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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벌진트 - 삼박자 2025

by 김철홍

버벌진트 - 삼박자 2025


40대 중반 남성의 오후 한 시 반부터 다음날 열두 시까지를 담은 노래. 화자는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저녁 여섯시가 되면 여지없이 위스키 병을 열고야 마는 사람이다. 그렇게 새벽 세 시가 다 되도록 술을 마신 그는, 다음날 술 때문에 일찍 잠에서 깬 후 아직 몽롱한 상태에서 곁에 없는 ‘너’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같은 말을 되뇐다. I wanted this. I wanted this. I wanted this. 그 읊조림과 함께 ‘나’가 원했던 ‘너가 없는 일상’이 느리고 구슬픈 삼박자로 계속해서 반복된다. 이 일상은 노래가 끝나도, 꽤 오랜 기간 반복될 것만 같이 느껴진다.


삼박자 2025는 버벌진트의 세 번째 ‘삼박자’ 시리즈이다. 첫 번째 ‘삼박자’는 2007년 [무명]에, 두 번째 ‘삼박자 2010’는 2009년 [The Good Die Young]에 수록돼 있었고, 꽤 긴 시간이 흘러 올해 초에 나온 [HAPPY END]라는 앨범에 오랜만에 세 번째 시리즈가 나왔다. [HAPPY END]는 그가 밝히기론 자신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데, 그래서인지 앞의 두 삼박자와는 완전히 다른 곡의 분위기가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특히 ‘다시 난 해냈지”라는 자신감 넘치는 가사로 곡의 마지막을 장식한 삼박자(2007)랑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마음속 불꽃이 사라진 한 아티스트의 쓸쓸한 마지막을 보는 기분이랄까.


이 노래는 표면적으론 사랑 이야기, 연인과 결별한 뒤 무너진 일상을 보내는 한 사람의 심정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다른 많은 버벌진트의 곡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에 관한 비유로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한때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았던 한 아티스트, 그러나 동시에 그 큰 사랑을 부담스러워했던, 그래서 자신을 향한 시선들이 사라지기를 원했었던 그는, 자신의 마지막 정규 앨범에서, 마지막이니까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만 내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으면서, 결국 하는 거라곤 자신의 초라한 현재의 모습을 만천하에 전시하는 것뿐이다. 한 손에 오래된 위스키 병을 든 채, 돌아와 달라고, 이제 다시 잘해보겠다고 자신 있게 소리치지 못하는 래퍼. 어쩌면 소위 말하는 힙합의 태도와는 정 반대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래서 가장 힙합 같다. 내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는 래퍼의 마지막이 멋있어서 행복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1UquZ2ib5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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