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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댁의 생각_73. 약이되는 생각, 양념

by 부암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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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되는 생각, 양념



요즘 바깥음식에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는데, 어쩌다 밖에서 음식을 먹어야 하면 가끔 추억의 음식점을 찾아간다. 하지만 백이면 백, 내가 이런 맛을 좋아했던가 하면서 너무 자극적인 맛에 놀라곤한다. 얼마전에 할매집에 다녀왔다. 예전에도 매웠던 기억이지만, 역시나 속이 쓰릴정도로 매웠다. 하지만 놀랬던건 그 매운맛 뒤로 느껴졌던 달디


단맛이었다. 이렇게나 달았다고? 그렇게 매운맛과 단맛에 혼쭐이나고는 집에 와서 잠이 쏟아졌다.



요리를 알아가면서, 점점 멀어진게 양념이다. 세상의 온갖조미료를 다 모을 기세로 사제꼈는데, 지금은 거의 소금을 쓰고, 그래도 꼭 가지고 있어야 발효 조미료들, 간장, 된장, 식초 정도만 가지고 있다. 부엌과 냉장고를 꽉꽉 채웠던 그것들이 빠지니 냉장고가 한갓지다.



양념을 안쓰게 된건 어느날 문득이었다. 늘 무심코 배운대로 요리를 했는데, 어째 내가 재료를 양념으로 더 몹쓸게 만드는 것 같았다. 분명 썰면서 맛본 재료는 맛있었는데, 만들어 놓은 음식이 영 맛이 없었다. 맛난 재료 다 때려 넣는다고 맛난게 아니구나. 양념을 넣으면 넣을 수록 재료의 맛이 가리워지는구나, 또 양념도 맛있고 재료가 맛있어도 양념을 너무 많이 넣으면 결국 재료를 먹는게 아닌 양념맛으로 먹는거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재료의 맛이 너무 아름다운데 그걸 가린다는게 아쉬웠다.



그 다음부터는 별일 없으면 소금만 쓴다. 단맛은 진짜 쓸 필요가 없다. 그냥 재료를 잘 익히면 다 달기 때문에 설탕이고 알룰로오스고 그런건 쓸 필요가 없다. 심지어 어떤 재료는 밸런스가 너무 훌륭해 소금을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완전한 경우도 있다. 그럴땐 농부님 리스펙. 어찌 이렇게 아름답게 땅을 요리해 내실 수 있는가!



그렇게 양념은 필요없어!라고 생각하고 다녔는데, 분명 양념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 그것은 2가지의 경우.



첫번째는 재료가 균형이 깨졌을 때. 재료는 땅과 하늘의 기운을 그대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땅이 안좋거나 기후가 갑자기 안좋아지거나 하면 가끔 맛의 균형이 깨진다. 보통 이런 경우, 감칠맛이 부족한데 이럴땐 간장을 쓰던가 육수를 내던가 다른 재료의 힘을 빌려 보완한다. 혹은 재료의 거침과 감칠맛 단맛을 보완하기 위해 기름을 쓸 수도 있다.



두번째는 내가 균형이 깨졌을 때. 내몸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거나 하면 맵거나 진한 맛이 땡긴다. 혹은 너무 피곤하거나 하면 좀 부드러운 맛이 땡기기도 한다. 그럴때는 소금만으로 채울 수 없다. 진한 맛을 낼 마늘, 맵게할 고춧가루, 향신료를 꺼내서 내 몸과 기분을 달랜다.



양념을 옛날엔 약념이라고 하고 藥念이라고 썼다. 약이 되는 생각? 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정말 그렇다. 재료의 부족한 부분을 생각하고, 나 몸의 부족한 부분을 생각하여 약으로서 채워주는 것이니까 양념은 약이다. 양념을 진짜 약처럼 썼으면 좋겠다. 약의 오남용은 정말 조심해야하는 것처럼. 양념의 오남용도 조심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양념을 적당히, 꼭 알맞게!


2025.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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