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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혁 Oct 15. 2016

혹시 당신도 잊고 있던 즐거움이 있지 않나요?

기억의 회상에 대하여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함께 원정을 수행한 부장 중 에우메네스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히 학자적 식견이 뛰어났으며 군사적인 역량도 대단했다.


유년시절의 알렉산드로스 왕자가 고대 마케도니아의 장군이자 학자인 에우메네스에게 장난감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자 그는 왕자에게 설계, 제작, 운용 세 가지 중 압도적으로 재밌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장난감을 만든다고 예를 들어 보자.


'설계'라고 하면 무엇을 만들기 위한 과정을 기획하고 도면이나 시방서 따위를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제작'이라고 하면 설계된 기능과 내용을 바탕으로 장난감을 직접 만드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운용'이란 무엇을 움직이게 하거나 부리 어씀.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게 만들어진 장난감을 사용해보고 가치 있게 이용하는 것이다.
히스토리에에 등장하는 Eumenes

에우메네스가 알렉산드로스 왕자에게 한 질문에는 정답은 없겠지만,

에우메네스가 제시하고 있는 설계, 제작, 운용 세 가지 주제 중

무엇을 했을 때 가장 즐거운지는

훗날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인 왕자 본인 스스로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일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유년시절을 회상할 수 있었는데,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특히나 그림 그리는 것을 참으로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 계기 또한 만화책을 보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내가 직접 그려보면 더욱 재밌을 것 같다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즐기면서 했던 일은 6년 가까이 꾸준히 이어져갔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내게 필요한 연습장은 어느덧 50권이 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그것은 외로운 시간에 틈틈이 어린 나에게 위안이 되었던 친구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미, 내가 무엇을 했을 때 가장 즐거운지를 알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학창 시절과 함께 바야흐로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서서히 잊을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이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비슷한 고민 때문에 말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표를 세상에 던져보지 못하고,


좋은 대학을 가야지만

또는 좋은 직장을 가져야지만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생각들 말이다.


부모님의 기대나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그리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에는 힘든 세상이 크게 한몫했을 것이라는 핑계도 대어 본다

차곡차곡 쌓여 갔던 연습장들은 더 이상 사랑을 받지 못했는지

어느새 어디론가 서서히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지금으로부터 15년 전부터 나는 내 마음대로 꿈을 꿀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 시작된 8개월간의 세계일주를 시작으로 현재 이곳 치앙마이에서

난 다시 한번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그 계기가 참으로 단순하다

여행 중 지루함을 달리기 위해 우연하게 다시 시작하게 된 소소한 낙서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소소하게 낙서하는 습관의 힘은 참으로 무섭다

현재의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줬으며

잊고 있었던 어린날의 그 즐거움과 감정들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줬다.


여행 중에 우연히 15년 만에 다시 끄적인,

 이 소소한 낙서들이 나에게 새로이 도전할 수 있다는 원동력을 준 것이다.


모로코 쉐프샤우엔에서의 추억을 그리며 15년만에 다시 시작한 소소한 낙서


어린왕자, 독일 드레스덴에서


마지막 여행지 였던 인도에서, 파마머리가 하고 싶었나 보다


평생을 살면서 한번 정도 이런 계기가 있을까?

누군가에게라도 다시 한번 이런 즐거운 느낌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

그리고 다시 한번 나에게 이렇게 도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주어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혹시 당신도 잊고 있던 즐거움이 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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