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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암댁 Mar 12. 2023

부암댁의 생각_ 35. 불, 햇빛

요즘 꽂혀있는 열에 대한 단상


1.


소문난 해장국엘 갔다. 이 뭔 대단한 집이길래… 김슨생의 성화에 못이겨 떠밀려 내려 가게 문을 빼꼼 열어보니, 아침 10시부터 가게 안은 해장국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가득이다. 가까스로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린다. 40분여 대기 끝에 받아든 해장국은 커다란 돼지뼈에 돼지사골인데 맑디 맑다. 뽀얗지 않고 투명하다. ‘어떻게 이렇게 맑지?’ 고민하며 한수저씩 뜬다. 배추때문도 아니고, 양념때문도 아니다. 사골은 국내산을 쓴다는데 그 이유도 아닌것 같다. 어슴푸레 ‘불세기’에 그 답이 있다고 보고 한그릇을 비워냈다. 가게를 나오는데 11시, 이 집은 문을 닫았고 주인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가게 앞에서 담소를 나누신다. 어떻게 끓이시는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나에겐 용기가 없다.



2.


아마도 해장국의 비밀은 불세기이지 않을까 했던 것은 행주 삶기에서 착안(?)했다. 행주를 삶을 때 물이 너무 많아 넘칠까봐 불을 약불로 줄이면 행주의 때가 잘 빠지지 않는다. 두번에 나눠넣든 아니면 큰 다라이를 쓰든 물은 넘치지 않게 해서 폭폭 끓여내야 때가 빠진다. 과탄산소다의 양이 많으면 빠질것 같지만, 때가 빠짐과 동시에 행주도 너덜너덜해진다. 불을 약하게 오래 끓여도 빠지지 않는다. 행주의 때와 고깃국물을 같은 선상에 놓는건 에잇 GG지만, 뭐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3.


불로 무언가를 익힌다는 것은 정말 큰 발견(?) 발명(?)이라는 것을 요리를 하며 더 격하게 느낀다. ‘익히다!’ 라니!! 쌩으로 먹으면 속이 아픈데, 잘 익혀 먹으면 속이 편안하다. 쌩으로 먹으면 쓰고 텁텁한데, 익혀먹으면 고소하고 달달하다. 요즘 요리하며 가장 집중하는 것도 ‘익히기’이다. 심부까지 적당히 잘 익힐것. 재료에 따라 계절에 따라 몸상태에 따라 물양을 달리해서 무르게 익힐지 살짝익힐지 고민한다. 몰랐을 땐 몰랐는데, 알고나니 하면할수록 ‘익히기’는 참 어렵구나



4.


청운동에 미식가 분과 함께 약한불에 오래 굽는 음식의 맛있음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쎈불에 볶는 중국음식의 소화안됨에 대해서도. 중국 음식이 소화가 잘 안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쎈불에 볶다’도 한 몫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불향은 입었는데 야채는 다 익지않았을 수도 있고, 너무 쎈불이라 쎈 음식에 몸이 탈나는 것일 수도 있고…’쎈불에 볶는다’는 의미를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불의 강렬한 기운을 받아 중국사람들은 그렇게 강렬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단 말이지…



5.


불의 강력한 맛만큼이나 햇빛의 강력함을 자주 느낀다. 햇빛에 말린 나물과 버섯의 맛과 건조기에 말린 그것의 맛은 확연히 다르다. 항아리가 직접 햇빛을 쐰 장과 간접 핫빛을 쐰 장은 발효과정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그뿐인가 음지에서 자란 전호나물과 양지에서 자란 전호나물을 ‘같은 전호 맞아?’ 싶을 정도로 모양과 맛이 다르다. 스님께서 빙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봉곳 솟아 있는 돌 하나로 생긴 그늘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여주는지. 햇빛의 자리와 그늘의 자리가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6.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잎깻잎을 재배하는 곳에서는 계속 형광등을 켜놔 꽃을 못피게 한다고 한다. 잠을 자야 생식성장을 하는데, 잠을 못자게 하면 생식성장을 많이 지연시키는데다 꽃이 많이 달리지 않는다고.. 궁금해서 다른 것도 찾아보니 불을 켜 잠을 재우지 않는 방법이 꽤나 쓰이고 있었다. 빛으로 잠을 재우지 않는다라…



7.


어릴땐 어둠이 무서워 불을 켜고 잤다. 밖의 생활보단 실내 생활이 많았다. 물론 그 이유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언제부터 인가 일정 빛 이상의 빛이 있으면 잠을 되려 방해함을 느꼈다. 밭일을 하고 하고나면 몸이 피곤해 자는 줄 알았는데, 햇빛을 많이 받아 절로 잠이 오는게 아닐까 싶다. 지난 몇일 낮엔 햇빛을 옴팡 받는 생활을 했다. 햇빛을 이렇게 때려맞는 날은 어김없이 8시부터 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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