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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ie Aug 16. 2017

<택시 운전사>의 양심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8월 17일은 문재인 정부 취임 100일째라고 한다. 트럼프 정부가 100일을 맞았을 땐 시간이 참 안 간다고 느끼고 앞으로의 시간이 까마득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경우엔 느낌이 다르다. 광화문 앞을 밤새 밝히던 촛불들이 아직 머릿속에 생생해서 더 그런 듯하다. 시간이 더 흘러야 통상적인 명칭이 붙을 그 사건은 어떻게 보면 같고 어떻게 보면 매우 다르게 역사속에서 반복되어 왔다. 그 중 가장 황당하고 아픈 사건은 장훈 감독의 <택시 운전사>를 통해 다루어진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순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그린 것인가. 국민의 알 권리를 기만하고 사실을 은폐한 언론사의 이야기인가. 그와는 상반되게 시위 현장과 병원을 돌아다니며 카메라에 모습을 담아 전 세계에 진실을 알린 참 언론인의 이야기인가. 먹고 살기 팍팍했던 80년대의 가난한 택시운전사 홀아비의 이야기인가.


나는 이 영화가 다소 경쾌한 트로트인 혜은이의 ‘제 3 한강교’를 울먹이며 부르다 과감하게 유턴하는 어느 대한민국 국민의 양심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극 중 김만석 (송강호)가 택시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둘이다. 대한민국에서 흥(興)이란 한(恨)과 공존하는데 영화의 첫 장면에서 김만석이 당시 히트곡이었던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부르며 시대 배경을 조성하고 서민들의 문화를 이미지화시켰다면, ‘제 3 한강교’를 부르는 김만석은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는 듯한 선택의 길로에서 무엇이 더 옳은지 감정적으로 고민한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 3 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


한강의 기적과 대한민국의 희망을 그린 이 노래를 삽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행복 어린 거리가 아닌 피바다가 되어버린 광주 망월동으로 김만석을 돌아가게 한건 "손님을 두고" 온 택시 운전사의 직업의식이었을 뿐 아니라 부당함에 맞서 뭐라도 해보고 싶은 한 시민의 양심이었기 때문이다. 김만석은 경상도가 고향인 서울 시민이지만 상관없었다. 눈 푸른 독일 기자조차 사명감을 가지고 목숨을 걸어 카메라를 들어 올렸으니 말이다. 그가 어떤 선택을 했던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다. 그의 딸은 11살이고, 혼자 밥을 차려 먹으며, 집주인 아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작아진 신발을 어쩔 수 없이 구겨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만석은 불편한 길을 선택했다. 양심이다. 택하지 않았다면 평생의 불편함이었을 것을 알았던 걸까. 그 양심 때문에 역사가 바뀌었다.


모든 임무를 마치고 끝내 집으로 돌아온 김만석은 보고 싶었던 딸을 끌어안고 울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본인이 없던 만 이틀간 남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게 한 것이 미안했을 거다. 다만, 내 눈엔 나라를 대신해 그런 잔혹한 세상에 태어나 살게 해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또,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80년대 정부가 2017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낱 택시 운전사와 외국인 기자가 역사를 바꾸었지만 세상의 부조리는 남아서 2017년 겨울 또 싸우게 해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 영화 '택시운전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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