 것에서, 손짓에서, 그 분위기에서 우리에게 전해졌고 그런 게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기분이 완전히 상해있었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날 즈음, 혹시나 자기에게 바라는 게 있으면 -더 천천히 이야기해달라던가, 더 크게 말해달라던가,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줬으면 좋겠다던가 -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다음 날 나는 어제보다도 더 일찍 갔고 그래서 제때 교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앞 두 자리가 모두 차있는 바람에 나는 셋째 줄에 앉게 되었다.
수업이 진행되었고 선생님이 계속 자리에 앉아 컴퓨터 프로젝터로 수업을 진행하는 바람에, 앞줄에 앉은 친구들 머리 사이사이로 내 고개를 돌려가며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프로젝터를 보려고 애를 썼다.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들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앉아서 진행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두줄의 친구들 사이로 보기는 어려웠고, 앉아서 발성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기에는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되었다. 옆줄에 앉은 친구가 뭐라도 가방에서 꺼내거나 사부작사부작 대면 선생님 목소리가 묻히기 십상이었다.
수업이 진행되고 선생님이 우리 줄 쪽으로 마침내 걸어왔을 때 용기를 내어서 "좀 크게 말씀해줄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내게 한 대답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말소리가 안 들리면 일찍 와서 앞줄에 앉아."
나는 내가 방금 무엇을 들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들은 게 맞나? 나랑 짝꿍을 하고 있는 친구의 얼굴을 돌아보았고, 그 친구의 얼굴엔 내 얼굴에 있는 것과 같은 당혹스러움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나는 내가 들은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래도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내 귀에 특별히 이상이 있는 게 아니었고, 나는 단지 선생님의 목소리를 더 크게 들어서 단어 하나 놓치지 않고 배울 수 있기를 원했던 거였고, 어제 선생님이 바라는 바가 있으면 말하라고 했기에 말을 했던 것뿐이다. 그런데 앞줄에 앉으라는게 설루션이라니?
앞줄에 자리가 남아있는데도 내가 뒷줄에 앉은 거였으면 그게 설루션이 되었겠지만 이미 앞두줄은 친구들이 다 앉아있어서 여기 앉은 거였는데 어딜 더 앞으로 가라고?
게다가 내가 더 일찍 와서 앞줄에 앉는다고 해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 뒷줄에 앉아야 되는데 그럼 그 친구는 어떻게 수업을 들을 수 있단 말이야?
전의 선생님은 널찍이 떨어져 앉아있는 우리가 다 들리게끔 우렁차게 말을 해줬고 그래서 수업에 집중을 더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런 것들을 바라고 이야기를 한 거였는데 내가 들은 답이 이거라니.
나는 선생님과 그런 1차 트러블(?)을 겪었고, 그런 트러블을 겪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 선생님은 책 본문을 보지 않고 본문 오디오를 듣기만 하고 문제를 풀기를 바랐다. 숙제로 본문을 읽어오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바로 다 들리게 되는 건 아니었다. 언어를 배우는데 듣기는 시간이 더 걸리는 분야다. 그래서 이 친구가 들어도 50퍼센트 밖에 이해를 못 하겠으니 들으면서 책을 같이 읽어도 되겠냐고 물어보았고 선생님은 단호히 "안돼."라고 대답했다. (???)
그리고는 이 친구에게 학교가 끝나고 노르웨이어를 사용하거나 듣고 있냐고 물었고 이 친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노르웨이어로 된 TV나 팟캐스트, 라디오 등도 듣냐고 물었고 이 친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친구가 거짓말로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게, 이 친구가 바로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이런 노르웨이어 팟캐스트가 있다고 한번 들어보라고 자기는 매일 듣고 있다고 내게 추천을 해줬었다. 그렇게 이미 열심히 하고 있으나 50%밖에 못 들어서 책이랑 같이 좀 보겠다는데 안된다 하면서 너 열심히 하고 있냐니. 그게 선생이 할 소리인가?
한국이나 일본이나 군대 같은 교육방식으로 문제점이 대두되곤 하는데 일본에서 교육을 받고 온 다른 친구마저도 저 선생님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재밌는 부분은 여기서 나온다.
우리는 수업 쉬는 시간마다 모여서 뭐가 문제인지에 대해 토론했고, 어떻게 해야겠냐는 설루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같은 문제에 대해서, 더 군다가 똑같이, 같은 시간에 그걸 겪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서 동감을 하고 있는 우리가 서로 다른 대응 방식을 내놓는다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우선 모로코 친구는 (국적을 밝힘은 얼마나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이 있는지를 말해주고자 하는 것이지 그 국적의 대표성을 띄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저 선생님은 '클래식'한 스타일로 가르치는 것 같다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old-fashioned라고 말하며) 말해봤자 바뀔 게 없으니 그냥 우리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적응해 가자라고 이야기했다.
일본 친구도 며칠 더 두고 보자는 같은 방안을 내놓았다.
본인도 본국에서 대학교수여서 가르침을 해본 적이 있는 브라질 친구는 '나는 저 선생에게 이메일을 쓸 거야. 우리는 이런 식으로 대우를 받을 필요가 없어.'라고 이야기했다.
한국인인 나는 (다시 말하지만 이는 그 국적을 가진 사람의 특성을 전. 혀. 대표하지 않는다) 내가 뭐에 대해서 화가 났는지 저거 진짜 미친 거 아니냐 (ㅋㅋㅋㅋㅋㅋ)는 식으로 얘기하고는 우리한테 이렇게 해? 나는 더할 거야 (ㅋㅋㅋㅋㅋㅋ) 내게 똥을 줘? 나는 똥 포대기를 가져다줄 거야 (ㅋㅋㅋㅋㅋ)라고 대답했다.
대응 방식만 다른 게 아니라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어떻게 푸는지도 굉장히 달라서 흥미로웠다.
나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남편을 붙잡고는 한 시간 내내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작은 디테일까지 모조리 빼놓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가며 이야기를 하며 이 선생이 얼마나 '나쁜'선생인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남편의 동의를 받아내려 노력했다.
반면 브라질 친구는 "잘 다녀왔어? 수업 어땠어?"라는 남편의 물음에 방문을 쾅 닫으며 "Not now! 나중에!"라고 이야기하고 하루 종일 혼자 방에서 삭혔다고 한다.
이 선생이 진짜 나쁜 선생인지 (그런 게 있다면) 단지 우리가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건지는 분명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앞으로 더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궁금해지는 일이고.
다만 이렇게 똑같은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다르게 반응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을 만난 것이 우리에게 좋지 않은 일이고 스트레스받는 일임은 분명 하나 이를 통해서 각각의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지를 다시 한번 볼 수 있게 된 일은 내게는 정말로 흥미롭고 신선한 사건이었다. 앞으로 또 어떻게 수업이 진행될지도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참, 그다음 날 나는 학교를 일부러 더 일찍 갔고 단 두 명만이 이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있는 첫째줄 맨 앞자리에 앉았고 선생님이 나중에 들어오자 내 눈빛을 쏘아주었다. "봐라. 네가 앞줄에 앉으래서 앞줄에 앉았다." 하고.
또, 학교에서는 지금 내가 있는 단계를 건너뛰고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월반 시험이 있다. 이 시험에서 잘한다면 나는 이미 이 수준에 있고 준비가 되었으니 다음 단계로 월반을 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뭐, 잃을 거 없지 하고 시험에 응시했다. 내가 앞으로도 이 반에서 이 선생님과 다른 문제들을 겪어야 할지 아니면 이 모든 걸 던져버리고 '도비 is free'라고 떠날 수 있을지 한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