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제발 한 번 봐달라고 말하고 다니고 싶은 영화를 만났다.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난니 모레티 영화 제목 같다. 이탈리아 영화이기도 하다. 이제 막 여성에게 참정권이 생긴 1946년 로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인공 델리아는 여성이다. 델리아는 오늘을 산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편, 큰 딸, 두 어린 아들, 그리고 아픈 시아버지가 집에 있다. 그들을 뒷바라지하는 동시에 바깥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여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델리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내일은 딸에게 있다. 딸이 이제 곧 번듯한 집으로 시집을 갈 예정이다. 그 사실이 델리아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델리아는 오직 딸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오늘을 산다. 델리아의 오늘은 딸의 내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딸이 결혼하여 이 시궁창을 벗어나는 것이 델리아가 생각하는 이 삶의 행복한 결말이다. 그렇다면 딸이 떠나면 델리아는 어떻게 될까. 영화 또한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비참한 현실 앞에서 입이 잘 안 떨어지는 영화긴 하지만 극 자체는 유머러스하게 전개된다. 기억 미화라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그보단 미래 사람들 과거 일상 보고 놀라지 말라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느껴진다. 엄마가 아빠한테 맞은 다음에 맞은 거 아니었다고, 춤췄던 거라고, 아이를 속이는 것처럼. <어둠 속의 댄서>가 생각나는 뮤지컬 씬이 실제로 있기도 하다. 과거의 아이였다면 다 알고 있는 척했겠지만, 지금은 차라리 속아주는 게 엄마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 영화는 전부 흑백으로 찍혀 있다.
결말에 강력한 한 방이 있는 영화다. 그 한 방으로 이 영화는 많은 것을 대표하는 영화가 된다. 무엇보다 여성의 내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2023년에 개봉해 이탈리아 극장 흥행 기록을 세웠다고 하니 이탈리아 영화를 대표할 수도 있다. <왕과 사는 남자>가 2026년 한국 영화를 대표하듯.. 델리아로 유해진 급(p) 연기를 보여준 파올라 코르텔레시가 직접 각본과 연출까지 맡았다. 이것이 그의 연출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