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다. 다시 영월이고 다시 망경산사다.
지난 겨울 몸이 확 망가지고 힘들었던 것은 충분치 않은 봄날의 여름날의 햇빛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번 봄에는 열심히 햇빛을 맞아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시 봄, 아직은 차가운 바람 사이로 뜨끈한 햇빛을 받으며 얼었다 녹는 축축한 땅의 냄새를 맡으며 지난 계절의 낙엽 사이로 강한 생명력을 가진 것들이 빼꼼 올라온 것을 살펴본다.
아직은 우리가 봄의 것이다 할만한 것들은 땅 속에 있거나 겨우 땅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땅을 가득 뒤덮은 것들이 있으니 꽃다지, 냉이, 민들레, 개망초, 벼룩나물, 광대나물 등등. 스님께서 곰취밭의 풀들을 조심히 뽑으라 하셨다. 전엔 뭐든 다 뽑아낼 생각이고 여차하면 들어엎어버렸겠지만, 그래도 이젠 이건 꽃이고 저건 뽑을 풀이고 하는 정도는 얼추 구분을 한다. 그래도 정확하게 스님께서 시범을 보이시며 ‘초록색으로 된건 뽑고 붉은 색인 것은 놔두라’하셨다.
전 같으면 무엇을 빨간색이라고 해야하나요 했겠지만,
조금은 짬밥이 생겨 이건 지리터리풀이니 놔두고, 이것 깽깽니 풀이니 놔두고 하면서 요리조리 피하며 풀을 뽑는다. 뽑으면서 보니 뽑히는 것은 다 먹을 것들 아닌가. 모양새를 보니 잎이 겹쳐 자라는 로제트 식물이 많았고, 땅을 기어다니며 덩굴덩굴 자라는 이름은 모르겠는 쇠비름처럼 생긴 것들도 많았다.
뽑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스님께서 뽑지말란 ‘빨간 것’이라 하는 것들은 잘 퍼지지도 않는데, 뽑으라 하신 ‘파란 것’은 왜 이렇게 많이 퍼져 있을까? 뽑으라 하신 초록이들은 냉이, 꽃다지, 민들레 같은 것인데 이런것들은 어떻게 이렇게 퍼질 수 있었을까? 이런 것들은 겨우내 쌓인 눈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잎을 키우고, 눈이 녹고 나면, 아직은 찬 땅을 그들의 잎으로 온기를 채워 땅속의 많은 식물들이 살아날 수 있지 않았을까? 땅속 식물들을 살아날 수 있게 했던 것들이 이제는 좀 따뜻해지면서 땅속에 너무 많아 그 다음 자라나야 할 것들의 길을 막으니 뽑아내야 하는 것일까? 어쩜 딱 이렇데 뽑아내야할 시기의 것들을 우리는 먹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뽑으면서도 시간이 길어지니 손이 점점 험해지고 대충하기 시작한다. 스님께서 지나가시면서‘흙은 털어주고~’하신 한마디에 다시 정신 차리며 내 손, 내 호미질의 움직임을 다시 돌아본다. 무작정 흙을 파 제껴 대충 풀을 뽑는 것이 아닌…험하게 휘두르지도 말 것이며, 딱 필요한만큼의 힘을 들이고, 무엇을 뽑고 무엇을 안뽑을지를 생각해서 알고 뽑아야하고, 뽑을 땐 어떻게 손을 쓰먼 주변을 안다치고 필요한 것만 빼내야하는지를 생각하고, 뽑고나서는 그 뒤를 어떻게 덮어둬야하는지도 생각하며 뽑아야 함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많은 것들도 그렇게 생각하며 다뤄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뭐만하면 앞뒤 생각안하고 싹다 밀어 우뚝 건물을 세우는 일이나, 무언가 좋은 일이라고 하며 뒤도 안보고 앞만달리며 추진하는 일이나, 돈을 쓰면 적시 적소에 필요한 만큼만 쓰는 것이 아닌 도와주는 것인지 망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투자로 초토화를 만든다.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이 진부하지만자꾸 떠오른다. 난 무엇을 알고 모르는가. 난 힘을 얼마나 쓸 수 있고 얼마나 쓰고 있는가. 난 이 곳에 어떠한 모양새로 움직이고 있으며, 내 지나간 자리는 얼마나 폐허가 되는가.
허허허 풀뽑으며 별 생각다든다.
망경산사의 터줏대감 흰냥이는 언젠가 부터 보이지 않고, 이 줄냥이가 풀뽑는데 자꾸 와서 치근덕 거리고 근처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렇게 오며가며 그리고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데도 땅 위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난 잠깐 풀을 뽑느라 앉아 있는데도 풀들이고 흙이고 다 눌려서 ‘나 왔다감’ 하고 크게 흔적이 남는데 말이다. 열심히 풀을 베고 나오는 길에 내 흔적을 지우고 나오는데 한참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