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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ie Oct 08. 2015

악필이 죄도 아니고..

'바른 글씨, 바른 마음' 의 유래

요즘 흔히들 자신이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을 "나 지금 '궁서체'다"라고 표현한다. 웹상에는 '바르고' 읽기 편한 서체들이 수백 가지이고 필자의 기분에 따라 혹은 쓰고 있는 글의 목적과 분위기에 따라 서체를 바꿀 수 있으니 오죽하면 웹상에서 '궁서체'는 진지함 또는 심각함을 상징하는 서체가 되어버렸다. 지금 써 내려가는 이 글 또한 '본고딕'이라는 서체에서 '나눔 명조' '나눔 고딕' '나눔 바른 고딕'으로 바꿀 생각이 없다. 나눔 명조는 내 글을 너무 무겁게 만들 것 같고, 나눔 고딕은 서체 자체가 투박해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고, 나눔 바른 고딕은 획이 얇아서 연하게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상황이나 기분 또는 목적에 따라 클릭 한 번으로 글씨체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요즘이지만 필체의 모양새가 더 큰 의미를 담고 있을 때도 있었다. 


공무원이셨던 나의 할아버지에게 서예는 취미이자 특기였다. 국내 서예대회에서 수상을 하신 적도 있다고 하고 나의 기억 속에도 할아버지 댁에는 늘 서예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그분의 장남인 나의 아빠는 모범생 타입이었지만 심한 악필이다. 그런 아빠에게 할아버지는 늘 "글씨를 바르게 써야 마음가짐이 바르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라는 아주 선비 같은 잔소리를 하셨다고 한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 타입이었던 나의 아빠는 필체에서 만큼은 할아버지에게 지지 않은 채 "내가 어른이 되면 로봇이 나를 대신해 글씨를 써줄 테니 지금 악필을 교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라며 당당하게 맞섰다고 한다. 그렇게나 뚜렷한 선견지명이 있었던 분이 컴퓨터를 발명하여 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빌 게이츠가 되었다면..이라는 쓸모없는 가정은 상상 속에만 맡겨둔다. 


서예가의 악필 아들이 낳은 딸도 악필이다. 악필도 유전이라면 왜 탈모 증상처럼 한 세대를 건너뛰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읽기 힘들 수준은 아니지만, 웬만한 여자아이라면 글씨체가 깔끔할 법도 한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놀랍지 않게도 "너는 글씨체도 네 아빠를  닮았니"라는 엄마의 말을 수도 없이 들어야 했고 초등학교 때 점선이 그어진 정사각형 칸에 '바른 글씨'로 국어책을 베껴 쓰는 숙제가 가장 힘들었다. 숙제 외에도 경필쓰기대회 같은 것이 있었다. 난 분명 악필인데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 경필쓰기대회 동상을 주셨다. 상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나는 의아한 나머지 선생님께 왜 내가 상을 받게 되었는지 물었다. "글씨 더 예쁘게 쓰라고 주는 상이야. 더 바른 마음으로 바른 글씨를 써야지." 사실 나는 나의 글씨체를 교정할 마음이 없었는데 말이다. 이미 나의 필체는 나의  일부분처럼 언제 어디서든 알아볼 수 있는 표징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말썽을 피운 적도 없는데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한다니.. 


바른 글씨를 쓸 줄 모르는 나는 바른 마음을 가지지 못한 것인지 또 바른 글씨가 입증하는 바른 마음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해답을 찾지 못한 채로 살아오고 있다. 해답을 찾을 필요도 못 느끼는 이유는 연필로 종이에 나의 필체를 뽐내는 행위보다는 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를 열 배 가량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류를 작성할 때 조금 쪽팔리거나 손편지를 요구하는 남자친구 앞에서 조금 작아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불편함을 찾기 힘들다. 오히려 자주 찾던 카페 벽면에 남겨놓은 나의 필체로 된 낙서를 찾는 것이 즐겁다. 해답을 찾을 필요를 못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아직 그 누구에게도 "너는 바른 마음을 가지지 못한  아이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바른 글씨를 쓰고 바른 글씨를 써야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루머를 퍼뜨린 걸까? 


나는 서체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21세기 과학기술의 빠른 성장을 완벽하게 지지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악필이라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받은 상처들이 있는 것 같다. 바른 글씨를 써내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바른 마음을 가지고 살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사실 또한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모두가 바른 글씨를 쓰면 좋겠지만 '바르다'의 기준이 경필 쓰기 노트에 빼곡하게 인쇄된 정사각형 칸들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느라 "경필 쓰기"를 검색해보니 아직도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은 의무로 경필쓰기대회에 참가하는 모양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바른 글씨, 바른 마음" 이 대회의 모토라면, 대회의 수상 기준은 바른 마음인지 바른 글씨인지도 모르겠다. 혹여나 상을 수상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자신은 바른 글씨를 써내지 못해 바른 마음을 가지지 못한 아이라는 착각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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