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암댁 Mar 12. 2023

부암댁의 생각_ 26. 지나갈 것을 안다


마음이 숭숭하다. 싱숭생숭한 것도 같고, 뒤숭숭한 것도 같다. 가을 탓인가…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그 하고 싶은 일 끝에는 벽이 있고, 해야할 일은 많은데 해야할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고 풀리지도 않는다. 생각만 많고 풀리지도 나아가지도 않는 지금. 그러나 지나갈 것을 안다.


어릴때는 몰랐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몰랐다. 모든 것이 힘들었던 그때… 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돈도 없는 미생이라는 것을 느낄때마다의 좌절감. 그것이 끝도 없을 것 같은 막연함. 남아도는 시간만 흘려보냈다. 지루하고 찌질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다…지나가는 구나’


다만 그 지루하고 찌질한 시간을 어떻게 버티느냐. 그것이 문제다. 뭘 몰랐을때는 발버둥 쳤다.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폭풍우 몰아치는 마음을 바라보며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고, 차를 마시고, 종이에 내 마음에 대해서 써보고, 그것도 손에 안잡히면 단순 반복의 작업을 해보는 것. 그러다보면 변화무쌍한 마음의 날씨는 이내 곧 차분해진다.


이럴 때 일 수록 내 몸과 마음에 더 예민하게 귀를 기울인다. 전엔 할 수 있었던 일도 이럴때는 꼭 탈이 나니까. 전엔 괜찮았던 일도 상처를 받으니까. 내 몸과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는 일들을 냉정하게 판단해서, 욕심을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참아내며, 해야하는 것은 꼭 잘 마무리 지으며 나를 다져간다.


너 자신을 알라. 나훈아 선생님은 테스형을 그렇게 울부짖으며 모르겠다 하셨지만, 소크라테스가 한말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에 집중한다. 나는 이런걸 싫어하구나, 난 이런게 편하구나, 난 이럴때 아프구나, 난 어떤 사람이구나….그러게 알아가다보면 어둠이 걷혀져있다. 그 시간이 짧을지 오랠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이 지나가면 내가 훌쩍 성장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 지리멸렬한 시간을 강하게 버텨본다.


가을이라 그러겠지…싶지만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부암댁의 생각_ 25. 요리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