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한국인이 본 노르웨이 여행 예능
'텐트 밖은 유럽' 노르웨이 편을 보고
한국 예능은 예전에 보던 것들만 보던 중 우연히 한국에 있을 때 재미있게 봤던 '텐트 밖은 유럽'이 내가 살고 있는 곳인 '노르웨이 편'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아니, 나한테 알리지도 않고 언제 왔다 가셨지? (ㅋㅋㅋ)라는 게 첫 번째 생각이었고, 북유럽은 처음이라는 그들의 눈으로 내가 사는 곳을 보면 매너리즘에 빠져 불평만 하고 있는 내가 새로운 눈으로 내가 사는 곳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간을 들여 프로그램을 챙겨 보기로 했다. 금요일 밤, 육퇴가 끝나고 저녁을 먹은 뒤 남편과 둘이 소파에 앉아 같이 시청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1편을 보며 내가 느꼈던 몇 가지 재미 포인트들이다.
1. 오슬로 공항의 입국장에 들어서며 그들이 한 말 "공항이 어둡네."
유해진, 박지환, 진선규, 윤균상 4인방이 노르웨이 오슬로의 가데모엔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장에 들어서며 한 말이 있다. "공항이 어둡네." 나와 남편은 이 말을 듣고 대책 없이 빵 터지고 말았다. 이 예능을 보는 한국인들은 그냥 '그렇구나.' 하고, 아니면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넘어갔을 그의 한마디에 왜 우리 둘은 아기를 깨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할 겨를이 없이 현웃으로 빵 터지고 말았을까?
바로 3년 전 내가 노르웨이에 와서 살면서 제일 많이 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집이 하도 어두워서 뭐가 잘 안 보이고 침침하다고 매일 남편한테 말하며, 노르웨이는 왜 이렇게 불이 어두워라고 말하곤 했었다. 가뜩이나 안경을 써야 보이는 눈이 집까지 어두우니 더 눈에 힘을 주고 뭔가를 봐야 했고, 책이라도 읽을라치면 '아, 이래서 부분 조명을 따로 쓰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던 시절. 그런데 노르웨이에 도착한 지 1시간도 안된 출연자가 처음 느낀 것이 "공항이 어둡네."였다. 그의 발견이 내가 너무나 자주 했던 말이라서 남편과 나는 그저 웃음이 났다.
노르웨이는 집의 조명 조도 자체가 한국보다 굉장히 낮은 느낌이다. 밝은 흰색이 아니라 따뜻하고 어두운 노란 조명들이 대부분이다. 또 한국에선 기본인 천장등이 여기서는 굉장히 찾기 힘들다. 아파트이든 빌라이든 기본은 아무것도 없는 평평한 천장이다. 개인이 직접 설치를 하고 연결을 해서 천장등을 달수 있는 전기설계는 어디에 숨겨져 있을지는 몰라도 한국처럼 바로 조명을 달수 있게 전선들이 튀어나와 있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 스탠딩 조명이나 펜던트 조명을 설치해서 쓰다 보니 한국처럼 방이 밝다는 느낌을 받기는 힘들고, 조명 색 자체도 노란빛이다. 아마도 이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조명이 발달한 이유가 아닐까? 천장에 붙이는 조명 대신, 인테리어가 되는 조명의 디자인에 힘을 쏟다 보니 자연스레 그게 발달해서 한국에서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조명들이 유명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2. 일요일이면 문을 닫는 상점들.
'북유럽의 복지국가, 청렴한 정치의 나라'라고 하면 기독교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현대 사회이지 않을까 싶지만 노르웨이는 아직까지 명백히 국가의 대표 종교가 기독교인 나라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기독교 정당이 꽤나 힘을 쓰는 곳이기도 하다. 주일인 일요일이면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는 이유다. (주변에 일요일에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현지인을 찾기는 힘들지만 어쨌거나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일요일은 대부분의 상점과 슈퍼마켓이 문을 닫는다. 카페들도 쉬는 곳이 부지기수이고 여름이 되면 그나마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카페들이 등장한다. (짧은 여름은 일요일도 즐겨줘야 한다는 주의인가.) 또, 기독교의 부활절 등의 연휴들도 빠지지 않고 휴일들이라 슈퍼마켓에서는 미리 그 달에 기독교 관련 주일이 있으면 가게 문을 여는 시간과 닫는 날 등을 공지해서 문에 붙여놓는다. 미리 장을 보지 않으면 큰 곤란(?)을 맞이하게 될 수 있으므로 쉬는 날이 온다 싶으면 문 여는 시간 확인과 미리 장을 봐놓는 것은 필수인 노르웨이다.
3. 후들후들한 북유럽 물가
4인방의 출연진이 간단히 배를 채우기 위해 만만한 맥도널드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가격을 보고 환율을 계산해 보고는 놀라고 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빅맥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여기선 빅맥 햄버거 단품이 한국의 세트보다도 비싸다. 세트를 주문하면 2만 원은 우습게 넘어가 버리는 북유럽 물가.
처음엔 나도 북유럽 물가 무섭다 들어는 봤지만, 와서 살아보니 아닌 게 아니라 진짜 돈 쓸 때마다 손이 후들후들할 정도였다. 경제생활을 하면서 시간당 버는 돈을 계산해 보면 이 물가가 그리 비싼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테지만 내 손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으니 더더욱. 또 한국에서는 대충 얼마인지 가격을 알고 있으니 머릿속에선 자동으로 환율 계산이 되면서 계속해서 물가가 얼마나 비싼지 깨닫게 된다. 그나마 슈퍼마켓의 식료품 가격은 괜찮은 편이라서 이곳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리실력을 기본 장착하고 있으며 하루 세끼 다 해 먹는 것이 정석이다.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는 것은 한국처럼 그리 흔하지 않다.
4. Icebathing 경험
갈길이 멀어 발길을 재촉하는 4인방이 유일하게 가는 길에 멈춰서 구경을 하고 간 게 오슬로에서 ice bathing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많은 곳에 들르지 않았지만 딱 들린 곳이 오페라 하우스와 다이크만 도서관이 자리 잡은 오슬로 피오르드. 오슬로에서 제일 볼만한 곳이다.) 그곳에서 그들의 관심을 끈 것은 2도의 날씨에 얼음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관찰력이 좋으신 건지 얼음물속에서 수영을 하는 그들이 나온 곳엔 따끈한 사우나가 있다는 것도 발견하셨다.
나도 3년 전 2월, 친구들과 함께 ice bathing을 한 적이 있다. 피오르드들에 각각 다른 모양으로 자리 잡은 사우나를, 몇 시간 동안 빌려서 친구들과 함께 갔었다. 우리가 빌린 사우나는 나무 장작을 때어서 그 열이 스토브 위에 자리 잡은 돌을 뜨겁게 만들면 거기에 물을 뿌려서 수증기가 사우나 안에 가득 차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여긴 마실 것은 아무거나 챙겨 와서 마실 수 있어서 맥주나 다른 술을 가져와서 마시기도 한다는 것. 한국의 온천에서 심신미약자나 고혈압, 술을 마신 사람들은 사우나를 금지한다는 푯말을 많이 봤던 나는 이게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뜨거운 사우나 안에서 술을 마시고,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속에 뛰어든다. 완전 심장마비 일으키기 콤보 3개 아닌가 싶어서.
어쨌거나 몸을 뜨겁게 만든 우리는 한 명씩 용기를 내어 영하에 가까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물이 차가울게 뻔히 보이니 사우나에서 아무리 몸을 뜨겁게 만들었어도 그게 '따뜻해서 좋다.' 이 정도이지' 아 더워서 물에 뛰어들고 싶다.'는 마음이 들정도는 아니었지만 언제 또 해볼 경험인가 싶어서 친구들을 따라 얼음물로 다이빙! 그때 알았다. 애니메이션의 사람 몸에 얼음이 따다 다닥 만들어지며 어는 모양이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 몸이 물에 들어가자마자 차가운 물이 닿는 발부터 그 그림처럼 몸 위로 얼음이 두두두둑 생겨나며 얼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춥다가 아니었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와서 무서웠다. 진짜 몸이 얼어버린 건지, 공포가 내 몸을 얼린 건지 내 의지대로 발버둥이 처지지 않았다. 이대로 물에 빠져 죽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발을 한참 움직이려고 노력하고서야 발이 움직여지며 물 위로 떠올랐다. 물 공포증도 없고, 수영이나 물놀이를 좋아하는 내가 그랬다. 순간적으로 몸이 얼어버리는 기분이 들자 공포가 밀려온 모양이었다. 그러나 다시 물 위로 나오고 갑판 위로 올라올 수 있게 되자 머리가 시원해지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이 맛에 ice bathing을 하는 게 아닐까. 한번 해봐서 무서워봤고, 그 순간도 지나가고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다음에도 기회가 있으면 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정신이 맑아지는 경험이었다. 혹시라도 노르웨이에 겨울에 오게 된다면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경험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4인방의 여행기를 보며 나는 이제 새롭지도 않게 느껴지는 이곳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노력을 하게 된다. 어느새 익숙해져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여행자가 느낄 설렘, 색다름으로 바라본다면 내가 사는 곳에서 여행하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고, 다양성의 확장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불평보다는 '오.' 하는 감탄이 나오지 않을까. 그러면 단조롭다 못해 심심하게 느껴지는 이곳의 생활이 조금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