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대규 JELMANO May 01. 2018

디자이너는 어떻께 옷을 상상할까?

옐마노 패션칼럼(18)- 19FW 아웃터 콜라보 캡슐 컬렉션

며칠 전 뜻하지 않게 베네치아에 소재한, 여성 Outer로 나름 명망이 있는 중견 패션업체로부터 올 겨울 19FW 캡슐 컬렉션 (일반 컬렉션보다 작은 크기의 미니 컬렉션)의 디자인 요청을 받았습니다. 본 칼럼의 마감일이 코 앞이라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독자와의 약속은 중요하니 지난 달에 마무리하기로 했던 범백 bum bag 이야기를 마저 써야 할 텐데, 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았습니다.  


지난 달 말미에 들추어낸 그 문제가 그리 말랑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 입니다. 그리고 그 때 상태에서 그 내용을 진중하게 앉아서 쓸 만큼의 시간이 충분하지도 않았구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에 다음의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글을 쓰고 있는 이상, 실무 디자이너가 아닌 ‘전문’ 패션 칼럼 기고자들이 쓰기 어려운 ‘이런’ 내용을 보여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 생경하고 고통스런 창조의 과정을 나름 짤막한 글로 옮겨서, 바로 나온 화덕피자는 아니더라도, 전자레인지에 바로 데운 냉동 핏자의 맛 정도나마, 전달을 시도해 보는 것이 의미 있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도 아니고 하니, 이번에 내 머리 속에 가득 찬 컬렉션 구상부터 디자인을 시작하는 과정을 나름 진솔하게 써볼까 합니다  (지난달 미처 마무리 못한 ‘범백의 패션 미학’과 관련된 주제는 이 긴급 프로젝트 종료 후 꼭 마무리 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요.)




일단 컬렉션 디자인을 요청 받은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의뢰한 업체에게 다음의 사항을 정확하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1) 컬렉션의 크기와 복종

2) 세일즈를 전개할 지역 또는 국가

3) 마지막으로 반대급부인, 페이의 조건입니다.


자금에 여유가 있는 대개의 이탈리아 패션업체는 일단 젊고, (어느 정도) 검증된 디자이너라면, 늘 그들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에 목말라하고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먼저 그들이 운을 띄우며 오퍼를 하는 것이지요. 이번과 같이 첫 콜라보가 진행되는 경우, 생산업체 측에서는 ‘디자인을 해주면 내가 너의 브랜드 샘플을 추가비용 없이 만들어 줄게’ 또는 ‘유럽 지역은 내가 너의 디자인으로 생산하고 몇 퍼센트를 줄게.’ 등으로 일단 작은 프로젝트 개념으로, 양쪽의 금전적 시간적 리스크를 최소화 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게 됩니다.


베네치아 사람 같지 않게 남부의 강한 햇볕에 그을린 듯한 붉은 톤의 피부를 한 50대 중반 정도의 A 사장은, 다른 일로 회사에 놀러 오라고 한 나에게 카페 한 잔을 비서에게 시키며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컬렉션은 크지 않게, 캡슐 컬렉션 정도로 하고, 일단 우리 회사의 메인 복종인 여성 무스탕 (이탈리아어로는 montone 라고 합니다. 불어로는 무통(mouton) 이라고 하지요. 모두 양털이란 뜻입니다. ‘무스탕’은 (mustang 을 그대로 읽어낸 이 발음을 봐도 알겠지만) 일본에서 건너온 말로, 원래 2차 대전 당시 미공군 전투기 이름입니다. 주로 미군 조종사들이 입었던 양털가죽 점퍼를 지칭한 것이 굳어져 이렇게 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요.) 2-3 벌, 패딩 소재 2-3 벌, 패치웍 등 다양한 소재로 2-3 벌 정도를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 내가 보이프렌드 룩 정도로 남성 디자인 2-3 벌을 추가하자고 했습니다. 타겟 지역은 한국을 비롯한 근처 아시아 시장입니다. 그리고 별도로 한국 쪽 indagine (시장 트렌드 조사)를 앞부분에 넣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조건으로 일단 작업을 진행한 후 다시 5월 초에 다시 미팅을 하기로 한 것이지요.


자, 이제 공은 나에게 왔습니다. 보통 패션 디자이너가 컬렉션 패키지를 딜리버리 할 때,

기본 패키지는,

-트렌드 리서치,

- 무드, 컬러, 소재 보드

-  마지막으로 figurini (일러스트 또는 감각적 스케치 정도)입니다.

- 경우에 따라서 마지막에 의류에서는 disegno tecnico (도식화), 슈즈 쪽에서는 좀 더 진화한 양식인 테크팩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일러스트 까지만 작업을 해서 1차 미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한국에서 올 겨울은 어떤 스타일이 핫 할까요? ‘라는 익숙한 질문으로 리서치 반, 영감 찾기 반으로 작업을 시작합니다. . 이런 가벼운 의도로 처음에는 이것 저것 둘러보며 설렁설렁, 컬렉션 구상이 제로에서 시작이 됩니다.  




이 때의 나의 태도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면서 문장으로 환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찾는 척하며 주변과 인터넷과 책을 둘러보지만, 실제로 찾는 것은 없습니다. 먼 외부의 2차 정보를 해석하고 소화하는 동시에 손끝과 눈앞에서 벌어지는 1차적인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19FW’ 라는 키워드를 구글에 치고 검색되는 이미지를 바라보지만, 눈의 초점은 평면 모니터 뒤편의 벽면에 맞추어져 있는 것 같이 멍하게 그림들을 매우 빠르게 넘기며 봅니다. 그러다가 키보드를 누르는 손끝의 자극이 뇌 속의 어느 신경과 만나면, 연필을 들고 스케치를 하거나 컨셉을 잡아나갈 키워드를 노트에 적어 둡니다.  

  

그렇습니다. 굳이 특징을 찾자면, 이미지입니다. 이 시기에 문자 정보는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주로 이미지를 매우 빠른 속도로 스캐닝하고 느끼고 버리거나 또는 스크랩 해 둡니다. 음악도 그간에 모아둔 곡들로 매우 많이 듣습니다. 다만 이 시기에는 음악도 결과적으로 시각화 된다는 측면에서 이미지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참고로, 에버노트 그리고 핀터레스트, 유튜브를 주로 이 시기의 툴로서 사용합니다.

   

Harmonious Discord



Harmonious Discord (조화로운 불협화음)라는 패션계에 흔한  트렌드성 조어가 내 눈에 걸렸습니다.

일단 남이 만든 말이지만, 이것을 작업상 키워드로 잡아 봅니다.


이 제목이 마음에 든 것은, 언뜻 보아도 잘 안 어울리는 요소를 엮어 새로운 수준의 조화로운 상태로 만들고 싶은 나의 의도가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 테면 가죽과 양모(lana, wool) 같은 재료들입니다. 외투 류의 옷에서 양모는 ‘몇 수의 정장코트’ 같은 클래식의 상징이며, 가죽은 무스탕과 같이 터프함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일단 이렇게 남이 만든 개념어를 그대로 잡고 나가도 되는 것은 (갑자기 들어온 프로젝트라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이 이후에도 작업개념은 멈추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진화할 것을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하루 정도 예민한 빈둥거림의 시간이 지나갑니다.


그 때 갑자기 고래가 눈에 꽉 차게 들어옵니다. 바로 아래의 범고래입니다. 영어로는 Killer whale 이라고 하지요. 일단 텍스쳐가 마음에 듭니다.




고래 한 마리를 이 공간에 데려다 두니  

이 글을 쓰고 있는 백지가 마치 바닷물 공간이 되어

고래가 유영해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장 정렬이 가운데 정렬로 바뀌었습니다.)  

(마치 폰트도 궁서체로 바꾸어야 할 것 같고요)


나는 이 고래를 ‘도시 안에 있는 고래‘ 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참으로 숨막히는 설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농구장 크기만한 고래가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러나 고래가 물속에서 물살을 가르며 나가듯

기름장어처럼 매끄럽고, 멋스럽게  

육중한 몸이 도시의 빌딩 사이, 사람들 사이를 가르는 상상을 합니다.  


스케치 할 마음에 생겨서 연필로 쓱쓱 먼저 그려봅니다.  

옷 스케치를 하기 전에, 이상하게도 나는 종이 위 남녀모델의 포즈를 먼저 정성껏 그려 둡니다.  

모델이 별로면, 옷을 입히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모델이 어느 정도 나오면, 그 포즈에 어울리는 옷을 상상해서 맨몸에 옷을 그려 넣어 봅니다.  

 이 스케치가 스무 장 정도가 그려지니,  

 

JIMIBEK per *****



(일단 클라이언트 브랜드는 보안 상 익명 처리)

라는 이번 캡슐 컬렉션 브랜드  의 아이덴티티를 나중을 위해 아는 사람만 알아 볼 수 있는 표식으로

상징화된 디테일 요소로써, 따로 그려서 빼 놓습니다.





그 사이에 또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위에 적어 두었던 ‘도시 속 고래’ 또는 조화로운 불협화음 컨셉으로  

일단 COVER 와 리서치, 무드보드(mood board)와 컬러보드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시장조사 리서치는 트렌드 서치기관, http://cft.or.kr 에서 회원공개된 자료를 주관적으로 취사선택하였고

그 동안 이 곳과 개인 블로그에 연재한 컬럼을 내용을 종합한 것이라 중복된 내용이 있어 간단하게 보여드리고 넘어갑니다.    
























끝으로 이 포스트의 백미가 될 무드 보드와 컬러 보드 만 공개하고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패션계에 발을 들이긴 전까지 이런 추상적인 보드는 왜 앞에 걸어 두나,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두 가지 이유를 실존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일단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자칫 무제한적 방종으로 흐를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조건에 일정한 제한과 닻을 내려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의 이유는, 컬렉션에 앞서 스케치만으로 옷을 미리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입니다. 무드보드를 미리 보게 되면, 실제 옷을 보기 전에 물리적인 시각(눈)과 심리적인 시각(미감)을, 최대한 디자이너가 보았던 어떤 페이지와 비슷한 페이지를 보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지요.  


다음달에 슬쩍 몇 벌 공개할 옷 그림을 바로 보여드리지 않고, 무드보드를 먼저 내놓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네요.

작가의 이전글 '18 패션트렌드 #4 범백-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