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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ie Jan 19. 2017

임무수행과 윤리

한 걸음 멈춰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이런 제보는 경찰서에 하시는 게 맞습니다. 저희는 수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자거든요." 

인턴 때 많은 제보자들에게 수없이 되풀이한 말이다. 사기를 당했다느니, 누가 납치가 되었다느니.. 어떤 날은 바로 앞에 화재를 목격한 사람이 119가 아니라 이놈의 제보전화번호를 눌렀던 황당한 일도 있었다. (놀랍지 않게도 "손석희 사장님 믿고" jtbc로 온갖 제보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jtbc 사회부 전화기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그러다 보니 사회부 기자는 수사하는 사람인지, 취재하는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가끔 있었다. 

공공의 적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단결하면 그 힘은 어마어마하다. 2002 월드컵 당시 다른 나라 팀들을 무찌르겠다는 붉은 악마들의 열기는 지금 생각해도 믿기 힘들 만큼 대단했다. 다만,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터키는 정당한 승리를 했으니 그 이상 물고 뜯을 게 없었는데,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 엮인 적의 무리들은 물어뜯을수록 땟국물이 계속 나와서 멈추기가 힘들어 보인다. 그러다 보니 단결과 심판의 취지는 어느새 더 뜯고 파헤쳐서 말 그대로 뼈도 못 추스르게 만들겠다는 욕심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적을 엄중히 심판하고자 나섰던 사자가 흥분한 나머지 필요 이상의 먹잇감을 쫓는 하이에나처럼 변하는 건 아닌지. 

최순실도, 박근혜도, 그들과 함께 국민들을 기만한 사람들. 천하의 나쁜 사람들이다. 제 어미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결국 모든 잘못을 정말 제 어미한테 떠넘기는 정유라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비밀리에 제보를 받고 그녀를 찾아 나선 기자에게 들켜 체포당한 점은 조금 억울할 것 같다. 나는 덴마크로 떠난 그 기자를 비난하고 싶진 않다. 시키는 일 해서 성과를 낸 일개 직원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준비된 카메라 앞에서 그녀가 체포당하는 바람에 그 언론사는 영웅이 되었고 뉴스 시청률은 대박이다. 어느새 정말 필요 이상의 먹잇감을 물어뜯고 갈구는데 신이난 하이에나가 탄생했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흥분했다간 정말 중요한 그 무언가를 놓치거나, 정작 밝혀져야 할 단서들이 뒷전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가 시민으로서 신고하기로 했다면 보도를 포기했어야 했다. 그리고 만약 보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관찰자로 남았어야 했다. 그게 보도윤리다. 그런 게 2017년 언론계에 남아있다면 말이다." (박상현, "경찰에 정유라를 신고한 JTBC 기자, 어떻게 볼 것인가") 기자에 대한 비판글의 일부이다. 윤리를 논할 때 어느 한쪽이 백 퍼센트 옳거나 그르다고 하기엔 case-by-case가 제공하는 빈 공간이 많다. 과정이 어찌 되었던 죄지은 사람 체포해서 조사받게 되었으니 타당하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를 짜고 카메라를 준비시켜놓은 후에 "뉴스"가 카메라 앞에서 벌어지도록 하는 게 맞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스토리보다는 알려져야만 할 스토리에 집중하고, 가해자가 되었던 피해자가 되었던 "사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 발전을 추구한다면 그나마 제정신인 구성원들만은 정석(定石)대로 나아가야 할 거다.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사건이 있었을 당시, 연루되었던 박관천 경정의 집 앞에서 이틀 동안 뻗치기를 해야 했다. 삼일째 아침 검찰 압수수색이 시작되었고 많지 않은 양의 서류들과 노트북이 압수되었다. 이번 국정농단이 터지고 나는 "아 그때 제대로 수사했었음 이미 다 까발렸을 것을!" 했다. 물론, 나 같은 취재 기자 인턴 말고 검찰이. 


덫붙이는 이야기. 한국에 다니러 갔다가 할머니 댁에 들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언론대학원 준비한다고 하니까 "아니 왜 그런 언론 짓을 하려고 하니." 하셨다. 그냥 웃어넘겼다가 몇 분 후에, "할머니는 내가 뉴스 일하는 거 싫으세요?" 하고 여쭸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아니 싫다는 건 아닌데.." 하시고서는 옛날부터 기자라면 질색팔색 하신다는 얘기를 한참 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엄마: 왜 할머니한테 너는 그런 "기레기" 안될 거라고 말씀 안 드렸어?

나: 기레기 안되고 싶어도 기레기 같은 짓을 해야 돼서. 그래야 위까지 올라가서 내가 생각하기 옳은 것만 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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