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군대 도전기 2

[주저리주저리 5] 20190930

by 안양시의원 곽동윤

군대에 가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 되는 일이었다. 통역병은 물론 통역장교까지 대비가 가능하면 육군, 해군, 공군 등 맞춤식 강의가 다 개설되어 있었다. 현장강의는 물론이요 인터넷 강의까지 다 갖춰져 있었다. 현장강의는 강남에 가야 들을 수 있었고 가격도 상당히 비쌌기에 나는 인강을 듣기로 마음먹었다.


인강 한 달 치를 끊고 본격적으로 통·번역 공부를 시작하면서 2학년 1학기는 휴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 글에도 얘기했지만, 당시에는 이미 군대에 간 동기도 꽤 있었고 입대가 확정된 동기도 있었다. 아니면 아예 2학년 1학기를 다니는 동기도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정해진 것도 없는데 아예 휴학하기로 했으니 일반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기간은 돌이켜 보면 나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초중고 시절 내내 타의로 공부하던 내가 21살이 되어서야 스스로 필요성을 느껴서 진정한 ‘자기 주도 학습’을 했기 때문이다. 통·번역 공부와 더불어 다양한 영어 공부를 한 것은 내 영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텝스와 토익 준비를 비롯하여 과외수업을 위해 고3 수능특강 교재 연구 및 변형 문제 제작 그리고 기출 문제 분석 역시 꾸준히 했다.


사실 어학병 준비를 1월에 시작할 때 동생이 실용음악학원 등록하는데 구경하러 따라갔다가 나도 어쩌다 드럼 레슨을 받게 됐다. ‘군악대’ 합격을 목표로 레슨을 받았는데 나는 당시 ‘어학병’이나 ‘군악병’ 합격을 위한 일종의 ‘투트랙 전략’을 짰다. 지금 생각하면 둘 중에 하나만 하기도 벅찬데 무슨 정신으로 두 개를 다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차피 휴학도 하기로 했겠다 “남는 게 시간인데 뭐 어떠냐?” 이런 생각을 당시엔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한창 열심히 할 때는 오전에는 학원 연습실에서 2~4시간 연습하고 오후에는 집에 와서 영어 공부하고 저녁에는 과외 하러 가는 그런 생활을 보냈던 것 같다.


사실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건 아니었다. 이미 2012년에 카투사와 어학병 시험에 떨어졌었고 2013년 3월에 어학병 시험에 또 떨어졌다. 그해 6월에 본 군악대 시험 또한 떨어졌기 때문에 군대를 4번 지원하고 4번 다 떨어진 상태였다. 계속 떨어지기만 하니 본인 스스로 위축됨은 물론 이러다 군대를 올해 안에 못 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커졌고 부모님 또한 지금이라도 다른 방법을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셨다.


나에게 남은 마지막 옵션은 2013년 7월에 시험을 보고 9월에 입대하는 어학병 시험이었다. 이와 함께 당시 교회서 7월에 라오스로 단기선교를 가게 됐다. 하나님한테 “군대 문제를 맡길 테니 준비하는 기간과 라오스 가는 기간 동안 공부 못해도 알아서 책임지고 9월에 꼭 입대하게 해달라. 9월 이후로는 인생계획 세워놓은 게 없으니 책임져 주시길 바란다.”라는 마음으로 단기선교에 참여했다.


다녀오고 나서 2~3주가량 시험을 준비하고 시험장에 딱 갔는데 번역 시험부터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4문제의 ‘영한 번역’ 문제 중 한 문제가 과외 준비하면서 시험 전에 풀어봤던 지문이었고 이는 사실 내가 현역 때 본 수능 문제였다. 아는 지문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으로 번역 시험을 마치고 제일 긴장되는 통역 시험을 보기 위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원래 한영통역에 자신이 없고 영한통역에 자신 있었는데 먼저 시행한 영한통역을 완전히 말아먹어서 약간 멘붕이 왔다. 그런데 한영통역으로 나온 지문이 기적적으로 그 날따라 내 귀에 선명하게 꽂혔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난 2010년 3월부터 학부모와 학생이 참여하는 교원 평가제가 시행되었습니다. 한국교육과학기술부는 이번 정책을 통해 공교육의 질적 향상과 사교육비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 내용이 머릿속에 딱 박히면서 찰나의 순간에 교원 평가제는 ‘teacher’s evaluation’으로 (물론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틀린 표현) 한국 교육과학기술부는 ‘the government’로 (이 또한 인강에서 요령으로 배운 부분) 대처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영통역을 깔끔하게 끝냈다.

결과적으로 5번의 시험 끝에 군대에 ‘붙을 수’ 있었다. 합격했다는 통지를 보고도 믿기지 않았고 진짜로 어학병에 붙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군대에 붙어서 기뻐한다는 것이 씁쓸해서 기쁨과 우울함이 공존했던 오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이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썼다가 지운 내용도 많은데 생략된 이야기와 군대에서 겪은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뻔한 군대 이야기는 생각나는 대로 차차 정리해봐야겠다. 지금으로부터 딱 6년 전 2013년 9월 30일 월요일, 입대한 첫날 밤 10시에 누워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으니 그만 생각해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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