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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ie May 06. 2017

나를 위한 용기

3-2 The New Destiny

여러분, 삶에는 두 가지 상태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통의 상태와 고통이 없는 상태예요.


말도 안 돼. 두 가지 상태뿐이 없다면, 난 항상 고통의 상태에 있다는 말인가? 고통스럽진 않아도 목에 가시 걸린 듯, 조금 불편하지만 견뎌내는 날들이 많고, 행복하다가도 걱정과 스트레스가 있기 마련인데. 고통 또는 no-고통이라니! 이런 식의 논리라면 고통이 없는 상태는 평생 없단 말이야?


오와의 가르침 중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요점은 바로 우리에게 단 두 개의 의식상태가 있다는 사실이다. Limited State of Consciouness (한계의식상태)와 Limitless State of Consciousness (확장 의식상태). 고통의 상태와 아름다운 내적 상태. 누군던 이 정보를 듣게 되면 위에 나와 같은 반응일 것이다. "고통이 전혀 없는 상태라..그렇게 치면 난 항상 고통스러워왔고 앞으로도 고통스럽겠군. 저런, 괜히 인도까지 왔어."


이 가르침을 소화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고통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듦'을 경쟁하면서도 '고통'이라는 단어 앞에선 당당해지지 못한다. 예를 들어볼까.


"나 요즘 매일 야근하느냐 잠도 못 자거든." "나는 우리 부장님 때문에 미치겠어. 사람을 환장하게 만들어서 내가 이 나이에 탈모가 온다니까." "말도 마라. 우리 팀장 때문에 나는 만성 소화불량이다. 사표를 쓰던가 해야지 아주 짜증 나."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화일 수도.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경쟁한다. 내가 너보다 더 힘들어!! 하면서도 막상 "당신은 지금 고통스럽습니까?"라는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고통이라는 단어는 우리 스스로를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자로 하락시키는 것만 같기 때문일 거다. 또, 현대 사회에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명언이 될 정도로 고통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고, 고통 없이는 성공이 없을 거라 세뇌되어 왔다. 쉽게 말해 스트레스 없이 사는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저는 지금 고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라며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누구나 걱정, 불안감,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기고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되어 왔다.


하지만 내가 고통스러운지 아닌지는 오직 나의 판단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기분 좋은 어느 날, 가족들과 나누어 먹기 위해 케이크를 사들고 집으로 귀가한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니, 아무도 나와 케이크를 먹어주지도 않고 싸늘한 분위기만 감돈다. 분명 온 가족이 행복하게 내가 사 온 케이크를 먹으며 웃고 떠드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분명 기분이 좋았는데 이런 상황을 마주하니 나쁜 기운이 올라온다. 이때에 나는 고통의 상태에 있는가?


정답은 "Yes." 실망감, 짜증, 원망.. 이 모든 것이 고통이다. 기대에 부풀려 있었지만 충족되지 않았으니 실망감을 느꼈고, 가족들 때문에 나까지 기분이 나빠져서 짜증이 나는데다, 내 비위를 전혀 맞추어주지 않는 가족들이 원망스럽다. 오와는 바로 이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아! 내가 방금 실망감을 느꼈구나. 고통의 상태에 왔구나!"를 인정하도록 가르친다. 애써 쿨한 척하면서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는 것이다. 인정할 용기를 가지는 순간, 그 다음 스텝인 "이 고통에서 벗어나자. 나는 고통에서 벗어날 힘이 있다"로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정 후 고통에서 벗어나는 시간은 몇 년, 몇 달, 몇 시간이 걸릴 수도, 혹은 단 5초밖에 소요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게 내적 평화를 찾으면 케이크를 보관해 두었다가 내일 먹던지, 가족들과 먹는 대신 내일 회사 동료들과 나눈다던지, 또는 가족들이 우울한 이유를 알아보고 함께 해결하던지와 같은 해결책이 더 명확하게 보일 것이라는 거다. 깨달음의 시작이 이 명료함에서 온다. 이것이 오와의 가르침의 기본이다.


물론, 말처럼 글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인도를 가서 가장 힘들게 인정했어야 했던 건 나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내 주변엔 항상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영화관을 가는 것, 혼자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외로움이란 나에게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어떤 그룹에만 가면 나도 모를 불편함이 솟구쳤는데 그 불편함이 "소외감, 외로움"이었다는 걸 알아차리는데 3년이 걸린 것이다. 나와 마음이 잘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발버둥을 칠 동안, 그 누구도 나에게 해코지하지 않는데도 상처받고 소외감은 커져만 간 것이었다. "내가소외감을 느끼고 있나? 아니,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라며 3년을 싸워왔는데, 나 또한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고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은 순간 나는 그 고통에서부터 자유로워졌다.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먹이사슬의 가장 높은 곳에 서기 위해 강해지려고만 한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도 참고, 무기력한 날에도 어떻게던 힘을 내서 공부를 하고 일을 하도록 훈련한다. 그렇게 해야 좋은 대학, 좋은 직장,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강한 사람은, 몸을 혹사하지 않고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도 능률이 높은 사람이다. 행복을 유지하면서 성공을 이루어 내는 사람들이다.


이 모든게 정말 가능할까? 오와의 가르침은 진리인가? 그 고민은 죽을 때까지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인도에 머무르고, 또 그렇게 인도를 떠나 지금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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