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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굥 Jul 06. 2021

인생 첫 심리상담 후기

자신 스스로 답하며 나를 알아가는 과정

서울에는 몇 개의 심리지원센터가 있다. 우연한 기회에 집과 아주 가까운 곳에 심리지원센터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작년 가을 즈음에 심리상담을 신청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거라 무료로 진행되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펜데믹으로 인해 코로나 블루를 겪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는지 아주 당장은 상담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대기명단에만 이름을 올려두었다.


심리상담은 기억에서 잊힌 채 수개월이 지났고, 드디어 나에게도 상담의 기회가 찾아왔다. 코로나에도, 내가 처해있는 환경에도 어느덧 적응을 한 탓인지 심리상담을 꼭 받아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어렵게 찾아온 기회였기 때문에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우편으로 유의사항과 심리검사지를 전달받아서 작성해야 한다. 총 7종의 검사지를 작성한 후 첫 번째 상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상담

- 우선, 검사지를 바탕으로 한 간단한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우울과 불안정도가 정상 범위이긴 하지만 정상 범위 안에서도 살짝 높은 편. 이 정도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다만 보통의 경우에는 이만하면 잘 살지 하면서 나를 평균 이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나 자신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인생에 무언가 불만족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불만족의 이유는 내가 느끼기에 현실은 50점인데, 100점의 이상을 원해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발생한 괴리일 수도 있고, 실제 현실은 누가 봐도 100점인데 나 스스로 50점으로 평가절하한 것일 수도 있다. 진짜 이상적인 모습이 되거나, 어느 정도 현실에 만족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나의 불안정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겠다. 하지만 둘 다 말이 쉽지... 또 하나의 방법은 '내가 추구하는 이상의 모양'을 바꾸는 것이다.   

- 내가 느낀 심리 상담이란 일상생활을 하는데서 느끼는 불편함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스스로 답하며 확인하는 과정이다.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지내왔던 시간들을 돌이켜보고, 직접 입으로 생각한 바를 내뱉으면서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상담

- 중고등학교 때의 일탈을 고백했다. 밤중에 부모님 몰래 나가서 친구들 만난 이야기, 학교에서 담배 피우다가 학주한테 걸려서 부모님께 등짝 스매싱당한 이야기 등등.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혹은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그랬냐는 질문을 받았다.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압박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첫 번째 질문의 답은 No였고,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 몸부림쳤다기보다는 그냥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서, 자극과 일탈에 충실한 학생이었다는 생각에 두 번째 질문의 대답도 No였다.

- 힘들어도 열심히 살았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은 이유는 열심히 산 결과가 꽤 좋은 성취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노력은 곧 성취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학습을 줄곧 해왔으니 노력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쉬는 것이 불안하다. 하루를 야무지게 꽉 차게 보내고 집에서는 쓰러져 자는 삶을 지향한다. 애쓰고 노력하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지만, 그렇게 특정 기간에 애를 쓰다 보면 번아웃이 온다. 인간도 어느 부분에서는 기계와 같아서 작동을 멈추고 기름칠해주지 않으면 고장 나기 십상. 가끔 쉬어가며 재충전하는 시간도 또 한 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 무언가 잘 안됐을 때 자책이 심하다. 특히 업무상에서. 되는 이유도 그렇겠지만 안 되는 이유 또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변수가 많다. 나를 콕 집어 '나 때문이야'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세 번째 상담

- 부모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상담이 아직 마무리는 안 됐지만 인생에 있어서 부모의 영향력이 어마무시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특히 아이와 더 많은 소통을 하는 엄마의 영향력. 엄마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 가모장 엄마 그리고 무능한 아빠. 내가 이 모양으로 큰 이유는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딸이 '커리어 우먼'으로 성장하길 바랬다. 내가 무언가에 도전할 때마다 '모험심'이 강하다며 꽤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그 도전이 무사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썩 맘에 들지 않는 대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휴학을 하고 편입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도, 해외를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지만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했을 때도, 29살 괜찮은 중견기업을 때려치우고 싱가폴로 해외취업을 한다고 했을 때도 엄마는 말린 적이 없다. 그런 엄마와 나의 시너지는 모험심 강한 커리어 우먼으로 성장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 아빠가 자영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엄마는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계속 열일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제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고 나 스스로에게도 '경제력'을 바란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만으로는 부족하고, 제2의 수입원을 찾아서 계속 방황하는 중이다. 애초에 돈을 알뜰살뜰 아껴 쓰면 충분한 월급이겠지만, 소비가 너무 즐겁다. 슬프게도 즐겁게 쓰기 위해서는 개같이 벌어야 한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 참으로 고생스러운 인생이다.    


네 번째 상담

 - 원하는 걸 이루게 도와주는 엄마의 사랑에 익숙하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무모한 나를 말리는 사람도 꽤 있는데, 이래서 저래서 하지 마라~ 더 알아보고 해라~ 하는 이야기들은 내게 '잔소리'로 들린다. 나를 걱정해서, 좀 더 옳은 판단을 하길 바래서 하는 소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게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거나 내가 하는 행위가 정 못 미덥다면 나를 브레이크 걸만한 '정보와 논리'가 필요하다. 후자보다는 전자가 내가 원하는 바다 (내 선택에 확신이 없어서 반대 의견에 귀를 닫고 싶은 걸 수도 있다). 사실, 하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든다면 똥이든 된장이든 찍어 먹어봐야 아는 스타일이다.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면 후회와 책임도 내가 짊어지면 그만이다. 애써 내린 결단(충동적인 결정일 수도 있으나)에 혼란이 오지 않도록 원하는 것을 끝까지 지키고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으로!

- 최근 들어 뭔가 시작은 잘 하지만 마무리는 흐지부지한 경우가 많다. 블로그, 티스토리, 네이버 스토어팜, 공인중개사 공부 등을 시작했지만 크게 결실은 없는 상태다. 사실 이것들을 시작할 때 '재미'보다는 '돈'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돈'이라는 결과가 즉각적으로 발생하지 않자 시들시들해진 것이다. 무언가에 몰두해있는 '덕후'를 동경한다. 하지만 덕후는 돈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재밌어서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다. 지금은 내가 몰두할만한 흥밋거리를 찾고, 그것에 투자해야 하는 시기다.


상담받는 곳 - 서울심리지원동북센터 덕성여대 내 덕우당


다섯 번째 상담

- 성인이 되기 전, 어릴 때의 모습이 본질적인 나의 모습에 가장 가깝다.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면 태초의 내 모습에서 힌트를 발견하는 것도 방법이다. 초딩 때는 반 도서 부장으로 활동했다. 교실 내 조그맣게 마련돼있는 서가를 관리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이슈를 발표하는 일이었다. 중딩 때 썼던 일기장이 5권은 넘는 것 같다. 잡다한 생각이 많은 아이라 기록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딩 때는 야자 시간에 공부 대신 책을 읽었다. 특히 일본 소설, 에쿠니 카오리의 책을 많이 읽었다. 내 생각들 담은 일기장을 반 친구들이 돌려보기 시작했고 친한 친구 몇몇은 그 일기장에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춘기의 치기, 재기 발랄하고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감정이 담겨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독서모임을 운영했었고 책과 글은 나를 말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 독서하는 나의 모습은 외향적인 나와 어쩐지 상반된 모습이다. 사람들을 만나서 왁자지껄 시간을 보내다가도 알게 모르게 기가 빨려 조용히 있고 싶어 진다. 조용히 있다가도 어디론가 뛰쳐나가 활동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양면의 모습이 모두 있는 나. 양쪽의 모습을 모두 잃지 않도록 지켜주고 싶다.

- 구남친은 진짜 별로였다. '네가 원래 이런 애인 줄 몰랐다. 사귀기 전에는 이런 모습을 기대했는데, 기대에 못 미친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현재의 내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던 너. 이런 얘기를 듣고 불쾌했던 것처럼 남에게 듣기 싫은 말을 나 스스로에게 해서는 안된다.

- 남자친구에게 달달한 말,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기대하지만 그는 현실적으로 대답할 때가 많다. 너무 오냐오냐하면 냉혹한 사회로 나갔을 때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현실 적응을 도와주는 멘트라고 좋게 생각할 수 있다.


여섯 번째 상담

- 3년 전 1학기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때려치운 방통대에서 재입학 공지가 왔다. 매 학기마다 오는 것 같은데 늘상 무시를 하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오게 됐다. 올해 상반기는 뭔가 큰 발전 없이 지낸 거 같아서 하반기에는 공부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에 재입학 뽐뿌가 왔지만, 예전에 어이없이 그만둔 기억이 있어서 망설였다. 선택을 하기에 앞서 몇 가지 고려를 해볼 것. 공부할만한 충분한 시간은 있는지, 학기를 마치고 얻을 건 무엇인지 말이다. 하고 싶은 걸 다하면 좋지만 우리에겐 시간, 돈, 에너지가 충분치 않으니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 얼마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안 하고 있다. 얘도 고된 일상을 보내다가 겨우 짬 내서 이런 좋은 모습을 올리는구나 하고 말면 괜찮지만, 있어 보이는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내 인생과 비교해서 우울해할 바에는 SNS 따위 끊어내는 것이 좋다.

- 남자친구는 나에게 선택과 집중을 하라고 한다. 이것저것 손대서 고생만 하고 결실을 맺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운가 보다. 하지만 이게 나인걸? 남자친구에게 '도중하차'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기 위해 애매하게 시작한 일은 말하지 않는다. 저번 달에 타로 공부를 살짝 시작했는데 일주일 안에 접는 내 모습을 보고 말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중간에 그만둘까 봐 혹은 망할까 봐 걱정하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저질러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물론 '난 또 왜 이 모양이지?'라며 자책하는 모습이라면 바로 잡아야겠지만 이런 내 모습도 괜찮다면 뭐든 한번 해보는 거다!


상당히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상담. 이것이 상담의 갬성


총 8회의 상담이기 때문에 2번의 상담이 더 남았다.

To be continued...


일곱 번째 상담

- 애착 인형에 대한 이야기. 애기 때부터 함께 놀고, 끌어안고 자던 인형이 있다. 나와 30년 넘게 시간을 보낸 아주 소중한 아이다. 어릴 때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그 아이는 털복숭이인데 지금은 털이 많이 빠져서 볼 때마다 안쓰럽기는 하지만 여전히 귀엽다. 맞벌이를 하셔서 늘 나와 함께 놀아주실 수 없는 부모님 대신 '멍멍이'라고 불리는 그 아이는 늘 내 곁에 있었다.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하고 (절대적인 양이라기보다 상대적인 부족함), 내 안에 어떠한 결핍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어릴 때 부모님과 놀았던 기억, 내가 원하는걸 최대한 들어주려는 그들의 모습이 기억 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멍멍이처럼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늘 옆에 있어주는 부모님을 원했던 게 아닐까? 항상 곁에 있고, 내 맘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것 같은 멍멍이와 함께일 때는 지상 최고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이미 그 시절은 지났지만, 아주 애기 때의 나는 더 많은 부모님의 사랑을 원했구나 하고 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내 안의 결핍을 확인하자 괜히 눈물이 나왔다. 

멍멍이를 애착 인형 병원에 맡기려고 문의 글을 올렸는데 우연히 달린 댓글


마지막 상담

 - 드디어 8회째 상담이다! 마지막 상담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돼서 줌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 지침이라능... 그동안의 상담은 마스크에 가려져 상담 선생님의 하관(?)을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집 안에서 콜을 하면서 처음으로 선생님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담이 마지막이라니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내 속 마음을 누구한테 털어놓지?

- 작년 거의 1년 내내 재택근무를 하면서 은근 코로나 블루가 왔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가 치솟으면서 다시 재택근무하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작년처럼 집콕에 익숙해지면 우중충한 기운이 나를 지배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밖순이는 안전을 지키며 밖에 나가야 한다. 한 번 경험해봤으니 감정이 축 가라앉지 않게 관리를 잘해보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늘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며 '고인 물'이라는 느낌을 느끼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생님이 추천한 방법은 '늘 가던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가보기'. 동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소소한 자극이 될 수 있다. 낯선 동네 탐험하는 걸 평소에 즐겼는데 그러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은 자기 살 길은 자기가 알아서 찾아가기 때문에 때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 '여름방학'같은 일상이다. 회사 일이 빡빡하지 않은 시기이고 밖은 무덥다. 나를 내몰던 시간을 줄이자 적적함이 찾아왔다. 텐션과 릴랙스 사이의 밸런스를 잘 유지할 것. 어찌 됐든, 뭘 하든 내 맘 편한 게 최고다. 

- 상담을 받고 나니 '인생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가 나를 아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번 되새긴다. 나의 기분, 감정,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이유가 있다. 그냥 별거 아니라고 흘려보낼 수도 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있고, 이유를 알면 불편한 감정에 대처할 수 있다. 


긴긴 상담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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