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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트럴 데미지 수습하기 <캡틴 아메리카: 브뉴월>

by 김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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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가 된 샘과 미국 대통령이 된 새디우스가 ‘브레이브 뉴 월드’를 위해 애를 쓰는 이야기. 그중에서도 본격적인 어젠다는 어벤져스의 재결성이지만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벤져스는 어차피 어떤 일이 있어도 언젠가 재결성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종장의 최후 빌런과의 파이널 전투가 성립 가능한 것이니까. 그래서 결국 재밌어야 할 것은 과정인데, 새 페이즈의 작품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이제 그 ‘재밌는 과정’의 레파토리가 웬만하면 이미 다 봤던 걸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보면 - 만드는 사람들도 이게 예전에 했던 레파토리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재미없는 걸 알면서도, 이야기의 연속성을 위해 그냥 빈칸을 채우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매 과정이 재밌을 수가 있는가!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면 누군가는 지루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작업도 해야만 하는 것이 세상의 진리다. 거의 매번 재밌었던 <엔드게임> 이전까지의 영화들이 이례적이었던 것뿐. 어쩌면 <엔드게임>에 버금가는 다음 피날레를 만들어보겠다는 욕심 자체가 세상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려는 짓일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부딪혀 보는 과정도 고통스럽겠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 또한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간의 정 때문에 속으론 마음 다 떠났는데 계속 보는 것도 힘든 일이니까.



그러나 이 만남도 반복이 되면 될수록, 그 식상한 레파토리가 축적되면 축적될수록 또 새로 보이는 게 생긴다. 나는 이제 그들이 고민하고 발버둥 치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행위 예술로 느껴지기도 한다. 파장이 너무나 큰 무언가를 만든 사람들이, 그로 인해 생긴 ‘부수적 피해’를 어떻게든 끝까지 수습해 보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짠함이 느껴진다.



부수적 피해. 영어로는 콜래트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 군사적 용어라고 하는데, 대략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 영화들이, 아니 영화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인류 역사가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희생시킨 것들을 못 본 체하고 다시 또 새로운 대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주 목표였다고 한다면, 근래의 영화들은 그 데미지를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 대표 주자가 디즈니. 어쩌면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대의를, 그래서 가장 많은 부수적 피해를 유발했을지도 모르는 디즈니 스튜디오. 며칠 전 <브레이브 뉴 월드> 시사회 때 기다리는 중 <백설공주> 실사 버전의 예고편이 나오는데 영화관에 뭔가 들리지 않는 탄성이 들리는 듯 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작업, 그리고 주인공 캐릭터의 다양성 캐스팅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까. 그건 디즈니 내부에서도 잘 알고 있을 거다.



그걸 다시 한번 하고 있는 <브레이브 뉴 월드>를 보고 나니, 이 작업을 디즈니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은 뉴 월드를 위해서 누군가 균형을 맞추는 작업을 해야 한다면, 그걸 제일 잘할 수 있는 곳은 업계의 캡틴이라고 할 수 있는 디즈니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에 여러 번 등장하는 샘이 자신을 의심하는 모습, 자신(그리고 흑인)이 정말로 ‘캡틴’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습이 영화의 재미(대의)를 위해서 생략될 수도 있지만 절대로 생략되지 않는 것처럼. 디즈니 역시 과거의 멋진 작품들을 절대로 한 작품도 빠짐없이 모조리 다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세상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돌을 던질 테다. 허나 그것들을 묵묵히 막아내는 게 캡틴의 상징인 방패의 진정한 쓸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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