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지옥선이다
이른바 경기민감 업종, 해운 및 조선 분야에서 구조 조정이 진행 중이다. 늘 그렇듯, 약자부터 쫓겨난다. 기댈만한 연줄이 없는 사람,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 숙련도가 낮은 일을 하는 사람.
거센 풍랑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약자들을 바다로 걷어찬다. 그래서 배가 침몰을 피하면, 살아남은 강자들은 행복할까. 그럴 리 없다는 걸 다들 안다.
내용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릴 때 <지옥선>이라는 글, 혹은 만화를 봤던 것 같다. 딱 제목만 생각난다. 지옥선이 별 건가 싶다. 약자들을 쫓아내고, 살아남은 강자들만의 세상이 지옥선이다. 그 안에서 다시 약자와 강자가 나뉜다. 자기가 강자인 줄 알았던 사람이 한순간에 약자 취급 받으니 더 비참하다.
오늘은 노동절이다. 취재 혹은 구경 삼아 집회에 가면, 익숙한 민중가요가 귀에 꽂힌다. 단결투쟁가, 동지가..등. 20대 시절부터 부르고 듣던 것들이다. 새로 나온 노래도 있다. '비정규직 연대 철폐가'라는 노래인데, 내가 대학 다닐 때는 없던 노래다. 당연하지, 비정규직 확산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니까.
예전에 집회 현장에서 자주 불리던 노래 가운데 다수는 듣기 힘들다. 민중가요도 승자 독식인가, 싶다. 아주 익숙한 몇 개만 오래 살아남는가 보다.
조선소 노동자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는다는 소식에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해방을 향한 진군'. 중간에 "소나기 퍼붓는 옥포의 조선소에서"라는 대목이 있다. 조선해양공학과 애들은 이 대목을 여러 번 반복해서 부르곤 했지. 그 노래 가사를 다시 옮겨본다.
- 해방을 향한 진군
투쟁의 망치로 노동자의 하늘을 열며
가슴시리게 사무치는 총파업 기억으로
어깨를 맞대고 노동의 힘모아
마침내 전노협 전선에 우뚝서다
투쟁은 가슴 속에 살아 심장으로 뛰고
동지는 가슴 속에 살아 해방을 노래하리
소나기 퍼붓는 옥포의 조선소에서
눈보라 휘날리는 서울 철로위로
어깨를 맞대고 노동자의 힘과 뜻모아
잡은 손 놓지 못하는 놓지 못하는
노동해방의 약속으로 전노협 전선으로
"투쟁의 망치로 노동자의 하늘을 열던"이라는 첫 구절이 이상하게 와닿았던 기억이 있다. 이 노래를 왜 요즘은 듣기 힘들까. 하긴, 전노협이 사라진 게 언제인데 싶다. 민주노총이 출범한 지도 벌써 21년이다. 그래도 이 노래가 듣고 싶다. 올 여름, 소나기 퍼붓는 옥포의 조선소에서 숱한 노동자가 해고당할 게다. 나라가 통째로 지옥선이 돼 간다. 날씨가 더워지는 게, 여름이 오는 게,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