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춧가루에 대하여
친구가 대파김치를 담근다면서 담는법을 물어왔다. 늘 그렇듯 계량없는 레시피를 읊어주고는 이걸로는 부족한데 싶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몇몇가지에 대해 써보려한다.
대파김치를 담글때 필요한 것은 대파, 소금, 고춧가루, 물이다. 이것이 각각 맛있으면 다른 것이 필요없다. 특히나 대파는 자체로 향신채소이기때문에 마늘이나 생강을 넣을 필요가 없다. 선택이지 필수는 아니다.
요즘 대파는 달고 맛이 진하고 속이 꽉차있어 다른 재료를 넣지 않고도 맛있는 김치를 담을 수 있는데, 상황에 따라 대파가 맛이 없으면 부족한 맛만큼 액젓을 쓰거나 과일즙을 쓰거나 하여 맛을 보완해줄 필요가 있다.
소금을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한데, 맛이 쨍하게 짜거나 쓴맛이 돌거나 하면 김치맛도 그렇게 되기때문에 소금을 잘 고르는게 중요하다. 결국 소금이 쨍하게 짜거나 쓰면 본능적으로 과일이나 양파를 갈아넣거나 찹쌀풀을 쓰거나 매실액기스를 넣거나 하여 맛을 맞추게 된다. 양념은 재료가 부족할때 내가 조리를 잘 해내지 못했을 때 넣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춧가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올해는 문득 고춧가루의 감칠맛이 중요하다는 발견이 크게 와닿았다. 고춧가루는 매운맛으로만 넣는게 아니라 단맛과 무엇보다 감칠맛을 채워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처음에 고춧가루를 먹다보면 매운맛만 느껴지는데 차분히 이것저것 맛을 보고 비교하다보면 단맛이 많은것 감칠맛이 도는 것 등이 느껴진다. 고춧가루의 맛의 밸런스가 좋으면 소금물에 고춧가루만 타도 맛이 충분하다. 갖은 양념을 하지 않아도 고춧가루 혼자서 일당백을 한다.
고춧가루는 어떤 고추를 언제따서 어떻게 말려서 어떻게 손질해 어떻게 빻았고 어떻게 보관했느냐에 따라 맛이 많이 달라진다.
보통은 청양이냐 안맵냐 가지고 고추를 고르는데, 사실 품종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라 향도 맡고 맛도 보는 것이 좋다. 주로 과피가 두꺼운편이 매운맛과 단맛의 밸런스가 좋은편인데 또 과피가 두꺼운 것만 찾다보면 너무 달아터져 매운맛이 아쉬운 고추가 있기도 하다. 과피가 얇은 고추는 쨍하게 맵거나 단맛과 감칠맛이 부족해 맛이 가볍다.
고추는 주로 두물에서 세물고추를 좋은 것으로 친다. 첫물고추는 고추의 맛이 다 안들었다고나 할까. 색도 말려놓으면 금방 나빠진다. 두물 세물이 매운맛 단맛 감칠맛의 밸런스가 좋고, 그 이후에 딴 것은 단맛이 빠지고 매운맛과 쓴맛이 돈다.
빨갛게 다 익은 고추만을 골라 말린다. 잘말리는 것도 요리와 같다. 천천히 향이 날아가지 않게끔, 맛이 잘 남아있게끔을 생각하며 말린다. 태양초가 좋다지만 너무 뙤약볕이면 햇볕에 의해 맛과 향이 변질되기도 하고 너무 고온이면 단맛은 타버리고 매운맛만 쨍하데 돋는다. 그렇다고 너무 저온이면 마르지 않아 고추의 수분에 의해 곰팡이가 생기기도 한다.
다 마르면 꼭지를 따고 속 씨를 뺀다. 마를때 보면 겉은 멀쩡한데 속이 골아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 모르고 빻으면 맛도 안좋지만 보관에도 안좋다. 씨는 맵긴하지만 쓰기도 하기때문에 가루로 만들땐 씨도 빼준다. 거칠게 빻고 곱게 빻는건 정답은 없다. 좀 시원한맛 깔끔한 맛을 원할땐 거칠게 빻은 것을 쓰고, 진한맛 묵직한 맛을 원할땐 곱게 빻은 것을 쓴다.
보관은 햇빛은 피하고 적당한 습도의 서늘한 곳에서. 개인적으로 냉동보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있다. 냉동보관하는 것이 변화가 늦긴 한지만 아예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없고, 수분이 얼었다 녹았다 해서 맛이 퍼석퍼석하달까. 찻잎같이 보관을 잘했을 때의 맛이 좋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직 이렇다할 보관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고춧가루를 잘 보관한것이, 이상한 햇고춧가루보단 훨씬 맛도 발효도 좋았다.
좋은 고춧가루 하나면 열 양념 부럽지 않다. 이번에 이장우 방송에서 심플하게 만드는 파김치를 봤다. 비법으로 직접만든 갈치액젓을 말했는데. 갈치액젓이 비법이라기보다는 필요한것을 넣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안넣는 것이 비법이지 않았을까 한다.
부디 서두르지 말고 하나하나 잘 감각하여 넣을 것만 넣은 대파김치를 담길바라며…��️
2025.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