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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temonday Mar 23. 2021

흙의 시간

문득 아무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은 

말갛고, 하얀 것들이 먹고 싶었다.

평범하게 밍숭맹숭한 것들이 주는 편안함이 간절했어서. 그래서 이번엔 그림도, 장식도,

어떤 색깔도 없는, 그런 별거없는 순백의 그릇을 

쌓아 보고 싶었다. 초보자가 욕심낸 아주 약간의 

기교라면 그릇 밑둥의 곡선을 크게 살리고,

 위론 심플하게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형태 

정도? 생각만해도 이미 너무 담백했어..


그치만 아기 엉덩이처럼 동글고 예쁜 곡선은 

생각보다 만들기 어려웠던거라.

선생님이 ' 형태는  어려워요'라고 경고했어도,   살릴  있을 것이라 자신하고 시작했지.

그렇게 초짜의 자신만만함은 결국 꺽일 때가 

오고야 만다. 선생님의 예상대로     코일을 쌓아 올리면 어딘가는  곡선 부분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는 거다.

곡률이 무너진   눈에 보일 때도 있었고, 나도 모르게 무너짐이 생겨버릴 때도 있었다.

무너지지 않았던 그나마 멀쩡했던 곳들은 

두께를 맞추는 과정에서 곧잘 퍼져버리곤 했다.


 맘대로 되지 않는  작은 무너짐 앞에서 나는 

쩔쩔맸다. 줄이기도 했다가, 끌어올려보기도 

했다가, 급하게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가, 역시  코일 쌓기랑 안맞아,

 시작했냐 후회했다가, 참을성이 바닥났을  

주먹으로  부셔버리고 싶었다.


더이상 코일을 위로 쌓아올릴  없을 만큼 

무너져버렸을 , 별수없이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로 방향을 턴할 수밖에 없다.

최대한 형태를 맞추는 교정 작업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너진 코일을 수습해내면 잠시간 

휴지기를 갖는다. 흙도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동안엔 젖은 물수건을 올려 끝이 갈라져버리지 않게 최소한의 습기만을 공급해주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욕심으로 한껏 물을 쳐발라 질척해져버린,

그릇도 뭣도아닌  흙덩어리를 그늘진 책꽂이 

  어딘가에 올려두고 굳힌다.

단단해져서 다음  코일을 쌓아 올렸을  무너지지말고  버텨주라고. 그리고 이제 내가  일은

기다려주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흙덩이가  쉬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흙의 시간을 기다려주면 된다. 다음주에 만나자, 색기야.. 무너지지마. 그리고 밍숭맹숭이고 나발이고 빡치니까 여기에 마라우육탕면 담아먹을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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